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in #booksteem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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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한권으로 출판이 되기는 했지만, 원래는 각각 1.비밀노트, 2.타인의증거, 3.50년간의 고독 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2-3년의 기간을 두고 출판된 독립된 세 권의 책이다. 작가가 처음 비밀노트를 낼 당시에도 그 후에 속편 성격의 책들을 출간할 의도조차 없었다고 하니 읽어보면 독립적으로 세권 모두 충분히 스토리가 풍부해서 단행본으로 따로 읽어도 크게 무리가 있는 소설은 아니다.

반추하면, 한 권의 책으로, 각 세편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 각각의 스토리 라인이나 형식, 문체 자체가 너무나 달라서 이 소설들이 과연 한 작가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간의 교차점이 거의 없어서, 미리 세 챕터가 시리즈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상당히 혼란 스러웠을 듯 싶기도 하다.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Lucas와 Claus, 철자 순서만 다른 두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다. 첫 챕터인 "비밀노트"에서는 이 두 쌍둥이 형제의 유년시절에 대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화자 자체가 아예 "우리"로 표현되며,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마치 한사람인 듯 행동하고 이야기하는데, 이미 이 첫번째 챕터에서, 책의 표지에서 밝힌 Lucas+Claus=나 라는 공식을 입증하기도 한다.

두번째 챕터 "타인의 증거"는 두 형제 중 남아있는 Lucas의 시점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이미 말했지만 첫번째 권 비밀노트와 별개로 읽어도 될만큼 독립적인 챕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선 챕터가, 누군가의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옮긴듯 우화적인 소설이라면, 이 두번째 격의 타인의 증거는 다분히 Lucas라는 다른 한쪽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전에는 없던, 인물의 심리묘사나 갈등, 혹은 행위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 나가며(1편 비밀노트가 사실적인 스토리 텔링에 집중한 반면), 독자로 하여금 사건과 인물에 대한 서로간의 개연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마지막 "50년간의 고독"에 들어가면 독자는 길을 잃고만다. 물론 두번째 타인의 증거부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이며, 소설의 골격이기도 한 Lucas+Claus 의 존재여부 까지도 끊임없이 고민하기도 하는데, 이 세번째 챕터에서는 그동안 약간의 삐걱거림이 있음에도 내 스스로 쌓아놓은 구조물들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게 된다. 흔히, 그럼 이게 다 꿈이란 말이야? 그게 전부 상상이었단 말이야? 라는 분개함으로 그동안 내가 들였던 흥미와 정성, 애착까지 모조리 흔들어 버리는 그런 식의 초반부는 이제껏 달려오던 마라토너의 입장에서 결승선을 보고도 질주하지 못하는 심정이 된다고나 할까...?

다행히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그렇지~? 그건 아닌거지~?? 라며 자위하며 끝까지 읽어내지만, 도대체 이제껏 달려오면서 내가 뭘 읽은걸까... 라는 의문이 계속 계속 남아있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소설이든 사회서든, 각 책들마다 패턴이라는게 있다는 걸 새삼 느끼곤 한다. 특히 소설이 그러한데, 그 패턴이라는 것은 독자들의 취향과 맞춰지는 어느 지점에서 어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외면 되어지기도 하는데, 가끔은 이 책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과 같은 독특한 형식과 패턴의 책을 대할 때 찾아드는 당혹감은 묘해서, 그게 베스트셀러든 아니든 간에 내가 제대로 읽어내고 있는지 혹은, 그 스토리를 아귀가 착착 맞도록 머리를 시스템화 시키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마치 이제껏 내가 모르던 어떤 매력있는 사람을 이제야 알아버려서 서운한 마음까지 드는 기이한 현상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 이 책을 내가 다 읽고도 아직 머리속에 명확하게 들어 앉히지 못한 인물들, 이야기들, 그리고 그 공간들 사이를 끝없이 유영하며 그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미루면서 계속계속 생각하고, 심지어는 생각하는 것 자체를 독서의 연장선 이라고까지 여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책읽기 오락의 즐거움은 공명한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출판사에서 붙인 이름이다. 원제를 각 권마다 살펴보면

1.비밀노트: Le grand cahier / The Notebook), 2.타인의증거 :La preuve / The Proof), 3.50년간의 고독(Le troisième mensonge / The Third Lie)

첫번째 권 비밀노트는 프랑스 원제인 커다란 노트북에서 영어로 번역되면서 노트북이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최종적으로 비밀노트가 되었다. 가끔 나는 우리나라 영화나 책 제목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번역을 하고 있는지 진심 궁금해진다. 편집자가 책을 다 읽어보고 편집을 하는건 당연지사겠지만 이 노트가 비밀노트인지 열린노트인지는 독자들이 읽어보고 판단할 문제인데, 책 표지에서 밝힌 굵직한 책속의 열쇠들을 포함해서,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에서 제목들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두번째 타인의 증거도 마찬가지, 원제는 증거이다. 그 증거라는 것이, 타인의 증거라니,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타인이라는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야기 해나가는 화자를 제외한 사람일 수도 있겠고, 혹은 그 화자 자체를 상징하는 말이 될 수도 있겠고...

세번째 원제는 세번째 거짓말이다. 이 책을 하나로 만들면서 이미 가져다 쓴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피해서 또다른 제목을 만들다보니 50년간의 고독이라고 붙인듯 한데... 이 또한 편집자의 편향된 시각이다. 50년간의 고독이라니...- 이 문제는 내가 자주 방문하는 블로그나 최근 들은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여러번 지적된 사항이라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님.

그렇지만 책 자체의 번역은 그렇게 걸리지 않아 술술 읽히는 책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꾸준히 읽히고 명서로 꼽히는 책이기도 하다. 아주아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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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감사합니다~~!

역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랫동안 있는 책은 괜히 있는게 아니군요 :) 다음에 기회될 때 한번 꼭 읽어보겠습니다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파다님 감사해여 ㅎㅎ 제가 복잡하게 독후감을 썼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에 불과하답니다 ㅎㅎ

50년간의 고독이란 제목은 갸우뚱하게 만들긴 하네요..
표지로 책을 고르기도 하는 저에게
손이가기 어려운 책인듯 한데 후기를 보면
좀 더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네 안그래도 표지가 정말 마음에 안들었어요 처음 볼 때부터

오늘도 친구와.. 난 최근들어 소설을 너무 안읽는 것 같아.. 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이 또 한번 생각납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소설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지요 ㅎㅎ

엇 이런식의 책 좋아합니다 먼가 일상의 이야기인듯 하면서도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녹아들어가 있는.... 다음에 책을 살때 구해봐야겠습니다

약간 어둠의 자식들? ㅋㅋ 잔잔한 글은 절대 아니랍니다 ㅎㅎ

그... KFC 바비큐 소스 올려놓은 줄 알았어요...

ㅋㅋㅋㅋ 엉망이죠? ㅜ

북키퍼님 리뷰는 훌륭한데 책 표지가 못 따라가네요 ㅋㅋㅋ

그림이 에곤밀레...는 아니겠죠?
휴직하면 책 마니 봐야지 했건만...현실은...으허허허;;;;

휴직하시고 마음껏 여행 다니시니 그걸로 되었습니다 ㅎㅎ 부러워요 저는 ㅎㄹㅣㅎ

표지가 좀비가 나올 거 같기도 하고, 남녀의 사랑인가도 싶었어요. ^^;;
번역된 제목들은 꽤나 무거워서 선뜻 안잡힐 거 같은데 아주아주 재밋다니 궁금해지네요.^^

축구가 지고 상처받은 마음에도 이리 오셔 답글 남겨주시니
감사해요 미미별님 ㅜ

Screen Shot 2018-06-18 at 9.46.52 AM.png

이것도 일단 구매! 제가 (어쩌면 아내도) 조만간 읽겠죠 ㅎㅎ

아니면 아내분이 ㅎㅎ 감사해여~

늘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

좋은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저도 책을 좀 읽어야 하는데... 매일 나무위키나 읽고 있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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