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그날의 기억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게 될까?"
출근길에 아내가 던진 물음이 내내 맴돈다.
나는 현장에 가지 못했다.
나는 몰라도, 가까운 동료들은 현장에서 가족들과 관련 단체의 적대감, 여론의 뭇매를 고스란히 감내하며 묵묵히 일했다. 역사에 남을 비극 앞에서 정부, 선사와 함께 국민의 최악의 적이 된 채로 어디 숨지도 못하고 현장에 있어야 하는 고통은 어떨까.
똑같은 사람인지라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비극에 눈물이 쏟아지고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죄인들은 마음껏 울지도 못했다. 그들은 흐느낌이 가라앉아 질문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어딘가에 숨어서 끅끅 울곤 했다. 거기서 그 기간 동안 눈칫밥을 먹고, 혹은 먹지 못하고, 쪽잠을 자고, 혹은 잠을 자지 못했다.
나는 직업 때문에 국민에게 죄인이면서, 죄인인 동료들에게도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들이 그 고생을 할 때 편안한 사무실에서 TV로 뉴스를 보며 외신 기사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독자로서, 시청자로서 생떼같은 아이들의 죽음을 만났다. 멍하니 하늘만 봐도 눈물이 쏟아지는 나날이었다. 굳이 눈물나는 이야기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눈물은 넘치도록 흘렀다.
우리 중 누가 안 그랬을까. 붉어진 눈과 코로 그 날들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날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교복을 입으면 또 생각날 텐데 죽는 날이 오면 잊을 수 있을까.
나는 결국 국회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는 국민의 마음이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걸 목도했다.
지난해 아내는 인양 현장에 있었다. 주말에 결혼하는데 주초까지 목포에 있었다.
우리는 세월호 3주기 바로 전날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결혼했다. 바로 앞에서 3주기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사족
"현장에 있었다. 그 곳이 어디였든, 마음으로는 그 현장에 있었다. 혹여나 기억이 제 힘을 잃고 흐릿해지는 날이 올지라도. 우리는 누구나 그 현장에 있었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저는 이 정도로 생각해보곤 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벌써 4년이 지난걸보면 참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사건은 해결되지 못하는 걸 보면 마음이 참 아프네요. 이 사건 이후로 저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사실 정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는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나에게 피해를 주지도, 이득을 주지도 않았기 때문에요.
정부가 국민에게 혜택을 주지 않더라도 실망감과 아픔만은 주지 않기록 바래봅니다. 정말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이 사건 당시 정부는 머....
광화문 과장에 시청에 노란 리본을 그리 많이 봤는데 전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이게 말이 되는건지..ㅠ
잊지말아야죠..그날의아픔을....ㅜ
잊으려고 한다 한들 잊혀질까요
잘못된 지도자가 운전하면 결말이 어떤지 보여주는 무서운 사건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Great post!
저는 평생을 기억하며 살아 갈겁니다. 가족들 마음을 어찌 다 알겠냐만은 제 마음의 아픔도 조금도 가시지 않네요.
👨 4년이 지났지만 시호님 글만 읽어도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안타까운 희생자들도 기억해야겠지만 참사 앞에서 민낯을 드러낸 짐승들도 기억해야합니다.
맞습니다.
어른들 말을 믿고 배안에서 탈출하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너무아픕니다 ㅜㅜ 잊을수가 없는 일 이예요 ㅜㅜ
4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아픔은 가시질 않는군요.
다행히 이제 진상규명이 조금씩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