[0727 장미] 장미의 기억② 살과 뼈를 묻어 장미가 된다

▲장미 줄기에 나는 석 장 잎 ▼ 다섯 장 잎

1. 장미의 꽃눈분화 관찰하기: 줄기에서 나는 잎의 장수가 달라진다.
   ⓵ 다섯 장 잎 : 양분을 만들어 줄기와 뿌리, 잎을 키운다.
   ② 석 장 잎 : 양분을 만들어 꽃봉오리만을 키우는 데 쓰여진다. 동물의 혼인색과 같다.

2. 꽃눈분화(flower bud differentiation, floral differentiation, 花芽分化) : 식물이 생육 도중에 식물체의 영양조건, 생육년수 또는 일수, 기온 및 일조 시간 등 필요한 조건이 다 차서 꽃눈(花芽)을 달게 되는 일. 종류에 따라 또는 동일 작물이라도 품종에 따라 그 시기가 다르지만 대개는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 분화하는 일이 많다. 꽃눈 분화는 식물이 사랑할 준비를 하는 거다.

한 알의 씨앗은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땅 위로 싹이 트면
줄기를 만들고
줄기는 다시 가지 줄기를 만든다
나무와 풀에는
두 개의 눈이 있다

잎이 될 잎눈(foliar bud)
꽃이 될 꽃눈(flower bud)
길쭉길쭉 자라면 잎눈
동글동글 자라면 꽃눈

여름에 생긴 꽃눈과 잎눈이
겨울을 나면
둘을 합쳐 겨울눈이라 한다

사람이 혼인할 무렵이면
특별한 옷, 특별한 음식을 차리듯
물고기나 작은 곤충들도 혼인할 무렵이면
혼인색을 띄듯
식물도 자라서 사랑할 때가 되면
특별한 준비를 한다
준비 없이 그저 이루어지는 건 없다
장미는
꽃을 피워 사랑하기 위해서
잎줄기에 달리는 잎의 수가 달라진다
장미의 다섯 장 잎은 양분을 만들어 줄기와 뿌리를 키운다
하지만 꽃봉오리를 달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
장미는 석 장 잎을 만든다
석 장 잎은 양분을 만들어 꽃봉오리를 키우는 데만 쓰여진다
장미 줄기에서 다섯 장 잎이 더 나지 않고
석 장 잎이 나면
-아, 장미가 꽃 피울 준비하는구나
정원사는 장미의 변화를 알아챈다

시든 장미를 자를 때
석 장 잎 바로 아래
마지막 다섯 장 잎을 포함해 잘라야 한다
그래야 장미의 기억은 새순을 뻗어 줄기를 만들고
다섯 장 잎으로 성장하다가
석 장 잎을 만들어 꽃봉오리를 단다
다섯 장 잎을 포함한 줄기를 잘린 장미는

• 아직 꽃 피우지 않았어
  기억하고, 기억한다

만약, 정원사가 꽃봉오리만을 자르면
장미의 기억은 꽃을 피운 걸로 알고
새순을 내지 않는다

정원사의 입장에서 보면
장미가 열매를 맺어 씨앗을 만든다면
그 씨앗을 새들이 먹고 똥을 싼다면
여기저기 아름다운 장미가 피어난다
나만의 정원에서 나만의 장미가 피어야
정원사의 자랑거리가 되고 권력이 된다
인간의 이기와 장미의 기억이 맞물려
장미는
열매를 맺어 번식하지 못하도록
잘리고 잘리기를 되풀이했다

장미는
줄기나 뿌리가 잘려 나가
그 잘린 부분이 땅에 꽂히면
장미로 완성된다
저토록 아름다운 꽃이
사랑하는 이에게 바쳐지는 화려한 꽃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장미는 자신의 사랑을 인간에게 주고
살과 뼈를 묻어 장미가 된다

장미의 기억으로
나도 살과 뼈를 너에게 묻는다
그러니 제발 내 사랑을
함부로 짓밟지 마라
새로운 사랑으로 꽃 피려거든
잘려 나간 장미 줄기의
석 장 잎을 들추지 마라
그 줄기는, 사랑했던 기억을 가진 줄기는
아무리 꽂아도
살과 뼈를 묻어 장미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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