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review] <알라딘>, 갈등을 정교하게 직조한 현실 동화

in #aaa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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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정교하게 직조한 서사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윌 스미스의 코믹 연기, 화려한 CG의 향연, 그리고 수십 번의 클로즈업에도 새로운 감탄을 내뱉게 만드는 자스민 공주의 아름다움을 말할 것이다. 내가 감탄해 마지않았던 부분은,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갖는 갈등들을 천의무봉의 형태로 직조해낸 서사적 아름다움이다.

 이야기의 초반, 세 명의 욕망이 극을 이끌어간다. 자신의 왕국을 다스리고 싶고 속속들이 알고 싶은 자스민 공주의 욕망은 그녀를 왕궁 밖으로 이끌어낸다. 자신의 진짜 가치를 드러내고 싶은 알라딘의 욕망은 위기에 처한 자스민 공주를 구한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알라딘은 음흉한 마법사 자파의 눈에 띄고, 왕권을 노리는 자파의 욕망은 알라딘을 램프가 있는 동굴로 이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욕망, 램프의 지니가 가진 욕망은 알라딘의 가치를 시험하는 장치로서 극의 마무리 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야기를 발생시키는 사건이 우연한 것이 아니고, 저마다의 욕망이 극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그 욕망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 이야기는 자연스럽고도 흡인력 있게 전개된다. 각자의 욕망들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면, 캐릭터의 내적 갈등은 이야기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진흙 속의 진주가 될 것인지, 맑은 물속의 평범한 돌이 될 것인지



 고아 알라딘은 원숭이와 함께 거리의 좀도둑으로 살아간다. 그냥 보기엔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다. 하지만 알라딘은 언젠가는 자신의 진짜 가치가 드러날 순간을 꿈꾸고 있다. 진흙 속에 구르고 있지만, 스스로 ‘진주’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의식은 알라딘의 행동에 고귀함을 부여한다. 훔친 귀금속과 바꾼 음식을 가난한 아이에게 준다든가, 위기에 빠진 공주를 돕는다든가 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그저 그런 거리의 부랑아가 되기를 거부한다.

 현실과 자의식 사이의 괴리는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훌륭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거대한 딜레마가 처음부터 시한폭탄처럼 초침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알라딘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어떤 나를 받아들일까’

 알라딘은 자신을 제약하는 계층의 벽을 넘고 싶다. 하지만, 그 계층의 벽을 넘으려면 ‘다른 나’가 되어야 한다. 램프의 지니는 알라딘을 왕자로 만들어줌으로써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알라딘의 팍팍한 현실이 바뀌고 신분이 달라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알라딘의 훌륭한 자의식은 망가져간다. 그는 선택해야 한다. 진흙 속의 진주가 될 것인지, 맑은 물속의 평범한 돌이 될 것인지 말이다.

 왕자로 변해 자스민 공주 앞에 나타난 그는, 공주의 관심을 받는데 성공하지만 이내 공주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알라딘의 내적 딜레마는 영화의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결국 이야기는, ‘진짜 소중한 걸 얻으려면 진실이 필수적’이라는 교훈을 향해 달려간다. 전통적인 메시지를 촌스럽지 않게 표현한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많은 현대 영화들은 그 반대 지점에 있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진짜 나를 버리고 성공을 꾀하다가 몰락하는 인물 말이다. 알라딘 앞에 놓인 선택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내가 조금 변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도 때때로 마주하는 선택지다.

성별,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자스민 공주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이어 왕국을 다스리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이 별로 접하지 않는 방대한 양의 책을 읽고, 왕국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역량을 키워 왔다. 하지만 공주에겐 결정적인 제약이 있다. 바로 여성이라는 점이다. 아버지는 여성은 왕이 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양극화와 더불어 지금의 영화계를 이끌고 있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젠더 문제다. 요즘, 억눌려왔던 여성이 성별을 초월한 각성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개봉했던 <캡틴 마블>도 그 메시지 위에서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뿜어냈다.

 반역을 꿈꾸는 자파에게 통째로 왕국을 빼앗기는 일을 당한 후, 비로소 자스민 공주는 사회가 여성들에게 씌운 족쇄에서 풀려난다. 처음 그 족쇄는 사회가 만들지만, 나중엔 스스로로도 족쇄에 묶이게 된다. 결국 그 족쇄는 외부 환경의 변화와, 스스로의 각성이라는 두 가지 열쇠가 있어야 열 수 있다.

 애니메이션 <알라딘>과 실사 판에서 가장 큰 차이이자, 성취는 바로 자스민 공주의 캐릭터 변화이다. 애니메이션의 자스민 공주도 소망하는 바가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몸짓은 훨씬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극의 비중은 알라딘에게 치우쳐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실사 판은 극을 이끌어가는 면에서 자스민 공주의 비중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젠더에 관한 현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훨씬 더 의지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로 변화했다. 그 캐릭터 변화는, 애니메이션에선 없었던 ‘Speechless'라는 ost로 정점에 이른다. 다음은 그 노래의 일부 가사다.

Let the storm in I cannot be broken. 폭풍이 들이닥치게 해봐. 나는 부서지지 않아
No, I won't live unspoken. 더 이상 벙어리로 살지 않을 거야.
Cause I know that I won't go speechless.
난 알아 내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Try to lock me in this cage. 날 새장 안에 가둬봐
I won't just lay me down and die. 나는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을 거야.


서사를 이끌어가는 교본 같은 방식



 <알라딘>은 전통적인 구조의 이야기 속에서 양극화, 계급, 젠더, 세계를 전복시키고 싶은 열망,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열망까지, 지극히 현대적인 이슈들을 효과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등장인물을 통해 투박하지 않게 말이다. 단지 CG나 음악과 춤에 대한 감탄에만 그치지 않는 이유다.

 “멋진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빙빙 돌고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난 이 영화를 깊이 들어다 보라고 말하고 싶다. 억지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구성이, 강인한 뼈대처럼 이 영화를 떠받치고 있다. 인물들의 욕망과 내적 갈등이 극을 어떻게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본 같다. 복잡하지도, 난해하지도 않다.

사족 : 알라딘과 AAA



 <알라딘>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가진 결핍을 충족하고 싶은 욕구를 건드리는 판타지다. 마법이 강할수록, 주인공이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더욱 극적으로 뛰어 넘을수록, 현실의 냉혹함은 더 강하게 각인된다. 그 냉혹함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램프의 지니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없다면 ‘신분 상승’이나 ‘계층의 극복’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계층의 차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아간다. 이곳 스팀잇에 발을 들인 많은 이들은 ‘블록체인’, ‘암호 화페’라는 새로운 기술과 기회가, 램프의 지니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우린 모두 램프의 지니를 원한다. 우리어려움은 무엇이 ‘램프의 지니’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저마다 ‘램프의 지니’ 일지도 몰라, 하는 가능성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은 내가 서 있는 곳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꿈꾼다. 그것이 돈이든, 삶의 질이든, 인생의 의미이든 말이다. 영화는 그 소망을 두 가지 형태로 구현한다. 하나는, 그것을 꿈꾸다가 좌절하는 드라마고, 또 다른 하나는 그 꿈을 극적으로 실현하는 판타지다. AAA의 끝은, 후자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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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dolbak-aaa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hodolbak-aaa님의 [한줄리뷰이벤트] '미션'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까지 이웃분들의 최애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 이벤트는 진행중^^

...20131024_116/13826089621478XXIl_JPEG/movie_image.jpg kyslmate- 8월의 크리스마스

20대때 꽤 오랫동안 <8월의 크리스마스>의 그늘 ...

와 깜놀~ 재밌게 잘보았습니다. 오치지니님이 크고 멋진 램프를 마련하셔서 다양한 관점의 글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화이팅입니다~^^

네 크고 멋진 램프입니다ㅎ 이곳에서 저마다의 지니를 만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크흡.... 지니는 잘 지내고 있나요? 지니가 없으면 암것도 안된다는게 씁쓸하네요~

진짜 지니를 가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면 진짜였는지 알 수 있겠지요^^

AAA가 솔메님을 위한 판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어요.

글쓰기의 새로운 장이 추가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네요. 우리 모두를 위한 판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도 가끔의 기적은 바래도 되겠죠. ^^

네 기적을 바라는 것조차 없다면 삶이 얼마나 단선적일까요.ㅎ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알라딘 정말 즐겁게 봤어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알라딘 모처럼 신나고 착한 영화였어요^^

갑자기 기생충 후기를 쓰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램프의 지니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없으므로 ‘신분 상승’이나 ‘계층의 극복’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선을 넘어도 안되고 꿈을 가져도 안된다.

아직 기생충을 보진 못했지만, 알라딘과는 반대 지점에 있는, 현실에 좌절하는 영화겠지요? 무척 보고 싶네요.
양극화를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영화라고 들었어요ㅎ

역시 쏠메님^^ 이건 호돌박의 부계정입니다. 팔로우 해주세욤^^

네 호돌박님, 팔로우했어요.ㅎ 초기부터 aaa에서의 대활약 멋지세요!^^

쏠메님 위로 올려드립니다~!!

볼륨~업!!ㅎㅎ aaa에서도 팥쥐님과 함께라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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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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