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해서: 돈오 (깨달음을 얻고 그리고 잊어라)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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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해서: 돈오 (깨달음을 얻고 그리고 잊어라)

중국에서 덕산이라고 하는 금강경에 달통한 대강사가 있었는데
남쪽으로 가서 올바른 불교를 가르치고자 하여 길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경에 서 배운 바로는 중생이 성불하고자 하면 수많은 생을 닦아야 한다고 하는데 남방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불케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점심을 먹기 위하여 식당에 들렀을 때 그집 노파가 그를 한 동안 바라보더니 물었다.

노파 : "바랑에 있는 것이 무엇이요?"
덕산 : "금강경소초 (金剛經疎抄)요."
노파 : "그래요 ? 그 책에 있기를 과거의 마음도 얻을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수 없다고 했는데,
스님께서 점심 (點心)을 하신다면 어느 마음에 점(點)을 치시려오.
만일 당신이 올바르게 답을 하면 점심을 드리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드릴 수 없소."

그는 한방 얻어맞고는 점심도 못 먹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노파가 알려준대로 용담선사를 찾았다. 그는 자정까지 용담선사의 방에 함께 있다가 방을 나서려는데 밖은 깜깜하였다.

용담이 촛불을 켜서 그에게 건네주려 하여 그가 그 촛불을 받으려는데 용담이 갑자기 그 촛불을 꺼버렸다. 덕산은 여기서 확연히 깨달았다.

그리고 다음날 덕산은 금강경 소초를 대중들 앞에서 불태워버리고 다시는 부처와
조사들에게 속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해석)

여기서 말하는 점심 (點心은 점심이라는 영어식 Lunch 가 아니고 마음의 점화를 한다는 뜻입니다. 배가 고프면 평상심을 잃으니 마음에 촛불을 밝히는 행위가 점심 (딤섬)입니다.

덕산은 사천성 사람이며 교리를 중요시하는 화엄종계의 스님으로서 마음의 수련으로 깨달음을 얻는 선종 (조계종) 스님들에게 가르침을 주려다 도리여 용담선사를 만나 돈오를 합니다.

화엄종의 법경인 금강경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아니고 깨달음을 얻는 방법에는 수 많은 길이 있다는 예입니다

(주석)

덕산선사를 누구를 가르치려고 했으니 일단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허가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식당 노파에게도 점심 (마음의 촛불을 밝힘) 에 대해서 한 수를 배웁니다.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것을 아느냐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용담선사는 밖이 어둠다는 덕산선사에게 촛불을 켜주고 켜서 주다가 꺼버립니다. 덕산선사는 여기에서 돈오를 합니다.

돈오: 돈 (단박에 망념을 없앰) 오 (얻은 바 없음을 깨달음)

촛불을 켜주는 것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마음을 깨닫고 지키라는 것이고

촛불을 꺼버리는 것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마음까지고 없애야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는 겁니다.

촛불을 켜주는 것이 돈이고 촛불을 꺼버리는 것이 오입니다.

내가 깨달은 돈오란?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백조가 미운 오리 새끼라는 착각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중생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신의 자녀며 우리자신을 믿는 것이 신의 뜻을 따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이란 자신을 믿으면 되는 겁니다.

에수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의 실천이였고 부처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생의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생의 진리도 사랑의 나눔도 어느 한 순간 돈오 (sudden enlightenment) 처럼 올수도 있지만 돈오를 지키려면 끝없이 수련 (좋은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부처님의 행복론 (깨달음)은 간단합니다.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가끔씩 돈오 (깨달음)의 순간을 만날겁니다. 그 순간을 즐기고 다시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돈오를 자주 경험하면 무아에 이른다고 합니다. 무아에 이르러 실천하는 것이 자비라고 합니다.

신의 도움으로 행하는 사랑의 실천과 무아의 경지에서 베푸는 자비의 실천에 차이가 있을까요?

Being or Becoming (돈오돈수와 돈오점수)

돈오돈수: 성철- 지눌의 깨달음의 논리에 대한 반박: 깨달음은 그 자체로 궁극적인 경지이기 때문에 다시 더 닦아야할 이유가 없음. 만약 다시 더 닦아야 한다면 아직 덜 깨달은 것임.

돈오점수: 지눌- 돈오: 단번에 깨달음/ 점수: 점차로 닦아나감- 단번에 깨쳤다고 할지라도 아직 습기 (과거의 잘못된 습관)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함 ,따라서 보살행을 통한 점진적인 습기의 제거가 필요하다는 주장

돈오돈수는 Being이고 돈오점수는 Becoming으로 이해했습니다. 서양/인도/소승불교는 돈오돈수를 추구하고 대승불교는 돈오점수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돈오돈수 안에 돈오점수가 있고 돈오점수 안에서 돈오돈수가 존재합니다. 돈오돈수는 영원히 불변하는 깨달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돈오점수는 깨달음은 존재하지만 자연안에서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믿는겁니다.

자연: 서양에서 말하는 nature가 아니고 동양적인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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