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소통하는 교양인을 위한 과학한다는 것" : 과학의 심미적 기능 [BOOK]

in #book6 years ago (edited)

   른스트 피셔는 현대의 핵무기 산업과 전쟁, 그 외 여러 가지 과학기술이 불러온 윤리적 문제들의 원인을 과학 안의 예술성의 결여, 즉, 심미적 기능이 마비에서 찾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피셔만의 독자적인 생각에서 비롯한 것은 아닙니다.

   근대과학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정확한 정보에 최우선 가치를 두었다. 그럼으로써 근대과학은 인류가 언젠가 단테Alighieri Dante가 그린 지옥의 온도까지 정밀하게 측정할 것이라는 갈릴레오의 소망을 두고 독일 시인 그륀바인Durs Grunbeins이 농담한 것처럼 정말로 '정밀성의 바보'가 되고 말았다.

478p
   합리적으로 계획된 과학의 발전이 곧 인류 문명의 진보라는 근대과학의 등식은 이제 성립하지 않는다. 적어도 과학 행위의 새로운 윤리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이 등식은 과거와 같은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과학의 새로운 윤리적 토대가 결여되어 있음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스위스 바젤 출신 생물학자 포르트만Adolf Portmann이 시사했다. 원자폭탄이 사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미 원자폭탄의 문화적·문명적 의미를 간파한 포르트만은 과학자들이 원자폭탄으로 만든 것은 강력한 새 무기만이 아니라 과학의 완전히 새로운 얼굴이라고 지적했다.

...


   포르트만은 과학 행위에 내재하는 심미적 기능의 평가절하가 서양 문명이 빠져든 과학의 '위기 상태'를 몰고 왔다고 생각했다. 문명의 위기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포르트만이 서술한 상황은 그 이후 근본적인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

479p

   저자는 과학의 심미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대부분의 사회와 종교계에서 민감한 주제일 수 있는 태아와 생명의 문제를 예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린 생명의 가녀린 숨결을 듣기만 해도 인간은 어린 생명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직관적으로 느낀다고 요나스는 역설한다. 이 직관이 요나스가 말하는 감각적인 인식의 기능이다. 철두철미하게 감각적인 자신의 통찰을 요나스는 압축적인 명제로 이렇게 요약한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라. 너는 이미 알고 있다." 아주 설득력 있고 아름다운 이 명제가 아마도 이런 것을 의미할 것이다. 네가 지금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는 느낌으로 안다.


482p

   우리가 만약 이제 막 발생하기 시작한 태아의 사지와 얼굴 윤곽을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태아를 보는 것이고, 솔직히 불필요한 시점 논쟁에서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도 분명히 아는 것이다. 우리는 태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태아를 보는 것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

483p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인간 교육의 과제를 위해 오로지 사고의 논리적 측면의 단순한 발전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윤리적인 토론이 진퇴유곡에서 벗어날 기회가 사라지고 있을뿐더러, 포르트만이 지적하는 사실조차 잊히고 있다. 가장 정밀한 연구 분야들에서 진짜로 생산적인 사고는 언제나 본능적이고 자발적이며 창조적인 작업을 요구했다. 맑은 정신에서 꿈꾸는 것은 마치 그 모든 감관의 체험처럼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가능성들을 열어 준다.

...


   과학이 자신의 심미적인 구성 요소를 명료하게 설명하고 이용할 줄 안다면, 이것은 다시 이해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과학은 예술과 문학처럼 인간의 조건 중 일부가 될 것이다.

484p

   피셔는 과학의 심미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것, 인간의 조건 중 일부가 되지 못하고 인지할 수 있는 현실에서 동떨어지게 된 것을 오직 과학을 하는 이들만의 상아탑에서 과학자들이 그들만을 위한 과학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가 '상아탑'이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을 발전을 위해서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한데, 그 곳에서 과학자들이 그들만의 과학에 파묻히지 않을 것이란 전제가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과학 발전을 위한 연구의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되는 상아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분명해져야만 하는 사실은, 이와 반대로 분리된 공간으로서 상아탑이 사회적 기능과 구실을 두려워하거나 방기하지 않을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는 연구자들을 위해 자유롭고 안정적인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분리된 서식지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가 이 뛰어난 연구자들이 절실히 필요할 때 연구자들이 그들만의 서식지에 머무르지 않으리라는 기대에서 나왔다.


487p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상아탑이라는 상징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말을 쓴다면 이는 대체로 비난의 뜻을 담고 있다. 솔직히 사람들은 상아탑으로 가장 먼저 망루 같은 것을 떠올린다. 자신들에게는 단지 금단의 만灣을 의미하는 곳을 지켜 내기 위한 망루, 행정가들이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자격 없는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감시하는 망루 말이다. 실제로 일반인들은 대부분 실제로 과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무엇인가가 자신을 위협한다고 느낀다. 망루의 표상은 아마도 일반인이 갖는 이런 불안 심리의 절대적 표현일 것이다.


488p​

   그리고, 피셔는 역시 해답을 '예술'에서 찾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과학은 어떻게 일반인들의 내부에 확실하게 자리 잡는다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우선 문화 교양층을 전제한다. 이와 관련해 그 방법은 바로 예술과의 연계성 속에 있다는 견해가 지지받고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과학은 예술의 도움으로 인간의 인지와 체험 능력에 호소하는 일반적인 형식을 가질 수 있다. 시적인 표상들을 이용하는 것은 과학의 대중적인 이해를 마련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단지 과학 연구들이 그동안 이룬 성과들을 이런저런 과학 전문지에서 베껴 대충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서술하고, 이런 방식을 과학의 대중화를 도모하는 일로 선전하는 것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489p
​   예술도 새로운 미학을 통해 과학을 전진시킬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사실 과학자들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일들이 아주 명백하게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 화면에서 이미지들이 색으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면(픽셀)들로 분할되는 것이 바로 그렇다. 이런 처리 방식은 쇠라George Seurat같이 점묘법을 쓴 화가들이 착상하고 제시했다. 또한 과학자들이 그들의 자료들에서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요소들을 뚜렷하게 강조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는 의사擬似 색채법도 이미 야수파의 회화 기법에서 유래한다.

491p
​   미래에는 더 많은 과학자들이 예술이 정말 자신들의 작업을 창의적으로 도울 수 있으며, 그들의 연구를 안팎으로 진전시킬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카오스 연구의 선구자 파이겐바움은 미술가가 그림 그리는 방식을 이해하면 곧 더 좋은 과학을 만들어 내는 수단에 대한 인지적인 통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조목조목 다 알지 못한다는 점이 아주 명백하다. 그리고 바로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그들이 하는 일은 과학자들이 하는 일과 기본적으로 같아서 언제든지, 파이겐바움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 "내 연구 과제 중 일부를 떠맡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술과 과학의 관계에 관해서라면 사람들이 항상 르네상스로 되돌아간다. 르네상스 시대에 과학적 사고와 예술적 사고는 높은 자질이 있는 개인이 충분히 영위할 정도로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다빈치가 이를 입증한다. 그의 작업에서 과학적 분석과 예술적 직관은 통일되어 나타난다. 그의 작업은 형태론적이라고 표시할 수 있는 세계관을 선보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사고의 움직임을 언제나 형상에서 그리고 형상으로 파악해 냈다.

495~496p

(본 글은 2015년 10월 14일 네이버 블로그에 직접 게재했던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NOTOS의 다른 글 보기

  • "세상과 소통하는 교양인을 위한 과학한다는 것" : 책 소개 [BOOK]
  • "세상과 소통하는 교양인을 위한 과학한다는 것" : 과학의 과학 외적인 것 [BOOK]
  • "코스모스(Cosmos)" : 책소개.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 (Book introduce) [BOOK]
  •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 제4차 산업혁명, 비트코인, 블록체인 [BOOK]


  • Sort: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네요^^

    강력추천합니다!^^ 좋은밤보내세요~ @mingee님^^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3
    JST 0.028
    BTC 66373.20
    ETH 3291.44
    USDT 1.00
    SBD 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