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100] <다시 또, 크루즈> 내가 그 크루즈를 선택한 이유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months ago

11월과 12월 사이에 유럽에서 남미를 가는 크루즈를 하나도 빠짐없이 체크했다. 가장 염두에 둔 건 포르투갈 마데이라섬인 푼살에서 출발해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푼살이 섬이라 비행기를 타야 하지만 가격이 비싸지도 않았다. 마음 속으로는 거의 결정을 했는데 사건이 생겼다. 본격적인 여정 전에 절친인 j와 탄 북유럽 크루즈가 남미 크루즈와 같은 선사였기 때문에 크루즈 내에 있는 ‘퓨처 크루즈’ 부스에서 예약하려던 참이었다. 크루즈 여행 중에 다음 크루즈를 배 안에서 예약하면 배에서 쓸 수 있는 온보드 크레딧을 받을 수 있다.

“하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데 부스의 직원은 표정의 변화없이 우릴 맞았다. 뭐 그럴 수 있지. 천성이 무뚝뚝한 사람일 수도 있고.

”나는 유럽에서 남미로 크루즈를 타고 싶어! 11월 중이었음 하고, 가장 싼 표를 알려줄래?“

대답없이 타닥타닥 타자를 치던 직원은 오래지나지 않아 말문을 뗐다

“푼살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12월 2일이 가장 싸.”

질문을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걸까? 근데 뭐 그럴 수 있지. 미국도 남미도 아메리카니까 헷갈릴 수 있지. 나는 있는 없는 이해심을 전부 그러모아 우릴 반기지 않는 눈치의 직원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아니, 난 11월 중의 남미로 가는 크루즈를 원한다고. 미국이 아니라.”

“하”

한숨을 내쉰 직원은 좀 더 신경질적으로 타자를 치며 크루즈를 찾았다. 타지도 않을 거면서 뭘 자꾸 묻냐는 짜증과 탄식이 가득 섞인 ‘하’였다. 뭐 그럴 수 있지, 오늘 응대를 많이해서 지쳤을 수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입 밖으로 삐져나온 걸 수도 있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인내심을 무너뜨리고 우리를 폭발하게 만든 건 바로 이어진 상활 때문이다. 옆 직원에게 상담을 받던 두명의 백인 남자가 상담을 마치고 일어나는 순간, 우리 앞에 세상 모든 짜증을 얼굴에 지고 있던 그 직원이 그들에게 살가운 웃음과 인사를 날린 거다. 그녀는 무뚝뚝한 성격도, 오늘 하루 종일 일에 치여 피곤했던 것도 아니었다. 나를 구매력있는 소비자로 보지 않고 무시했던 거다.

”11월 이십며칠 마르세이유 출발 크루즈가 싸.“
“얼만데?”
“어떤 방을 원하는데?”
“인사이드룸, 가장 저렴한 방”
“천얼마야”

그녀는 자기에게 치근덕대는 관심없는 남자를 대하듯 물어본 질문에만 성의없게 단답으로 대답했다. 이곳에서 크루즈를 예약하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고맙지 않지만 고맙다고 말하며 조용히 나왔다. 20대 부터 오지를 다니며 남녀노소에게 칭챙총과 니하오라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지만 나는 그걸 인종차별이라고 크게 느끼진 않았다. 무시하려는 의도보다는 대부분 무지의 소산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명백히 인종 차별이었다. 내가 나이가 많지 않은 아시아 여자라서 구매력있는 소비자로 보지 않고 무례하게 군 것으로 밖에 해석의 여지가 없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당사자에게 말하지 않고 크루즈를 내리자마자 선사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 뻔한 사과의 말만 돌아왔다. MSC선사는 유럽에서 남미까지 가는 대서양 횡단에 가장 저렴하고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이었지만 나는 정나미가 뚝 떨어졌고 타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다른 선사를 선택했다. 미국 선사인 노르웨이지안 크루즈였다. 염두해뒀던 가격보다는 비쌌지만 훨씬 많은 도시를 기항했다. 평소라면 배에 있는 시간을 더 선호하지만 어떤 모습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낯선 도시들을 최대한 더 많이 내 눈과 마음에 담고 싶었다.

그렇게 예약한 크루즈는 리스본을 출발해 포르투칼 마데이라 섬인 푼샬, 스페인령의 카나리제도의 세 도시, 산타크루즈테넬페, 라스팔마스, 어레시페, 브라질의 네 도시 레시페와 마세이오, 살바도르, 부지오스를 거쳐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하는 18박 19일의 여정이었다. 크루즈 출발 10일 전에 예약을 마치고는 속이 울렁거렸다. 낯설디 낯설은 도시들의 이름은 아무리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조금도 알 수 없었기에 설레면서도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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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onths ago 

젠젠님은 자신에게 솔직하고 신호를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 같아요. 우주가 사람이라면 젠젠님을 사랑스러워할 거에요 ㅋㅋ

 3 months ago 

저는 스스로 정말 단순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끔 누군가의 복잡다단함이 부럽기도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건 세상 살기에는 참 편하지 않은가 싶어요 ㅎㅎ

젠젠님 포스팅 보면서 언젠가는 크루즈 한 번 타고 여행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 months ago 

방구리님, 너무 다른 형태의 여행이라 사랑에 빠지실 수도 굉장히 지루해 하실 수도 있지만, 꼭 한번 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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