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의 조선전쟁 10, 스탈린의 대한반도 정책 수정에 대한 정리steemCreated with Sketch.

in #sct5 years ago

스탈린 김일성.gif

션즈화는 제3장 동북아 국제정세에 대한 스탈린의 사고 에서 스탈린이 대한반도정책을 수정했음을 밝히고 있다.

“1950년 초 스탈린이 마오쩌둥과 중소조약의 기간에 대해 토론하면서 소련의 대조선반도정책을 수정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197)고 하면서 그 근거들로 러시아 문서를 들고 있다.

한편 1949년 내내 한반도는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문제는 1949년 당시의 상황이 북한만의 의도일 뿐인가 하는 것이다. 그점에서 션즈화는 1949년 당시의 상황이 북한 단독으로 행동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1949년 내내 조선반도는 곧 전쟁이 발발할 것 같은 긴장상태에 처해 있었으나, 모스크바는 조선이 군사적인 수단을 이용해 조선을 통일시키려는 방안에 계속해서 반대했었는데, 1950년 스탈린은 무력을 사용해 조선반도를 통일시키겠다는 김일성의 제안에 갑자기 동의했다.”

션즈화의 논지는 1950년 이전까지 전쟁을 하겠다는 북한 김일성의 요구를 스탈린이 막아오다가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소련과 북한의 관계에 비추어 그런 주장이 가능할까? 군사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 이미 굳어져 있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시기를 언제 정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그 결정적인 시기가 1950년인지 아닌지는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다.

션즈화는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문헌자료로 1950년 5월 14일 스탈린이 마오쩌둥에게 보낸 <국제정세의 변화를 고려해>라는 부분이라고 한다.(문서번호는 쪽 197, АПРФ, Ф.45, оп 1, д,331, л.55)
국제정세의 변화를 고려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두고 전개된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즉 국제정세의 변화가 전쟁을 결정하게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션즈화가 정리한 당시의 국제정세 변화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션즈화는 웨더스비 교수가 1995년 발표한 논문을 인용했다.
(Kathryn Weathersby, Conference Report: “The Korean War, An Assessment of the Historical Record, Korea-America Society”, Georgetown University, July 1955)

에프겐니 바자노프는 1950년대 냉전이 전면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탈린은 한반도전체에 대한 통제로 미국의 일본통제가 주는 위협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고 한다.

발레리 데니소프는 중국에서 중공의 승리와 소련의 핵무기 개발이라고 주장했다.

이종식과 천지엔은 미국이 한반도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라고 주장했다.
제임스 메트레이는 에치슨 연설이 스탈린의 결정을 재촉했다고 본다.

세르게이 곤차로프는 독일과 유럽의 상황 그리고 일본에 대한 우려를 <국제정세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한편 션즈화는 Uncertain Partner(흔들리는 동맹 으로 번역됨) 를 인용해 ‘스탈린이 대조선정책의 목표를 바꾼 것은 소련의 안전보장을 위한 완충지대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며. 장래에 세계적 대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을 공격하기위한 발판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미국인들의 계획을 탐색하고 미국과 중국의 적대관계를 심화시켜, 최종적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미국의 역량을 유럽으로부터 분산시키려고 했다’(199)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어떤 내용이든 간에 만일 그렇다면 스탈린이 말한 <국제정세의 변화>라는 것이 1950년에 들어 형성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 전부터 오랫동안 형성되어 왔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접근이다.

토르쿠노프와 우핌체프는 중국혁명의 승리를 ‘국제정세의 변화’라고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1949년 중반을 넘기면서 이미 중공은 내전에서 승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전쟁의 출발점을 시간을 정해 결정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스탈린이 한반도 정책을 수정했다고 말할때의 수정이라는 뉘앙스는 적절하지 않다. 스탈린은 처음부터 한반도를 완전하게 장악하고자 했을 것이며, 그 방법을 남한내부에서의 내부봉기와 군사적인 방법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처음에는 내부봉기와 같은 방법을 생각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군사적인 방법을 적용하기로 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스탈린은 얄타회담에서 결정된 영향력을 그대로 확보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반도 정책의 수정이라고 하는 말은 전쟁의 책임을 결정하는 기원논쟁에서는 적절한 용어라고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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