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남북정상회담 1면 다시보기 上 : 4월 27일자
1면에 장이 서는 날이었다. 이렇게 큰 장이 서는 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만나는날 아침. 신문은 저마다 "그날이 오늘"이라고 1면톱으로 발랐다. 두 정상이 만나는 날 아침에 나온 27일자와 만나고 나서 만든 28일자 상하편으로 준비했다. 특별히 1면 전체를 보기로 한다. 대문짝만할 게 당연한 정상회담을 어떻게 다뤘는지와 함께, 지면이 모자라는 이런 날 1면에 오른 다른 기사는 뭔지를 살펴보겠다.
보통 이런 날은 각사에서 글 좀 쓰는 사람들이 공력을 가득 담아 머릿기사를 쓰곤 한다. 기사 읽는 맛도 좋은데 저작권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를 쳐야 해서 안타까웠다. 가슴이 뜨거워졌던 날인데 안 그런 신문도 있더라. 순서는 가나다.
경향신문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누린 지면이다. 우선 신문 제작 당시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신문 나오는 날 보게 될 장면을 상상도로 그렸다. 일러스트가 고생했다. 그리고 머릿기사는 기자가 아니라 소설가 박민규가 썼다. 기사가 아닌 글이다. 제목도 아마 기자가 달진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경향신문은 1면을 일러스트레이터와 박민규 작가에게 맡기고 날로 먹은 거다. 농담이다. 독자가 원하는 장면을 하루 일찍 보여주고 독자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글을 실었다. 노력대비 성능비가 탁월한 지면임에 틀림 없다.
국민일보
국민일보는 군생활 추억 돋는 판문점 사진 대짜로 뙇 박아 놓고 "이 길에서 평화가 시작된다"고 읊었다. 김정은이 저 뒤에서 걸어나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에 엄청 중요하고 역사적인 포인트다. 대부분의 신문사가 1면 메인으로 이 사진을 썼다. 제목에서 '평화'와 '시작'이 눈에 띈다. 이렇게 큰 이벤트에서 떠올릴 수 있는 수많은 단어 중에 평화와 시작을 선택한 것. 너무 들뜨지 않아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아래는 문정인 교수의 멘트 기사를 실었다. 다른 가치판단 없이 관련기사를 넣은 아주 드라이한 선택이다. 정상회담날이 아니라면 1면에 올 순 없었을 기사.
동아일보
보수지라고 불리는 신문들은 주구장창 '비핵화'만 고집한다. 다음날자, 다다음날자에도 비핵화 비핵화 비핵화. 마치 '김정은 빨갱이를 만나는 걸 용납할 수 있는 이유는 단하나 비핵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같은 사진을 썼지만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야트막한 콘트리트 경계를 확대해 설명했다.
세계 최대 조명회사를 인수한 LG, 한국GM 사태 합의에 관한 기사가 1면에 함께 올랐다. 개인적으론 1면 가도 될 만한 기사라고 생각. 오른쪽 끝에 20면 기사의 인덱스를 뽑아 놨는데 '뜨거운 이슈 떠오른 기본소득제'란다. 국민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지금 기본소득제가 뜨거운 이슈라고 생각할까.
문화일보
역시 석간이라 남북 정상이 실제로 만나 손을 잡은 모습을 일간지 중 제일 먼저 1면에 실었다. 9시 30분이 아니라 1분 이른 실제 만남 시간까지 정확하게 썼다. 보수지를 지향하면서도 동아일보처럼 비핵거리진 않았다. 왜냐면 그것 말고도 쓸 게 넘나 많기 때문이다. 메인 제목엔 두 정상의 발언을 담았는데 아무래도 석간이라 둘이 만난 뒤 금방 마감을 해야 하다 보니 핵심적인 내용은 담지 못했다. 사실 진보나 중도지였다면 경향처럼 1면을 걍 저 사진으로 꽉 채워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성향 때매 그러진 못했다. 토요일자를 발행하지 않는 문화일보는 이번엔 28일자를 호외로 찍는다 어쩐다 했는데 온라인 지면보기 서비스로는 확인이 안 된다.
서울신문
애증의 우리 공장. 사진 위에 저 디지털 시계 액정 같은 날짜, 시간 표시는 문화일보가 서울신문을 보고 참고한 것 같다. 비핵화를 맨 위에 조그맣게 적고, 밑에 사진 위아래로 제목을 한줄씩 걸쳤다. 제목질 하는 것만 봐도 1면 편집 누군지 알겠다. 예고 지면이니까 요정도 잔기술은 굿굿. 단 당일지면엔 오로지 사진과 제목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
함께 김경수 기사와 사장 인선 사고를 담았다. 그 회사 사장 인사니까 당근 1면에 담는 것 맞고, 김경수는 굳이 1면 갈 기사인가 하는 생각.
세계일보
'5cm 벽'은 평가가 갈릴 수 있다. 아내는 "고작 5cm 높이 밖에 안 되는 벽을 사이에 두고 두 정상이 이제껏 만나지 못했다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라고 좋게 평가했다. 나는 반대다. 일단 딱 봤을 때 뭔 소린지 모르기 쉽다. 그리고 '분단의'가 앞에 붙어 더 이상해졌다. 분단의 벽이 저기 있는 5cm짜리 콘크리트 구조물 뿐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처음 보는 순간 "헐"이었는데 그래도 아내 말 듣고 보니 편집자의 고민은 알겠더라. 좀 더 세련됐다면 좋았을 걸.
사진 상단에 또 디지털 액정 스타일... 서울신문과 세계일보 초판부터 종판까지 뜯어 봐야 이 아이디어를 누가 먼저 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러스트를 넣었는데 손 잡을 줄은 몰랐지? ㅋㅋㅋ 서울신문은 초판부터 썼다. 물론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밑엔 관련기사를 담았다.
조선일보
정말, 이 포스팅 할 때마다 매번 이야기하는 것 같다. 조선일보다운 1면이다. 비핵을 한자로 쓴 것까지. 딱 조선. 정상회담 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데 벌써 비핵 마침표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날자 1면 제목 보면 알겠지만 삐딱하게 가려고 벌써부터 폼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1면에 함께 들어간 기사를 보면 더 재밌다. 메인 기사 비중이 지금까지 살펴본 지면 중에 가장 작다. 별일 아니라는 거다. ㅋㅋ 한국GM기사 제외하고 전부 정부 비판 일색이다. 머 비판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조선이 삐딱하니 나도 삐딱하게 지면 보는 거다.
더더 재밌는 건 구석에 있는 '팔면봉' 코너. 이것까지 모자이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냅뒀다. 첫번째 '25년 간 비핵화 외치며 전 세계 속여 온 北, 이번엔 양치기 소년 벗을까... 또 말장난하면 그야말로 끝'에 주목. 이게 조선일보가 1면 톱제목에 정말 닮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정말 영리한 지면임에 틀림없다. 두번째, 팔면봉도 재밌다. 1면에 함께 들어간 드루킹 기사 평이다. 역시 조선이 계급장 떼고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인 듯. 세번째가 더 재밌다. '미, 남북회담 직전 북인권법 더 강화시켜 5년 연장. 비핵도 회담도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란 보편의 목소리' 앞으로는 조선일보도 성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돌보는 신문으로 거듭나겠다는 뜻으로 읽겠다.
중앙일보
비핵화가 첫머리에 뙇. 빅게임은 좋은 제목은 아닌 듯. '쇼'라는 일부 세력의 이야기랑 비슷하게 읽히는건 나 뿐인가. 여기도 김경수가 1면에 나왔다. 내 밸류 판단이 잘못된 건가. ㅋㅋㅋ 광고 하난 마음에 든다.
한겨레
1등. 참고로 다음날자 파격지면도 1등. 밑에 모자이크 처리한 글도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 레이아웃은 조금 아쉽다. 오른쪽 (아마도 가상의) 판문점 선언문 백지 양식을 빵 키웠으면 어땠을까. 기사는 오른쪽에 1단으로 세우고 왼쪽에 정전협정문 내용사진은 빼고 제목과 아래 서명만 넣고 상단에 얇고 넓게 올린 뒤, 젤 크게 백지 상태인 판문점 선언문을 넣었다면 좋았겠다. 물론 편집 경력 고작 3년, 그마저도 녹슨 쪼랩의 생각.
한국일보
한국일보 지면이 항상 옹색해 보이는 건 귀퉁이에 찌그러져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제호 때문인 듯. 레이아웃은 항상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용은 좋다. 파격적으로 시인의 시와 글을 넣었다. 시는 아직 문외한이라 나보다 어린 저 시인이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는 가슴을 울린다.
특이하게 왼쪽 1단에 특별감찰관실 기사를 넣었다. 법조의 전통 강자 한국이 또 단독을 했나보다. 단독기사 잘 대우해 주면 기자는 신나지.
끝. 28일자 커밍순.
완벽정리 감사합니다 출장중이라 못봤는데
조선은 역시나 ㅋㅋ
한겨레는 간만에 함봐야 겠네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렇게 공들여 1면 싸움을 하는데, 과연 얼마나 볼까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워요. 우리만의 싸움을 하는 건 아닌지 서글프기도 하고요.
종이신문들 좀 많이 보시면 좋을텐데. 종이로 보는 기사는 브라우저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데.
한겨레 28일자에서 종이로 보는 기사의 다름을 느낄 수 있지.
두분이 손잡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가슴이 뭉클했어요 ^^
이젠 남북한이 하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죠
지금은 서로 너무 다르겠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잘 유지했으면 너무 좋겠어요
한겨레가 확 눈에 띄네요.
그리고 그 신문의 의중은 팔면봉을 참고하면 되는 거군요.ㅋ
1면에 장이 선다는 표현이 실감 나네요.
각 신문사의 서로 다른 시각도 확연하게 느껴지구요..ㅎ
어렴풋이 어느쪽이 보수 언론이고 어느쪽이 진보 언론인지만 알았지 세부사항은 몰랐는데 현업에 계신 분께서 날카로운 시각으로 분석을 해주시니 배우는 것도 많고 이해도 잘 갑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때의 그 심정이 딱 와 닿는 1면은 제 개인적 기준으로는 없네요. 1면 만으로도 가슴 벅찬 신문이 보고 싶은데... 자칭 보수라는 신문들은 말씀대로 삐딱하게 나갈 자세를 취하고 있고... 그전에는 그렇게 입다물고 있더니 자신들이 주무르기 어려운 정권이 들어서니 날세우는 천박한 언론의 이중잣대가 확연히 느껴집니다. 날선 댓글에 기분 상하지 마세요. @shiho 님께 하는 얘기가 아니지만 혹시나 기분 상하실까... 잘 보고 갑니다.
그 전날 만든 신문이니까요. ㅋㅋ 곧 포스팅할 28일자에서는 가슴이 벅차실 수 있을지. 저는 제 기사에 달린 댓글 자체를 읽지 않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시 신문마다 지향하는 목적이 묻어나는거 같네요~ 이래서 신문은 한개만보면 안된다는 생각이 또 드네요^^ 한겨레 신문이 그중 제일 눈에 들어오지만요~!!
저도 한겨례 시원시원한 게 맘에 드네요. 빨리 판문점 선언 했으면 좋겠다!!
종이 신문이랑 인터넷 신문이랑은 정보를 읽는 속도부터 차이가 나잖아요. 종이 신문은 천천히 인터넷 신문은 대충대충 빠르게.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저도 종이 신문 안 본지 몇년 넘었네요...
28일자 한겨레 안 봤죠? 말도 마 말도 마 ㅋㅋㅋㅋ
대학 교양수업에서 한가지 사건을 가지고 각 신문사들이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 비교 분석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가 떠오르네요.
당연하면서도 무서운건 그때 느꼈던 느낌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것 ㅎ
저도 그런 수업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쉬운 거였다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