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평(時代漫評) - 147. 가수 조용필의 '꿈의 아리랑'

in #busy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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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가수 조용필은 굵직굵직한 모든 시대의 흐름을 몸소 체험하면서 살아온 인물이자 그 과정을 대중적 노래로 풀어내주었던 국민가수이기도 하다.

조용필은 1950년생으로서 69년부터 가수활동을 시작하여 79년에 '창밖의 여자" 라는 곡으로 정식 데뷔하였다. 그동안 수 많은 히트곡들과 더불어서 한국 내 최대 콘서트 인원동원기록을 가진 기록보유자이기도 하며, 대한민국 최초로 오빠부대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가수이기도 하다.

또한 70년대에 대한민국 가요계시장이 대중방송을 타기 전부터도 미 8군 출신의 히트가수로 명성을 날렸으며, 대중가요의 장르가 분화가 강해지고 언더그라운드와 인디뮤직의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시작하여 가장 밑바닥에서 부터 출발하여 전국구 스타가 된 최초 최후의 가수이기도다.

그래서 가수 조용필은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이있는 역사, 전설, 가왕(歌王), 국민가수 등으로 불리며 한국 대중음악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한 한국 가요계의 제왕인 조용필이, 다음 달 27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의 사전 행사인 평양공연을 위해서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 등이 포함된 방문진과 함께 북한으로 출국하였다고 한다.

이번 평양공연에 포함된 국내가수로는 조용필 이외에도 이선희 윤도현 백지영 레드벨벳 등이 함께 공연에 나설 예정이라고 하는데, 모두가 북한의 입장에서는 80년대~2천년대 초반사이의 시기에 북한에서도 간간히 방송을 통해서 알려졌음직한 가수들이자, 왠지 그들의 노래가 한국인의 정서적인 측면에 아주 잘 맞는 분위기를 가진 가수들로 구성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조용필은 과거에 그의 앨범에서 한국의 민요와 동요등을 개작하거나 현대식으로 바꿔서 부른 노래들이 많이 있었다. 그의 80년대~ 90년대의 과거노래들은 그 시대의 한국인들에게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시키기에 아주 적합한 서정미를 갖춘 노래였기 때문에 단연 전국적인 인기를 누릴 수 밖에 없었고, 과거 한국전 이후 2세대가 흐르는 동안의 세월동안 현대식으로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바뀌어버린 한국인들에게 가장 감성적으로 적합한 대중가요를 파급한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조용필이 부른 '꿈의 아리랑' 이라는 노래는, 아리랑 노래를 현대식 감성적문학관으로 바꿔서 불렀던 현대적 풍의 아리랑 노래이기도 한데, '꿈의 아리랑' 이라는 이 곡은 남북한 고위급 대화나 공식만찬 등에서 빠지지 않고 불리워졌던 히트곡이기도 하다.

남북한 분단국가의 정치적 이념과 정책노선의 비동질성을 떠나서 본래가 같은 민족으로서 비슷한 정서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리랑이라는 노래는 남북한 국민들 모두에게 동일한 감성적 느낌으로서 불리워질 수 있는 한민족 고유의 노래이다.

하지만 북한의 오래된 폐쇄적 문화정책으로 인하여, 북한 주민들 중에서 과연 아리랑이라는 노래의 가치와 그 숨은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조용필의 '꿈의 아리랑' 이라는 노래만은 전통아리랑 보다도 북한에서 훨씬 더 북한주민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노래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북한의 상류층 이상의 가정에서 TV 시청을 통해서라도 혹은 불법 방송수신으로라도, 조용필의 북한 방문이나 통일문화축전 등을 통해서 '꿈의 아리랑' 이 오랫동안 들려져 왔었기 때문에, 지금의 북한주민들에게는 전통적 아리랑 노래보다는 조용필의 '꿈의 아리랑'이 훨씬 더 익숙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조용필 가수의 두번째 평양방문 공연과 그의 노래인 '꿈의 아리랑'이 또 한 번 북한 주민들 앞에서 불리워진다는 것은, 다시금 깊은 역사적 의미를 가지면서도 그 시대적 가치가 아주 높다고 할 수 있겠다.

문화예술의 교류를 통한 정치적 노선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지 혹은 대중예술의 교류를 통해서 어떻게 유일한 분단국가의 아픔을 해소하게 될 지는 모르는 일이다. 비록 가수 조용필 자신의 70 평생의 염원이 담겨져 있는 두 번째 북한 평양공연으로서 그리고 민족적 화해의 소명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보려는 그의 굳은 심지역시 아름다운 것이지만, 이번에 평양공연에서 조용필의 히트곡인 '꿈의 아리랑' 은 또 한 번 평양의 하늘에 울려퍼질 것이고 '꿈의 아리랑'을 듣는 수많은 북한 주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그들의 눈시울을 붉게 적시게 될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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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필이 오빠, 제가 알기로는요....70년대 중반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이미 떴어요. '창밖의 여자'는 그 뒤 노래일 거에요. 양목님 글이 묶여서 나중에 출판이 될 수 있는 형태의 글이라고 생각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라는 뜻에서 ...

조용필이 인기가수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76년 2번째 앨범의 삽입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인기를 얻고부터입니다. 그러나 인기를 얻자마자 과거의 대마초 흡연경력이 문제가 되어 1977년 방송출연금지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1979년에 해금이 된 이후 '창 밖의 여자' 를 히트치면서 다시 방송기에 등장하였던 것입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조용필이 처음으로 대중적 인기몰이를 했던 곡이기는 하지만, 방송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계기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 그랬군요. 용필 오빠 화이팅!

어서 통일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많은 문화 교류가 이행 되었으면 좋겠네요.

꿈의아리랑 노래의 이야기와 역할 잘 알아갑니다. : )

이젠 어느 정도는
많이 알아듣고 공감하면서
뜨거운 박수를 받지 않을까 싶네요

대학생때 알바할 때 서울 올림픽 공원내 호텔에 숙소를 두고 있었는데 그때 조용필 대뷔 30주년? 40주년?ㅋㅋ 공연을 올림피 공원 내에서 해서 가서 봤었어요. 그닥 그분의 팬이 이니었는데도 거기 가서 공연을 관람하던 모든 분들과 울면서 박수치고 할만큼 감동적인 공연이었어요. 조용필의 음악은 말씀하셨듯이 단순한 뮤지션이 보여줄 수 있는 다른 어떤 부분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는것 같아요.

조용필.. 정말 역사이죠 대단하신 분이죠
도통 어렸을 때 티비에서 말고는 모습을 통 볼수 없는..
아마 성격만 좀 더 약간의 연예인병 근접했더라면 세계로 뻗어나갔을지도 모르는 분이에요 ㅎㅎ

해당 가수분께서
펼칠 노래를 들게 되는 이들을 마음에 통일이라는
불을 지폈으면 좋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이번 교류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래보네요..

가왕 조용필씨의 무대가 기대가 됩니다!! :) 주말 잘보내세요!!:)

예전에 조용필 북한공연때 관람객들이 울고 기립박수를 쳤던 화면을 본기억이 있습니다.(맞나?가물가물) ... 그때 나왔던 댄스가수들의 춤을보고 민망해하던데..ㅎㅎ 이번에도 좋은반응이 나올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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