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다시 찾을 바, 오사카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10 months ago

우리나라에서는 호호백발의 베테랑 바텐더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바라 알려진 여의도의 다희의 시작이 1986년이고 이곳이 유일하게 할아버지 바텐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바에 대한 호기심으로 방문했건만 전문적인 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칵테일에서 가장 중요한 게 맛의 조화인데 계량도 없이 그저 술을 많이 넣은 칵테일을 서브하고 있었다. 가격이 저렴하고 술이 독해 금세 취기가 올랐지만 맛이 있지는 않았다.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는 70대 할아버지 바텐더가 있는 바를 두군데나 다녀왔다. 1952년도에 문을 연 칸토리는 진열장 가득 오래된 술이 그득하다. 2대 째 내려오는 바는 그 역사가 긴 만큼 보유하고 있는 술도 많다. 2000병의 넘는 술은 그 라벨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다리를 저는 마스터는 손님의 요청에 따라 절뚝거리며 바를 오가며 술을 찾고 따르고 칵테일을 만든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곡성의 일본 배우를 꼭 닮은 손님이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 호의적으로 말을 계속 붙이는 손님에 비해 마스터는 날이 서있다. 어떤 위스키를 마실지 몰라 보틀을 구경하니 만지지 말라고 경고를 한다. 뒤이어 들어온 중국인 커플과 그 다음으로 들어온 세명의 네덜란드인 젊은 남성 무리가 '혹시 칵테일 추천해 줄 수 있어?' 라고 묻는데 아니, 내가 너를 모르는데 어떻게 추천하겠니라고 날카롭게 대답한다.

한해 두해 사람들을 상대한 게 아닐테니 자신의 신념이 담긴 접객이겠지만 껄끄러운 건 사실이다. 어떤 맛을 좋아하는데? 어떤 칵테일을 좋아하는데? 정도로 순화해서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래된 보틀의 위스키 잔술 가격은 합리적인 반면 최근에 나온 위스키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 시크한 마스터의 까칠함은 처음에는 신선했지만 썩 유쾌하진 않았다.

1958년에 문을 연 바 마스다는 마스터의 이름을 딴 바이다. 사실 이곳은 두번째 방문인데 첫번째의 경험이 너무 좋았다. 희귀한 위스키도 있지만 이 곳에서 꼭 먹어야 할 것은 칵테일이다. 입장할 때 내야하는 테이블 차지 천엔을 감수하고도 칵테일이 천엔부터 시작해 비싸도 이천엔을 넘지 않는 착한 가격이다. 지금 환율을 생각하면 한잔에 구천원인 꼴. 이 가게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은 교토진과 유자, 녹차를 활용해 만든 시그니처 칵테일이다. 일본스러운 재료가 모여 입안에 작은 일본을 만든다. 드라이 아이스로 칵테일을 얼려 샤베트 같은 걸 만들어 준다거나 불을 붙여 만들어주는 칵테일 등 눈을 즐겁게 하는 퍼포먼스도 좋다. 하지만 가장 좋은건 마스다와 그와 함께 일하는 젊은 바턴데의 넉살과 유쾌함이다. 비싼 위스키를 흘린 뒤 마스터 마스다는 향기가 좋다고 킁킁 냄새를 맡았고 칸토리에 다녀왔단 얘기에는 둘이 친구라고 말하며 내가 그보다 젊어 보이지만 사실 나이가 많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과일을 하나 선택해서 만드는 프로즌 칵테일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수박과 블루베리의 조합을 고르자 젊은 바텐더는 에?? 나니?? 혼또니??? 일본 특유의 제스쳐와 억양을 뽐내며 웃음을 자아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굳건하게 오사카 중심의 대표 바로 자리를 지킨 두곳 다 존경스러웠지만 바 칸토리는 가지 않을거다. 바 마스다는 다시 찾을 것이다.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술을 만날 수 있는 보물창고보다 바를 가운데 두고 실없는 농담을 하며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에 더 매력을 느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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