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커피 #1. 그리스인 조르바
지난겨울 잠시 집에 들렀을 때 동생에게 추천받은 책이다. 읽을 책 목록에만 적어두고, 사 오는 것을 잊었는데(집에 있던 책을 그냥 들고 올걸 그랬다.) 마침 buk.io에 있어서 스팀으로 구매했다. 스팀을 구매한 적은 있어도 써 본 적은 없는데, 페이아웃 된 스팀으로 결제했더니 오랜만에 직접 번 돈을 써서인지 기분이 묘했다.
자유로운 삶
작가는 화자와 조르바를 통해 어떻게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화자는 ‘붓다와 목자의 대화’를 거듭 읽으며 자신의 책 ‘붓다’를 집필하는 사람으로, 정신적인 수양과 무소유에 따른 자유를 갈망한다. 그는 금욕적인 태도와 책을 통한 이해가 그 길이라 믿고 있었지만, ‘책벌레’라는 친구의 한 마디에 인생의 궤도를 바꿔보기로 하고 크레타로 향하던 중 조르바를 만난다.
조르바는 정반대의 사람으로, 결혼은 정직하게 한 번, 부정직하게는 천 번 넘게 했다고 주장하며, 전 직장에선 아무 이유 없이 주인에게 주먹을 휘둘러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상대를 측은하게 여길 줄 알며, 맛있는 술과 음식을 즐기고, 기쁘면 춤을 추고 산투리(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만 배울 뿐, 삶을 즐기고 휴식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얼마 전 남편이 “집에서 쉴 때마다 그 시간에 조금 더 공부해야 업무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라고 했다. 일을 덜 즐겼던 나만 그렇게 느끼는 줄 알았는데, 남편도 똑같다고 하니 미안해졌다. 이해가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과연 어느 시기에 온전히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쉴 때는 쉬어보자고 답했다.
이런 우리의 삶과는 달리 금방 죽어도 억울하지 않을 듯이 현재를 살아가는 조르바. 본인의 만족을 위해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는 그는 썩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신기하게도 제 밥값은 하며,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는 그의 삶만큼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화자는 조르바와 생활하면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새로운 일들을 경험함으로써 자유를 느끼지만 조르바에게 부정당하고 만다.
조르바는 한 때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정처 모를 방랑자일 뿐이다. 사랑하는 산투리와 자신 외에는 가진 것도 없어 보인다. 스쳐 간 여자는 많았지만, 딱히 마음을 내어 주진 않아 그들과의 이별은 물론 죽음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이 그토록 원했던 무소유에서 오는 자유는 오히려 조르바의 것이다.
나라면 과연 그 줄을 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아들딸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남편과 아내로,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책임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조르바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소중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나는 현재에 충실하면서, 긴 줄에 묶인 삶을 살고 싶다. 다만, 자유와 물질, 깊은 인간관계 모두를 원하는 이 욕심 가득한 마음을 갖고도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극과 극인 두 인물
작가는 두 인물을 왜 이렇게 극과 극으로 묘사했을까? 책 속에서의 화자는 ‘붓다’라는 책을 집필 중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찾아보았는데, 실제 이 작가도 ‘붓다’라는 희곡을 집필했다. 결국 ‘붓다’를 향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생긴 내적 갈등을 서로 다른 두 인물을 통해 풀어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단점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많다. 각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함인지,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1940년대 그리스에서 쓰인 소설이라 그런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소설 속의 대부분 인물이 무지하고 부도덕하게 그려졌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어본다.
그 외
우리는 집 밖으로 나왔다. 별들이 꼭 라이터 불꽃처럼 하늘에서 반짝거렸다. 은하수가 하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흘렀다. 바다는 거품을 내며 부글거렸다.
나는 바위 그늘에 누워 멀리 평야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공기에서 샐비어와 백리향 냄새가 향기롭게 풍겼다.
장면 하나하나, 풍경, 향기에 대한 묘사가 섬세해서 그 장면들을 실컷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영화도 있지만, 가장 잘 만들어졌다는 작품은 아쉽게도 흑백 영화라고 한다. 그만의 장점이 있겠지만, 색채를 담을 순 없을 것이기에 아쉽다. 언젠가 이 책이 향기까지 동반한 영화로, 또는 향기를 가진 연극으로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다음 글 : 조화로운 삶
어언 20년 전에 무려 "희랍인 조르바"라는 이름으로 된 책을 읽었더랬죠. -_-;;
세월이 지난만큼이나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네요.
오.. 맞아요. 읽은지 오래된 책은 내용이 가물가물 하지더라고요.
얼마 전에 15년 만에 연금술사를 다시 읽었는데, 내용도 새롭게 느껴졌고 그 땐 스쳐지나갔을 스페인의 풍경이나 이슬람문화에 대한 묘사가 이제는 확 와닿아서 좋았어요.
스팀으로 책도 구매가 가능하군요.
네. 책 한권 사려면 신용카드 꺼내야하고 귀찮았는데, 스팀커넥트 통해서 바로 결제가 돼서 신기했어요.
자유롭고 싶다는 건 묶여있다는 증거겠죠. 죽을 때 까지 얻기만을 바라야 하는 것이 자유인가 보네요..
저는 무소유에서 오는 자유가 아닌,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자유를 누리고 싶은데 우리는 몇 살 까지 살게 될지 모르는 존재라 결국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게 돼요.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삶을 원하는데, 그건 남편의 의견도 중요하고 그에 따른 자금도 필요한 터라 과연 그렇게 진행할 수 있을지, 언제부터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색을 하게 만드는 구절이 많나 보군요.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동생이 재미있다고 추천해줘서 가볍게 읽을 책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다음에 만나면 왜 이 책을 권했는지 물어봐야겠어요.
서평단 지원에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편하게 책을 구입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책장 한 구석에 꽂혀있는 조르바. 멋진 캐릭터입니다. 베개 속을 뭔가로 채웠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려 쓸 내용이 많더라고요.
조르바 흑백영화 그거 정말 좋긴 좋습니다. ㅎㅎ
앗! 어떻게 구할지 찾아봐야겠네요.
써니님 덕분에, 문학이란 말이 향기롭게 다가오던 시절, 그 오래된 책장으로 돌아간 듯 해요. 내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꽤 무거웠던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당시 번역 문체로 인해 더 그러했던 기억도 함께 ㅎㅎ 그래서, 모든 원서를 그 언어로 읽어보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지요 ^^
오 맞아요. 이 책은 특히 원서가 궁금한데 그리스어로 쓰여졌대요..
학교 다닐 땐 영어로 된 소설도 읽곤 했는데, 요샌 공부하기 귀찮은지 굳이 한국 다녀오는 분들께 책을 부탁하게 되요. ㅋ 사놓은 책들 읽고 나면 원서로 눈을 돌려볼까봐요.
해맑은 수탉, 조르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에 조르바라고 나와서 @zorba 해외 소모임 운영하시는 분 얘기인줄........ㅋㅋㅋㅋㅋ
무식하면 많은 상상 또는 생각을 하게 되죠 ㅎㅎㅎㅎㅎ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써니님도 마나마인 이시네요 :)
ㅋㅋㅋ 안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그분은 왜 zorba라고 지으셨는지 궁금해졌어요. 자유로운 인물이기도 하지만... 워낙에 난봉꾼으로 묘사돼서요;;;;;
ㅎㅎㅎ 언젠가 기회가 되면 물어봐야겠네요 :)
아.. 아쉽게 kr-overseas 를 안썼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