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28

in #busy5 years ago

오봉환(7연대 대전차포중대 1소대) 2

두 번째 증언내용은 다음과 같다. “(입대전 주요 경력은?) 고향 황해도에서 학교도 얼마 다니지 않다가 47년에 월남하여 서청에 있다 제1연대에 입대학 경력밖에 없다. (전쟁 전 대전차포 교육 수료할 때까지의 과정은?) 1948년 1월에 영등포 리용부대(포교)에서 교육받았다. 사령관 장은산 중령, 단장 이규상 소령 교육기간 6개월 이었다. 이때 중대장 송광보 대위, 1소대장 심일 소위, 2소대장 안병□, 3소대장 신모 소위, 4소대장 신백 대전차포는 1개 소대에 2문 중대에 6문이었다. 그런데 4소대는 지뢰매설 소대라고 하여 대전차포가 없었다. 중대 병력은 약 130명 우리는 교육 중 한 개 중대를 완전 편성하여 받고 이 팀이 그대로 제7연대에 갔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 상대방은 알 수 있고, 전투 때도 전우애가 컸다."

"(7연대에 배속 됐을 때 전투서열에 변경이 없었는지?) 연대장은 고□□중령이 하다가 사단□□으로 임부택 중령이 하였다. 지휘관 성명은 아까와 같고 분대장 안창호 일중이 했는데 아직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쟁 시 주요 참가전투는?) 춘천-신림-영천-현리-동해안의 백석전투이다. (각급 지휘관을 모시면서 느낀 성품, 지휘, 기타에 대하여) 연대장 임부택 중력, 공사를 구분할 줄 안다. 예를 들면 당번이라도 구두를 닦는 일 따위는 안 시켰다. 타부대에서는 사적으로 총살을 시킨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런 것이 없고 병사들은 인정이 많고 인격이 훌륭하다고 평했다. 송광보 중대장은, 착실했고 부하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분이었다. 심일 소대장은 함경도 출신인데 미남이고 항시 말채찍을 들고 다녀 중대장이 못마땅해 했다. 연대장에게도 올바른 얘기는 곧대로 하여 사병 등의 인기가 컸고 다른 소대장은 감히 따라가지 못할 호걸이라 했다. 거기에 구렛나루까지 하여 아주 멋이 있었다. 안병□소대장은 차분하고 샛님이라고 했으며 심일소위의 인품이나 실력에 따라가기 힘들었다. 심일소위의 그림자 같았다."

"(전선에 전쟁 전 진지구축이나 진입훈련은?) 먼저 방어선에 대하여 1-2선까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1진지(선)는 현 접촉선, 2진지(선)은 옥산포 선이며 보병도 이곳에 진지구축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57mm 대전차포중대도 1선 전투일 경우에는 38선 바로 뒤 모진교 동쪽에 진지를 점령하고 28선 전투일 경우는 옥산포 앞 급커브된 능선이었다. 평시에 진입훈련도 했으며 소양교 북안은 □□으로 하여 옥산포에 이르는 곳에 1□진지(1선), 2□진지(2선)이 있었고 천전으로 가는 길에도 1□, 2□진지가 있었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내가 생각할 때 깃대봉과 38교가 1,2□진지로 알고 있다."

"(6.25 전의 행동을) 연대 본부는 춘천역앞에 있었고 대전차포 중대도 연대본부와 함께 있었다. 24일밤(2200) 비상이 걸려 2대대가 출동중 25일 아침에 □□했다. 이날 2400 또 비상을 걸었다. 이와 같이 연대는 하루에 한번 정도는 비상을 걸고 있었다. 이 비상이 적의 동태를 알고 걸었는지는 □□이나 가끔 걸었다. 이날 나는 주번하사였다. (6.25가 발발한 날은) 이날 0400 비상이 걸렸다. 나는 주번을 끝나면 나갈려고 외출복 준비도 했는데 비가 와서 나갈 생각이 없어 그대로 있었다. 중대에서는 몇 명인가 외출, 외박 나간 것으로 기억된다."

(출동 준비에 대하여) 이때 대전차포 견인 스리코타, 105mm 야포, 대전차포도 다이야가 버린다고 하여 동발에 묶어 놓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전차포 실탄은 거리가 먼 연대 탄약 창고에 있었다. 비상과 동시에 연대본부에 가서 탄약, 화□을 날라오고 그때서야 동발을 끊고 하다보니 0700경엔가 출동할 수 있었다. 출동은 1소대(나의)만 한 것으로 알며 나머지는 대기포로 있었든 것 같다. 1소대는 옥산포로 갔으나 2□진지에도 진입못하고 그래도 아래와 같이 배치했다. (전차와의 대전 상황은?) 25일 1500경 적전차 3대가 옥산포로 남하했다. 적 보병은 전차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때 1소대는 포 1문만 배치하고 1문은 뒤에 두었다. 배치할 공간이 없었다. 완전히 배치되어 사격할 준비가 됐을 때 전차 3대가 목전에 나타났다. 그것도 선두전차는 나의 조준경에 들었다. 약 10m 전방이었다. 나는 힘껏 줄을 당겼다. 바로 눈앞에서 번쩍하고 명중했는데 그대로 굴러오지 않는가. 우리는 포를 놓고 그대로 피신했다. 뒤에 안 일인데 일탄이 적 전차의 잠망경을 뚫고 들어가 조종사와 옆에 타고 있던 무전병의 목을 쳐서 전차는 그대로의 힘으로 달려와 대전차포를 깔고 뭉게 파괴되고 말았다. 이때 이 포탄(파편)은 연대장에 드렸던 기억이 난다. 어째든 선두전차가 갑자기 멎자 10m 뒤에 후속하던 전차가 앞전차를 들이받아 정차되고 나머지 3번차는 차머리를 돌려 도주했다. 적 전차병 1명이 하차하여 도주하는 것을 안창호 분대장이 사살했다. 그 뒤 심 소위가 나타났다. 이번 사격은 분대장과 나뿐의 행동이었다. 나머지 전우(2개 분대뿐이었는데, 1개 분대는 7명)들은 그곳 도랑에 배치되어 있었다. 나와 분대장은 포1문이 파괴되어 처벌대상이 된다고 걱정했는데 이번 성과로 적이 지연(진격)됐다는 바람에 처벌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심일소위가 활약한 전투장면과 비추어 볼 때 상당한 차이가 난다, 귀하의 생각은?) 실제로 내가 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공적은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

"(26일 전투에 대하여) 다음날 우리는 오모(일중) 분대장이 이끄는 1소대포와 기타 4문의 포가 중대장 송대위 지휘하에 이날 아침 소양강 차안의 제방에 배치됐다. 이 때는 연대장, 중대장도 우리 포가 방렬된 곳까지 나와서 격려해주셨는데 여기서 또 대안(제사공장)에 나타난 전차를 사격하여 파괴했다. (이 무렵 춘천시민이 작전에 많은 협조를 했다는데...) 주민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식사를 해주고 함지에다 밥을 날라와 배불리 먹으면서 싸웠다. 그런데 26일까지도 춘천시민은 장사를 계속했으며 진열장도 그대로 놓고 있었다. 그만큼 7연대를 믿고 있었다. 말듣기에는 사수한다고 하다가 철수하는 바람에 많은 시민이 피난도 못나가고 고생한 줄 안다. 우리는 다만 그런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연대 지휘소는 어디에 있는 것을 보았는지) 내가 알기로는 봉이산정이 아니고 소양강 쪽에서(현 파출소) 산정으로 올라가다가 중간쯤 되는 오늘날의 무슨 소양정인가로 알고 있다. (소양강 차안에서 적의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격전이 전개되었다는데) 나는 포병(실은 보병임)이기에 차안에서 본 광경은 □□했다. 적 포가 춘천시내, 제방할 것 없이 쏟아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놈들이 어쩌자고 종대를 져서 내려왔다. 이들은 길을 따라 내려오고 모래밭으로는(북한강 우안을 말함) 적 기병 100여기가 달려왔다. 이놈들에게 쏴서 무척 죽였고 인민군 대열에도 조준 사격하여 무수히 죽였다. 이놈들이 이때부터 산개하느라고 야단이었다. (소양강에 사람이 도섭할 수 있는 곳을 아는지.) 안다. 후평동이라고 있다. 그곳은 가능하다고 교육 때 들었으나 실제 못 가봤다. 선배들은 건넜다고 한다. 하상은 모래인테 건너기 알맞다고 했다. (대전차포가 먼저 춘천을 철수했다는데) 27일에 원주까지 철수했다. □□에는 간단히 내려서 사격 몇 번 하고 전투다운 전투가 없었고, 무슨 부대가 어떻게 배치됐는지도 모른다. 병사였기 때문이다. 27일 원주에서 오니까 사단 사령부에는 솥까지 빼가 버렸다. 이곳까지 병력의 손실은 우리 중대에는 없었다."

"(이 전투에서 사기가 오른 이유를 말한다면) 우리 모두는 지원병이었다. 여기에다 1949년 11월에는 연대 기동훈련을 한 경험이 있어 실전은 경험이 없어도 전투도 하다보니까 훈련의 연장일 것으로 보였다. 우리들은 정말 훈련 때와 같은 마음가짐이었지 전투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만큼 사기가 충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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