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12월 5일, 20세기소년과 스팀시티, 춘자의 콜라보가 끝났다. 20세기의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거쳐 겨울에 문턱에서 20세기 영화제의 마지막 영화를 끝으로. 끝은 끝이 아니고 시작의 다른 모습이고, 포탈의 연결 지점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괜시리 마음이 아린건 어쩔 수 없다. 카페 두레를 정리할 때가 생각이 났다.

공들여 만들고 애정을 쏟은 카페를 접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곳에서 충분히 행복했고 언젠가는 떠나야만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생각보다 담담했다. 우리는 느릿한 손놀림으로 카페를 정리했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카페를 구석구석 닦고, 접시와 컵을 종이 상자에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냉장고를 팔고, 오븐을 팔고, 다섯 상자의 쓰레기를 버렸다. 그렇게 모든 것을 팔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버렸다. 그렇게 카페 두레는 마침표를 찍었다.

라다크를 떠나기 전,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초모에게 된장, 참기름, 고추장 등을 한 아름 안겨주며 물었다.

“초모, 혹시 시계 필요해? 필요하면 가져가.”

“응, 그럼 너희 떠나기 전날 가져갈게.”

며칠 뒤 시계를 건네주는데 초모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며칠 전 오빠가 물어봤어. 지혜와 재은이 내년에도 오느냐고. ‘당연하지’라고 대답하고 곰곰이 생각하는데 좀 이상한 거야. 너희가 내년에 오면 시계를 써야 하는데 왜 내게 준다고 한 건가 싶어서. 너희 내년에 오는 거지? 맞지?”

“초모, 더 이상 카페 두레는 없을 거야.”

“뭐라고? 그럼 내년에 오지 않는다는 말이야?”

초모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우리는 카페 두레의 마지막을 실감했다. 청소를 하면서도 애써 의연한 척하던 우리였다. 둘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초모를 따라 엉엉 울었다.

“다시 올 거야. 카페 두레가 없어도 다시 올 거야. 그때는 다시 여행자로 오는 거겠지.”

2007년 처음 라다크에 왔던 때를 기억한다. 우리는 라다크에 한눈에 반해 그곳을 뜨지 못하는 여행자였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라다크가 그립고 그리워서 몇 번이고 다시 이곳을 찾았다. 하루하루를 특별한 것 없이 보내도 라다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벅찼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카페 두레는 우리의 라다크를 풍요롭게 해주었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일상에서 노동의 공간으로까지 확장되었던 라다크에서의 삶은 다시 한 바퀴 돌아 여행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비록 라다크에서의 카페 두레는 끝났지만, 카페 두레는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다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한 달쯤, 라다크> 中

이번에도 마지막날, 5일 일요일 나는 내 집을 정리했다. 책과 젠젠카세를 위해 구매했던 술과 칵테일 도구가 한 두개가 아니었다. 하나하나 사들이고 집에서 옮겼던 것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만큼 이 공간에 진심이었다는 이야기다. 우당탕탕 진땀 흘리고 스트레스 받으며 만들던 젠젠카세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아도 되는 사실은 안도와 아쉬움을 동시에 주었다. 지난 5개월, 나는 꽤 많이 행복했고, 꽤 많이 뿌듯했다. 그리고 그 만큼 지쳐있기도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어딘가 열릴 포탈을 받아들이고 운영하는데에 큰 지표가 될 것이다. 장충동 20세기 여름으로 이어진 카페두레는 또 다른 형태로 어디서든 이어질 것이다. 그럼 나는 그 때까지 한숨 좀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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