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사] 등대지기, 진이정 시를 읽는 시간

in #avle-pool2 years ago (edited)


등대지기 (진이정,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외로운 이는
얼굴이 선하다
그 등대지기도 그랬다
그의 일과 중
가장 부러웠던 것은
일어나자마자 깃발을 단 뒤
한 바퀴 섬을 둘러보는 일,
잰걸음으로 얼추 한 식경이면
그 섬을 일주할 수 있었다
나도 그런 곳에서
산보나 하며 살고 싶었다
한 식경이 너무 과하다면
몇 걸음 디디지 않아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어린 왕자의
알사탕 별일지라도

외로운 이는
마음이 고르다
그 등대지기도 그랬다
심심할 땐
바이블을 읽는다던 그는
할망당의 굿을 믿는
토종 인간이었다
하찮은 잡귀일지라도
박대해선 안 된다는 것을
어질지 않은 탐라의 바다에서
애써 깨우쳤는지
그는 만물에 대해 겸허했다

외로운 이는
가슴이 저리다
안개 조짐이 있던 날
나는 떠났다
떠나는 나를 위해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가 길게 길게
안개 신호를 울려주었다
짙어가는 연기 속에서
잦아지는 사이렌을 들으며
내 눈은 젖어들었다
아아 나의 등대는
이미 빛을 잃은 것이다
이제 내 가야 할 뱃길은
희미한 그림자 놀음,
누구는 나를 위해
안개의 나팔을 불어대고
누구는 또 나를 위해
안개의 올을 촘촘히 한다
(출처 : 문학동네에서 메일로 보내 주는 시입니다. )

아침에 일어나 시를 읽는다
한편의 시속에 담긴 삶을 찾아 읽고 사색한다
그 시가 밥이 되고 돈이 되지 않지만
시를 읽는 시간은 분명 내가 깨 어 있었을 거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삶 속에 스며 든 빛깔을 찾아서



Posted through the AVLE Dapp (https://avle.io)

Sort: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시는 하나의 통찰이군요!

넵, 그렇습니다. 정화이기도 하고요.

시를 통해 성장하는 하루입니다~^^

그렇습니다. 혹시 님께서
@kissteemkr 계정 운영하시나요?

네 맞아요 ~^^
재미스리님께서 도와주시면 더 큰 힘이 될 거 같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7
TRX 0.15
JST 0.028
BTC 58091.16
ETH 2357.50
USDT 1.00
SBD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