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평가가 자기평가가 되지 않으려면: 내 경험을 투사하되 오차가 있음을 늘 기억하기

slowdive14 (63)in #busy • 6 years ago (edited)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의 기반은 다른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자기 경험이기 때문에 반드시 오차가 존재한다.

이런 오차에 대한 인식이 심리평가나 치료에서 매우 중요하다.

내 경우에는 치료에 비해 평가의 비중이 아직까지는 매우 높기 때문에 평가와 관련하여 말해 보자면,

심리평가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을 투사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검사 데이터는 말그대로 데이터일 뿐 그걸 해석하는 심리평가자의 경험이 투사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 데이터들을 잘 통합해서 한 사람의 속사정을 그려내려면 평가자인 내 경험을 투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오차가 있음을 간과하게 되면 타인에 관한 심리평가가 아니라 자기 심리평가가 되기 십상이다.

경험 투사에는 자기 역동 투사와 최근 배운 지식의 투사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예를 들어, 우울하거나 좌절스러운 상황에서 분노나 공격 반응이 나올 때가 많은 심리평가자는 내담자가 우울할 때 그런 식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틀에 은연 중에 갇히기 쉽다.

그리고 여러 검사 사인 중에 그런 반응에만 선택적인 주의가 가기 쉽다.

비슷한 예로, B군 성격 특성이 강한 심리평가자는 C군 성격 특성이 강한 심리평가자보다 B군 성격 특질에 관한 검사 사인에 주의를 기울이기 쉽다. 진단도 아마 그런 쪽으로 더 자주 나갈 것이다.

최근 지식의 투사는, 이런 거다. 내가 최근에 Schizoid Personality에 관해 배웠다면 평가 받으러 온 환자나 내담자가 다 Schizoid하게 보이기 쉽다. 이런 편향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가 있을 정도이다.

성격이나 정신병리의 특성에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Schizoid한 면, Narcissitic한 면, Antisocial한 면 등등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동에 대해 세심하게 기술하지 않는 경우 사주나 손금 평가와 다를 바 없이 되기 쉽다.

심리평가가 평가자의 역동이나 최근 배운 지식을 투사하는 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던 '오차'의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는 자기대상(self-object)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아기의 자기대상은 주로 엄마다. 아기는 엄마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신체의 연장, 즉 수족처럼 생각한다. 그 수족이 관심도 주고 인정도 주고 밥도 주고 하니 인간에게 자기대상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 할 수 있다. 나중에 이 자기대상은 문학이나 영화처럼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산처럼 자연이 될 수도 있고, 종교가 될 수도 있다.

성인 되면서 다른 사람을 자기대상으로 보는 경향에서 벗어난다. 청소년기에서 성인으로 넘어오면서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른 욕구와 감정과 생각을 지닌 존재임을 온몸으로 배우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잘 성장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자기의 연장으로 보려는 성향이 내 안 어딘가에는 남아 있고, 그런 성향이 특히 잘못된 공감이나 잘못된 심리평가로 나오기 쉽다.

일전에 @room9님이 구분하지 못하면 힘들어진다는 글을 써주셨는데, 어디까지가 나의 역동이나 관심사이고 어디까지가 타인의 역동이나 관심사인지 파악하는 것은 심리평가나 치료라고 하는 전문적인 장면에서 엄청나게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상담심리전문가나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고 나서도 계속 상담을 받아야 되는 이유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