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2024.7.28(일)
처음엔 철학책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조금 다른 전개에 놀랬다.
하지만 철학적 사유에 대한 최진석 교수님의 깊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철학책을 띄엄띄엄 보면서 어둡잖게 '나 철학 좋아해' 하며 우쭐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많이 부끄러웠다.
아무튼 이 책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면서 신선했고, 큰 반성이 되었다.
이 책은 철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철학을 공부하고 사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철학공부 지침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철학을 해야할까?
생각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다.
남이 만들어 준 생각과 판단이 아닌 내 스스로가 나의 상황에 맞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과거에 중국의 철학, 일제식민시대 철학, 미국의 철학을 받아 따라하기식 경제발전을 하다보니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어느덧 선진국의 문턱에 왔지만, 우리나라의 철학이 없이는 주인으로서 세계를 이끌수가 없다는 말씀에 동의했다.
철학적 사유를 많이 할수록 우리나라도 언젠가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철학은 현재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외롭고 치열하게 질문하면서 세계의 관찰과 내면의 몰입을 통해 깊이 사유하는 과정에서 태어난다.
말로 표현해보니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나는 그 안에도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만족과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열정이고 창조고 만족이며 행복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철학적인 삶을 추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전략과 전술의 차이
철학 = 고독, 궁금증과 호기심, 관찰과 몰입, 사유의 집요함, 경의
철학하는 사람은 지적인 민감성, 지적인 부지런함이 필요
철학적인 삶은 분명 또 하나의 세계를 생성한다. 판 자체를 보기 때문에 새판을 짤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삶은 변화의 맥락에 주도적으로 동참하는 능력이 떨어져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생산하기가 쉽지 않다. 판 자체에 대해서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새판 짜기'가 불가능하며, 따라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기존의 판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질문은 이와 다르다. 질문이 일어나려면 우선 궁금증과 호기심이 발동해야만 한다. 궁금증과 호기심은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다. 자신에게만 있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 이것이 질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이다.그래서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 밖에 없다.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한다.
독립적 주체로 선다고 했을 때 그 독립은 강제적으로나 수동적으로 맞이할 수 없다. 스스로 해야만 한다. 고독도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즉 기존의 지식과 이론에 근거해서 대답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낯설어지는 실험을 감행한다. 철학은 여기서 출발한다.
거듭 말하지만, 이론은 사유가 아니라 사유의 결과물이다. 철학적 사유는 직접 세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일이다. 사유의 결과물인 '이론'에 갇히면, 사유의 대상인 '세계'에 직접 접촉하려는 용기가 약해진다. 철학적 사유 대상은 기본적으로 현실이고 당장의 세계가 아닌가.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이다. 창의성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이다. 인격이라는 토양에서 튀어나온다. 삶의 깊이와 인격적 성숙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다.
절대적 높이를 가진 자는 외부에 반응하는 것을 자기 업으로 삼지 않는다. 자기를 이기려 하지 타인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경쟁 구도 속으로 스스로를 끌고 가지 않는다. 경쟁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그 구도 자체를 지배하거나 장악한다. 자기 게임을 할 뿐이다. 태연자약한 태도다. 그래서 자기가 애써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멸함으로써 승리자의 지위를 오래 유지한다. 나무 닭이 그랬다.그래서 노자도 "자신을 이겨야 진짜 강자다"라고 한 것이다.
일본이 초기 근대화 시기에 보여준 소위 '과장된 위기의식'이라는 것도 이와 유사한 정도의 민감성이 발휘된 것으로 볼 수 있다.이 모두가 우리에게는 좀 과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혹시 모를 화재에 이렇게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은 그 사회가 얼마나 고도의 민감성으로 유지되는지를 알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민감성이야말로 독립적 주체로서의 성격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발휘할 수 없다. 이것은 지적인 게으름이 습관화된 사람들에게는 발휘되지 않는다.
그런데 경험에서 얻은 단 하나 조건이 있다면 좌우지간 자신한테만은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길이 될지는 모르지만 해석되지 않는 어떤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절차나 순서나 내용을 정확히 인식하려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계를 자신을 직접 내던지는 일이다. 진실하게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다.
'카리스마'도 그렇다. 카리스마를 갖고 싶어서 내일부터 카리스마를 발휘해보려 하면 그게 되는가? 카리스마는 발휘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드러나는 것이다. 카리스마가 없다는 것은 내면의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카리스마를 가지려 애쓰지 말라. 차라리 자신이 이 지구라는 별에서 죽기 전에 하고 가야하는 자신만의 사명을 발견하고 거기에 몰두하라. 그러면 월등한 내면이 갖춰지고, 그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향기가 우러나오는데, 그것이 카리스마다.
나의 생각을 갖고 주도적인 삶을 살려면,
필요시 기존 틀안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낼 수 있으려면,
철학적인 삶이 필요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철학적인 삶이란 그저 오래된 이론들을 공부하고 뜻을 새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배움이 컸던 책입니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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