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부리] 난지도

in #busy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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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양대교를 북단 쪽으로 넘어가 첫 번째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다보면 왼쪽에 오래된 버스회사가 보인다. 142번에서 몇천번대로 버스넘버는 바뀌었지만 사옥과 넓은 주차장은 옛날 그대로이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하늘공원을 오른편에 두고 직진하다가 월드컵 아파트 전 신호에서 좌회전 후 다시 얼마간 직진하면 상암동의 구시가지를 볼 수 있다.

상암초등학교 건너편 쪽이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집들과 상점들은 허물어져 새로 들어섰지만 길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니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허물어졌을지도 모른다. 구시가지 밖의 논밭과 야산과 유일한 공중목욕탕과 보신탕집은 고층건물과 넓직한 아스팔트길에 깔려 자취를 감췄다.

신도시가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 지금의 하늘공원은 거대하고 흉물스러운 쓰레기더미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서울의 온갖 생활쓰레기들이 덤프트럭에 실려 난지도를 더럽히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의 높이에 오르기까지 족히 30년 가까이 걸렸을 것이다.

난지도와 상암동 사이에는 작은 샛강이 흘렀다. 한강이 샛강과 나뉘어져 난지도를 둘러싸고 있었겠지만 쓰레기더미가 한쪽을 막아 버렸다. 물은 서서히 썩어갔고 뻘은 쌓여갔고 커다란 스티로폼 덩어리들이 떠다녔다. 스티로폼은 몸집 작은 초등학생들의 1인용 카누가 되기도 했다. 샛강을 막은 쓰레기는 상암동 쪽의 매봉산과 연결되었다. 매봉산 기슭을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슭을 완전히 돌면, 그러니까 매봉산을 넘어가게 되면 상암초등학교가 나타나고 지금의 구시가지가 펼쳐진다.

아버지가 기사로 일하시던 142번 버스회사는 국방대학원 근처라 어린 나에게는 꽤 먼거리였다. 아버지 따라 몇 번 가서 반지하 노조사무실에도 들러보고 버스에 함께 타고 신림동 서울대학교까지 갔다 오기도 했다.

황석영님의 개밥바라기별은 우리가족이 상암동을 떠나고 몇 년 후의 이야기일 것이다. 간혹 지나갈 때마다 쓰레기가 아파트 한 층씩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강변북로가 뚫린 후에도 난지도는 한참을 냄새의 악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메탄가스를 방구처럼 내뿜어서 서울시민의 난방에 사용할 수 있을 거라던 얘기는 더 이상 없다. 스티로폼을 타고 막대기를 뻘속 깊숙이 꽂아 넣으며 건너던 샛강은 월드컵공원 앞 작은 시냇물이 되었다. 일용할 칡뿌리를 내어주던 매봉산은 뭉텅 잘려나가 변발이 되었다. 초등학교 건물도 헐려서 위치를 바꾸었고 불량식품만 팔던 작은 문방구들도 문을 닫았다.

지금도 그 동네에 가서 "어이" 하면 토박이가 되버린 동창들 몇 명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상암동이나 난지도의 가난한 옛 모습은 아쉬운 추억이 아닐 것이다. 기억의 한 쪽이 허물어져 가도 안타깝거나 아쉬울 건 없다. 어느 날 배추밭의 기억이 깻잎으로 바뀌거나, 통째로 없어져도 논바닥에서 썰매 타던 겨울은 남아 있다. 썰매가 없어져도 매봉산 칡뿌리와 신문지로 만든 연과 아카시아 꽃은 남아 있다. 그런 것들이 차례로 모두 없어져도 구시가지의 골목은 여전히 남아 있고 난지도의 쓰레기더미도 하늘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개발시대를 살아 온 사람이라면 이런 극적인 변화를 겪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새로운 것을 위해 한 발 물러서 주는 게 지나간 것의 미덕이다. 머리속에 있는 선명한 지도는 물이 번지듯, 군데군데 지워지고 흐려지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시간 앞에 초라해지는 것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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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142번 버스가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종로학원 서울역 숙명여대 대성학원 서울대 숭실대 중앙대 를
쭉쭉쭉 연결하던
청춘들의 버스였죠?

네,, 서울대에서 턴해서 다시 왔죠,,, 숭실대랑 중앙대는 들렀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네요...ㅎㅎ 아시는 분이 계시다니 반갑네요...ㅎㅎ

다시 본문글 읽어보니,
제2자유로 타기 위해서
가양대교 북단 첫4거리 좌회전하는데,
인근에서 버스 차고 얼핏 본듯한데,

거기가 추억의 142번 종점이었군요..

알게되어 감사..

거기도 알고계시네요 ㅎㅎ 그 사거리 지날 때마다 물끄러미 바라봐요 ㅎㅎ

종로학원과 대성학원까지
연결했던 것으로
생각나네요..

위 댓글 수정..

와~ 글이 너무 멋지네요!
저도 얼마 전 제가 살던 고향 동네에 가봤더니 너무 많이 변하고 예전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넓게 느껴졌던 골목이 왜이리 좁은지... 참 신기하더군요.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릴적 엄청 큰길도 지금 보면 그냥 편도 1차선 도로죠.. 운동장도 알고 봤더니 어느 집 앞마당 이었었구요.ㅎㅎ

늘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속에 사는듯 합니다 늘 그렇듯 옛날은 그리움 입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ㅋㅋ 더 재밌게 놀 수 있을 듯.... 아무 생각 없었는데 말이죠...ㅎㅎ

난지도 난지도 난지도...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이젠 정말이지 쓰레기가 덜 나오는 삶으로 가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스팀잇은 괜찮은 곳인듯 ㅎ
디지털 쓰레기를 많이 걸러주니까^^

난지도도 공원이 되었잖아요...ㅎㅎ 스팀잇은 액기스, 정수, 핵심, 이런 말로 대표되기를 바랍니당..ㅎㅎ

서울에 오래 살아본 적은 없지만 옛 고향이 엄청나게 개발되면서 몇 몇을 제외하고는 흔적이 사라졌군요

가끔은 옛날 생각이 나고 그리우시겠지만 ㅎㅎ

자연의 시간의 흐름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할거에요

그렇죠? 아쉽긴 하지만 만약 그대로라면,,,, 엄청 암울하겠지요...ㅎㅎ 지나간 건 지나간거죠..ㅎㅎ

그 동네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개발 되기 전 난지도를 몇번 지나가 본적은 있는것 같아요. 나중에 상암동 월드컵 구장 소식에 엄청 놀랐잖아요. 관련해서 재미난 추억 이야기 들려주세요. 개밥바라기 친구들처럼 토박이들 스토리가 궁금하네요. ㅎㅎ

아 감사합니다.... 이거 한번 써먹었는데 또 하면 욕먹겠지? 하고 있었거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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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 하더라도 어렸을적 놀던 모래밭 놀이터가 지금 아스팔트로 덮힌 모습을 보면서 시대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ㅎ

변하지 않은게 어디 있겠어요.. 누구나 한두장면쯤 맘속에만 담아논 장면들이 있을거에요..

서울에 살지 않아 지리는 잘 모르지만 시간앞에 만물이 초라해지는 것 같습니다

과거야 점점 초라해지겠지만 농부소년님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잖아요..ㅎㅎ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즘 busy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비지 이놈이 세번 포스팅 하면 한번씩 오더라구요..

먹먹해지는 글입니다.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선명한 것들이 있어 초라해지지만, 괜찮다, 그렇게 이야기해봅니다.

선명한 것이 남아 오래도록 간직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건 없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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