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련

in #kr-writing6 years ago

#1. 학과 사무실.

출강 기록부에 사인하러 학과 사무실에 들어갔다. 조교가 밝게 말을 건넨다.

“교수님이 맡은 반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데 괜찮으세요?”

“그래요? 잘 모르겠는데요. 제가 좀 ‘단련’이 되었는지, 예전 경험과 비교하면 지금 학생들은 천사들이에요.”

“단련이요? 어떤?”

조교한테 간단히 ‘단련’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2. 단련.

그 날 수업은 강의 준비를 좀 많이 했다. 내가 학생이었다면 듣고 싶었던 ‘좋은’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말도 술술 잘 나온다.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이 영 좋지 않다.

뒤돌아 앉아서 대화하는 학생,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학생, 창밖을 보는 학생,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 옆 사람과 대화하는 학생, 거울을 보며 외모를 가꾸는 학생,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학생.

그런 학생들이 ‘여전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전부’ 그러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30~40명 중 3~4명의 학생은 수업을 듣는다. 나는 그 학생들을 위해 수업을 한다. 곧 3~4명의 학생들이 앞을 쳐다볼 것이다.

여러 팀들과 공연할 때, 우리를 보러 오지 않은 관객들은 우리가 공연을 시작하면 반응이 시큰둥하다. 하지만 우리가 뛰어난 연주를 하면 관객들은 서서히 우리에게 반응하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뛰어난 연주’란, 우리 스스로가 만족하고 즐기는 멋진 연주를 말한다.

강의도 공연과 똑같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는 관객(학생)들도 내가 멋지게 강의하면 서서히 집중하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날 강의는 좋았다. 학생들이 곧 집중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강의는 내가 생각해도 좋다. 더 신나게 수업했다. 이제 곧 집중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은 아니구나. 조금만 더 하자. 이제 곧 앞을 쳐다볼 것이다. 곧.

... 그날은 좀 신비스러운 날이었다. 보통 아무리 수업 분위기가 나쁜 반이라도 최소한 2~3명은 앞을 본다. 하지만 그날은 거의 1시간 동안 단 한 명의 학생도 앞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 반에 들어갈 때는 수업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업을 대충 했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기초 상식만으로도 학생들에게는 넘쳤다.

여하튼 그 ‘단련’은 큰 도움이 되었다. 단 한 명도 나의 말을 듣지 않는 수업 분위기를 경험한 후로는 어떤 경우라도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3. 다시 학과 사무실.

‘단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조교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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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련’의 장소는 초중학교가 아니라 ‘대학’이라고 불리는, 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한 사립교육기관이다.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신기한’ 학생들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나의 경험으로는 그렇다) 나는 그 이유를 경쟁으로 몰아붙이는 이 사회(교육) 시스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한 경쟁은 주위 사람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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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는 비싸고 비싸다고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강의를 안듣는군요
반성합니다. . 저도 그랬습니다

잘 모르지만, 보통 반성한다고 말하는 분들은 반성이 필요없는 분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noisysky님은 '좋은' 학생이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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