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남자] 어머니의 딸로 살겠습니다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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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월 15일 버스는 철암역 장상광업소 저탄장 앞에 선다.이제부터 걸어야 한다. 시장길을 돌아 건널목에 선다. 맞은 편은 대한석턴공사 장성광업소 산하 철암저탄장이다.
댕댕댕, 신호등이 울리고, 하늘을 향해 치솟은 가로대가 내려온다. 수평을 유지한다. 건널목 간수가 깃발을 들고 선다. 모든 사람들이 멈추고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쳘차가 지나간다. 가로대가 원위치로 올라간다.
다시 길을 걷는다. 학교까지 가려면 재를 넘어야 한다. 피넷재이다. 철암은 첩첩산중 깊은 산골이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광부들의 자녀가 다닐 학교를 지을 만한 부지가 없었다.집을 지을 땅도 부족했다. 당시의 집들은 비탈을 타고 올라가며 조개껍질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래서 땅이 조금 편평한 곳을 골라 상철암에 초중고 학교를 지었다.


2023년 3월 15일. 나는 건널목에서부터 낯이 익지만 낯선 남자를 만났다. 사진 속의 남자보다 10살이 더 어린 스물 두 살 남자가 같이 재를 넘자고 한다.
나는 낯선 남자와 재를 넘다 돌아본다. 그 당시 스레트 지붕 너머 새로 지은 교회가 보인다. 그 너머 산 아래 철암역이 있다. 푸른 지붕이 보이지만 42년전에는 모두 까만 지붕이었다. 석탄가루가 내려 앉아 길 조차 검은 먼지가 풀썩거렸다.
둘은 말이 없이 걸었다. 정상에 오르자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를 깨기 위해 물었다.


"젊은이는 어디를 가십니까?"
그는 숲 속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학교를 가리켰다. 새카맣게 탄먼지가 내려앉은 운동장. 그 운동장 가로 석탄을 실은 열차가 지나갔다. 철로가 놓여진 비탈에 철암중학교, 고등학교가 보인다.
"나도 저 곳을 갑니다. 42년 전에 저 곳 학교에 발령받었습니다."
나는 젊은이를 훑어 보았다. 참 애되 보였다.
"황지국민학교 근무하는 교사인데, 1982년 3월 15일자로 갑자기 발령받았습니다."
3월 1일 자가 아니고 3월 15일자 발령은 신규 교사가 아니면 잘 나지 않는다.
"사고를 쳤습니까?
"......?"
일명 중간 발령, 사고를 치면 근무하던 학교에서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쫓겨 가는 거다.
젊은이는 말이 없다. 분명 말 하지 못할 사고를 치고 가장 오지 중에 오지로 쫓겨가는 것이 분명했다.(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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