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대파steemCreated with Sketch.

in #club1002 years ago (edited)

2022년 11월 25일
10:30
출근해서 대파 한 자루를 손질했다. 시멘트 바닥에 비닐을 깔고, 대파를 묶고 있는 끈을 풀었다. 푸른 비닐 속의 대파는 뿌리 위쪽 부분이 한 번 묶여 있고, 줄기 갈라지는 부분이 또 묶여 있다. 두 군대를 풀면 대파가 벌러덩 자빠진다.
예리한 식칼로 대 파 뿌리를 자른다. 스무 뿌리 정도 자르면 눈이 아려오기 시작하고,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그래서 환풍기를 틀고, 앞 뒤 문을 열고 통기가 잘 되도록 한다. 그래도 대파 뿌리 100개 쯤 자르면 매운 눈에서 눈물과 함께 콧물도 줄줄 흐른다. 눈물, 콧물을 닦으며 대파 뿌리를 자르고, 줄기 끝도 자른다. 줄기 끝을 잘라야 세척할 때 줄기 안쪽 공간으로 들어간 물이 잘 빠진다.
1백개에서 거뜬히 3백개가 넘는 대파를 커다란 고무함지에 넣는다. 한 아름씩 쥐고 물 속에서 대파를 흔들어 씻는다. 대파가 물결에 휩쓸려 꺾이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움이 관건이다. 힘의 강약 조절이 있어야 싱싱한 대파는 꺾이지 않고 얼기설기한 거름망과 거름대 위에서 물기를 쪽 빼고 도마 위로 냉큼 올라간다.
나는 식칼을 간다. 칼 좀 갈아 본 남자이다. 대파를 나란히 도마 위에 놓고 줄기를 가른다. 배를 가른다. 하얀 대파의 속살이 드러난다. 이쯤이면 콧물, 눈물 범벅이다. 낡은 환풍기는 덜덜거리며 신나게 돌아가지만 뿜어 나오는 강렬한 대파 향은 불감당이다. 그래서 나를 울리는 대파...나는 한 여자를 생각했다. 스무 살 나를 울렸던 여자...우는 나를 차갑게 비웃었던 여자, 그 여자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묻는다. 싹뚝싹뚝, 대파를 자르며 추억을 지르며 나는 창문 쪽으로 얼굴을 내민다. 찬 바람이 콧잔등을 간지럽히며 어지럽히며 지나간다.
1979년 12월 12일
시비시비(是非是非) 사태가 있던 거국적인 날, 우리 집안은 파산했다. 한 여자가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대파 같은 여자, 매운 여자.(계속)
2022-11-26 @jamislee 이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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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누구일까요?

궁금하세요. 소설 습작중입니다. 그 여자는 없는 그대입니다. 소설은 허구입니다.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당신의 일은 힘들고 피곤하며 매번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저것 체험해서 글감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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