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review] <증인>, 힘을 뺀 상태의 아름다움

in #aaa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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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것들, 꽉 차서 더 들어갈 틈이 없는 것들을 보면 숨이 탁 막힐 때가 있다. 조미료를 자꾸 치고, 채워 넣으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보는 이들은 작위성을 발견하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연기에 관한 얘기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대상에 <증인>의 정우성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정우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무대 위를 올랐다. 정우성과는 다르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난 정우성의 얼굴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석규를 떠올렸다. 삶의 일부가 짓눌려 있는 사람이 가진 체념과 피로감을 표정으로 드러내던.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변호사 순호는 민변에서 대형 로펌으로 옮겨서 일하고 있다. 극중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순호를 원래 알던 주변 사람들은 순호가 변했다고 수군댔을 것이다. 그 수군거림을 듣지 않았다 하더라도, 순호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일말의 가책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민변에서 순호는 약자를 대변하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로펌으로 옮겨서 만났던 의뢰인들은, 자신의 범죄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도 없고 무례하다. 순호 얼굴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피로감이 엿보인다.

 정우성은 특별한 낙도 없이, 홀로 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순호의 역할을 맡았을 때, 어쩌면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며 잔잔한 일상 속에서 죽음을 앞둔 한석규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위로해주고, 곁에 있어주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그 표정이라면 순호를 표현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도. (순전히 내 추측일 뿐이지만.)

 정우성의 연기는 성공적이었고, 약간의 피로와 관조가 묻어 있는 그 표정은, 영화의 여백을 만들어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자폐아 역할을 한 김향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성장의 서사



 로펌의 대표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순호를 좋아한다. 로펌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순호를 대표 변호사로 키울 생각을 갖고 있다. 로펌의 대표는 순호에게 사회적 성공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제시한다. 얼마나 신나고 설레는 일인가. 로펌 대표가 순호에게 바라는 일이 순호의 가치관과 맞기만 한다면야. 하지만 이야기는 절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순호가 처음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와 로펌 대표가 제시하는 일은 서로 대립하고, 순호는 결국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다.

 이야기는 한 살인 사건의 재판과, 결정적인 증인인 자폐아와의 교감, 이 커다란 두 축으로 진행된다. 그 두 축은,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변화, 성숙으로 수렴된다. 결국 이 영화는, 한 어른과 한 미성년자의 성장 서사다. 어른은 자신이 원래 꿈꾸고 그리던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되고, 미성년자는 자신이 갇혀 있던 두려움을 뚫고 나온다.

 우리는 이야기의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야기들이 비슷한 골격 위에 다른 차체를 얹은 자동차 같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어떤 선택 앞에서 내적 갈등-사건 속에서 만난 누군가로 인해 깨달음을 얻음-사건 해결-내적 갈등 봉합-주인공의 성숙

 우린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이렇듯 사건과 내적 갈등이 얽혀 진행되는 서사를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은 역경을 겪고 힘든 선택을 하며, 끝끝내 성장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구조가 수없이 등장하는 것일까. 답은 명료하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성장은, 역경과 어려운 선택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음을 방증한다.

 완전한 인간이 있는가. 우린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 아니, 성장해야 한다. 50, 60세가 되어도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가 인간이다. 우리의 내면은 수시로 깨지고 균열이 일어난다. 그 균열을 진흙으로 메꾸고, 구멍 난 곳을 보수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고, 이 과정이 성장이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아!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사람은 어떤 사건을 통해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누군가가 바뀌었다면 원래 가지고 있던 좋은 것이 발현된 것이다.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난 게 아니라는 의미에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다. 사람은 원래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안에 좋은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어떤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지 우린 알 길이 없다. 그것이 발현되기 전까진. 이것이 수많은 이야기와 서사가 이야기하고 있는 진실이다.

 이 영화, <증인>도 그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니, 그것들 중에서 아주 볼만한 하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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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2002ks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fur2002ks님의 뻘짓 진행사항...시원한 아침이네요^^

...tar20 dalki3768 i2015park himapan bulsik ssonagee bluengel kyslmatedudream woolgom kstop1 jaytop parkname dorian-lee realsunny ...

저도 증인이지만 힘을 빼도 얼굴이 정우성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우성이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얼굴에 잔뜩 힘을 줘도 별 수 없는 얼굴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ㅋ 정우성의 아름다움에 일조하셨습니다..ㅎㅎ

뼈를 아주 박살을 내시네요 ㅠㅠ

그들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니,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ㅋ 증인님도..

티비에서 리뷰해 주는걸 봤는데... 아직 영화는 못봤네요^^

한마디로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자폐아 역할을 한 김향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연기를 보는 재미... 저도 한번 느껴봐야겠네요^^

전체적으로 잔잔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는 흐뭇하고 울림을 주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정우성 보는 재미가 쏠쏠했어요.ㅎ

잔잔하지만 흐뭇한 울림... 제가 좋아하는 영화네요^^

취향을 저격 당하시길요ㅎ

저는 등장인물에 자폐아나 장애인이 있거나 가슴 아픈 역사나 사건을 모태로한 영화는 보기가 많이 꺼려지더라고요. 이 영화 평이 아주 좋던데 제가 만든 진입장벽때문에 아직도 망설여집니다.

네 저도 그 부분은 좀 망설이는 편입니다만, 이 영화는 자폐에 집중하는 영화가 아니라 조금 결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전 90년대 로맨스나 휴머니티 영화가 주던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았어요.ㅎ

아... 그렇다면 조만간 봐야겠습니다.^^

전 어제 박화영을 받아두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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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잘 쓰십니다.
정우성은 공인으로서의 행보도 좋은데 이제 연기까지 ㅠㅠ

ㅎ 칭찬을 받았으니, 더 잘 쓰게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정우성은 참 번듯합니다. 불공평,,ㅋ

저는 정우성은 참 멋지게 나이드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도 현실의 이미지에서도.. ^^

네 정우성처럼 나이 들면서, 늙으면서 더 멋져지면 좋겠습니다ㅎㅎ

virus707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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