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풍경...
장날이 오면 이 거리는 온갖 술렁임과 설레임이 넘친다. 상인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집기와 식자재 또는 팔 거리들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먼저 거리 양쪽으로 파라솔들이 늘어선다. 한판, 물건과 사람들의 북새통이 지나간다. 그러면 다양한 광택을 지닌 갖가지 화물차, 승합차들이 멀찌감치 물러나고 본격적으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5일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이 현대판 보부상들이 소비자에 대한 무한 책임감까지 싸들고 다니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시골적 감성이 있어서 옆집 아줌마, 아저씨 대하듯 너무 친근하게 굴면 안된다. 더 깍아줄 수 없다는 경계의 눈빛으로 보복당하게 된다. 심한 감정이입은 금물이다. 물건을 사이에 둔 거리 만큼만 다가가면 안전하다.
물건 위로 현금이 오갈 땐 조금 우쭐한 표정도 괜찮다. 그럴 때 귤 한 개 더 가져갈게요 하면 흔쾌히 허락해 줄 것이다. 시골 장터의 정은 물건 값 챙기는 상인의 따뜻한 손길에서 나온다.
오래전부터 장날만 기다려 온 사람들처럼 장터는 행인들로 가득하다.
튀긴 도너츠를 파는 집과 어묵,떡볶이를 파는 집은 설탕물에 꼬인 개미 떼와 같다.
옛날 통닭집에서 쓰던 검은색 튀김솥에서 꽈배기, 찹쌀도너츠, 단팥도너츠, 두툼한 밀가루 핫도그, 그리고 야채 고로케가 바삭한 소리를 낸다. 그렇게 앞뒤로 충분한 태닝을 끝내고 그 중 일부는 하얀 설탕옷을 두른 채 종이 봉투에 담겨 손님에게 전달된다. 이건 맛있다. 맛은 기름에서 비롯된다.
어묵집 국물은 헝겁을 우려낸 맛이라서 패스... 아이를 위해 떡볶이와 꼬치 한 개면 충분한다.
튀김집 맞은 편은 이동식 옷가게이다. 접이식으로 보이는 행거에 옷걸이들이 일렬로 걸려있다. 이 집은 나름 타겟 마케팅에 성공했다. 줌마 패션의 완성을 추구한 덕에 꽤 많은 단골 고객을 확보한 듯 하다. 연령 제한을 넘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냉장고 바지도 이들의 잇템 중 하나이다. 나는 츄리닝 바지를 산 적이 있다.
우리동네 장터라고 해봐야 복작스러운 재래시장이라 생각하면 된다.
아이들을 위한 간이 놀이동산이 있다면 좋겠고 한나절 피곤한 발품을 팔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고작 5분여를 걸어가면 장터의 끝을 알리는 2차선 도로를 만난다.
장바구니나 비닐봉지를 든 사람들에게서 장터가 주는 향수와 부산스러운 기대감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왁자지껄한 흥정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손님보다 상인의 목소리가 조금 더 크고 걸걸한 것 외에 특별히 고성이 오가지도 않는다. 필요한 것만 재빨리 스캔해서 주워 담는 사람이 있고 어린 꼬마 한둘을 달고 길목의 양쪽을 번갈아 보며 천천히 걷는 사람들도 있다.
반죽을 능숙하게 떼어 내 직접 튀겨 파는 어묵집과 날 김을 기름과 소금으로 직접 재서 기계로 구워내는 집 앞에서는 고소한 냄새때문에 잠시 멈춰서게 된다. 그럴 때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던 산들바람이 생선비린내를 싣고 와 심술궂게 장난 치기도 한다.
우리동네 명물은 민물참게다. 가을에는 참게가 넘친다. 생선 좌판에서도, 과일 좌판에서도 참게를 판다. 잡곡을 파는 집에서도 참게를 위해 세수대야같은 함지박을 하나 더 준비한다. 이런 것이 그렇게 낯선 풍경은 아니다. 간혹 옷가게 앞에서 참외나 태양초 고추를 내놓고 팔기도 하니까.
하지만 참게의 원산지는 하나같이,,,, 중국이다. 임진강 참게는 씨가 말랐다고 한다. 임진강 참게로 간장게장을 담그면 굉장한 별미였다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많던 참게를 먹어치운 사람들에게 멸종의 책임을 지울 수 있다면 형량이나 벌금은 얼마가 적당할까.
가까운 사람들 틈에 듬성듬성 보이는 시멘트 포장길이 시선이 멀어질수록 동글동글한 사람들 머리로 덮힌다. 그런데 꽃씨와 각종 종자를 진열한 집은 날벌레 쫓는 아저씨 손길만 살벌하게 바쁘다.(시간적 배경은 늦봄과 초여름 사이인걸로....^^;;) 몇 년 전 우리 아이는 여기서 꽃씨를 샀다. 꽃 피우지 못한 꽃씨 한 봉지 베란다 구석에서 화석이 되었을 것이다.
해가 중천에 뜨면 상인들이 그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을 받을 차례다.
점심 한 끼 후루룩 비운다. 말 그대로 위장에 점 하나 찍는다. 밥이나 국수를 입에 물고 손님을 상대하는 스킬이 보통 이상이다.
7천 5백 원이요, 2천 5백 원 받으시고.
손으로 가리지 않아도 밥알 한 톨 튀어나오지 않는다.
해가 지나가는 속도에 맞춰 사람의 발걸음도 느려지는 오후, 그림자 길어지면서 장터의 평면도는 각기 다른 색깔의 굴곡을 만든다.
장터 끝 농협 앞에서 바구니 하나 꺼내 놓은 할머니는 손 털고 일어났을까.
헌 책을 늘어 놓은 노점에 잠깐 서서 책을 둘러본다.
오래 전 출판된 의학서적이 제법 있다. 온 전신에 바늘을 꽂아 논 침술 관련 책, 수지침, 동의보감도 있다. 책은 두툼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종이도 두껍다. 한물간 자기계발서가 여러 종 있고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소설도 몇 권 있다. 막심고리끼의 어머니를 본 것이 반가웠다.
팔기 위해 가지고 온 것일까 싶은 책들이 빼곡하지만 이런 책을 사기 위해 장터에 나온 사람이 있을 지 그것도 의문이다.
이래저래 수요공급의 법칙을 농락하는 장면이다.
찬송가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온다. 싸구려 스피커에 메가폰을 단 채로 찬송가를 틀어 놓았기 때문에 옆을 지나갈 때는 매우 시끄럽다.
다리없이, 두 팔을 다리 삼아, 몸을 검은색 장판으로 둘러싼 사람이 길 복판을 지나간다.
좀약이며 손톱깍이 같은 물건들이 자신보다 높은 진열대 위에 가지런하게 있다. 진열대와 스피커를 밀며 몸까지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이미 익숙한 듯 불편한 표정은 아니다.
아이가 초딩 3학년 때 함께 장터에 나갔다가 낭패를 보았었다. 낭패라기보다는 심한 민망함이다. 이 놈이 그 분께 다가가 귓속말을 했는데 그 분이 "어허 이녀석" 한 것이다. 어린 것이 철없게 상처 입힐 말을 했을까 걱정했지만 그 분은 엷은 미소까지 지으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놈을 불러다가 뭐라 말했나 다그쳤다.
"아저씨, 너무 시끄러워요,,,그랬어요"
그 순간 그 분과 눈이 마주쳤는데 아마도 내 표정을 읽으셨을 것이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애매한 표정에 황당과 당황을 섞은 내 눈빛을 알아챘을 것이다. 나는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아이를 책망한 후 그 자리를 재빨리 벗어났다.
황망하여 아이에게 사과드리라 말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에게 다짐을 받았으나 사후 약방문이다.
상인들은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기를 쓰고 있지만 그 앞에 누워 있는 심드렁한 먹거리들은 무심하기만 하다.
뉘엿한 햇살에, 도망갈 곳 없는 미꾸라지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숨 죽은 푸성귀를 보며 누군가도 한숨을 쉰다.
요맘때 쯤 거나해진 사람 몇 명은 한 쪽 바지를 걷어 올리기도 한다.
장날의 시작을 동시에 맞았다고 해서 같은 시간에 정리할 이유는 없는 법이다.
노점 하나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한 다스의 사람이 썰물처럼 사라진다.
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토박이들이 오늘을 기념하는 술 한잔 기울인다. 비틀거리는 취객의 눈에는 내가 10년지기 친구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어림없는 소리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 감독처럼 장터를 큰 일 없이 지휘해 낸 자신들에게 기특 뿜뿜한 자작술을 바친다.
다시 차들이 지나다니며 길을 넓힌다. 인사 한마디 없이 저마다 쉴 곳으로 흩어지면 이 길에는 낮은 신음소리 같은 바람이 분다. 늦은 술자리까지 마무리해야 이 길도 잠들 수 있다.
이거 아까 읽었는데,,, 또 사진이 없네 이러면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봤어요. 오감을 동원해서 말이죠. 그래서 엄청 배고파졌어요 ㅋㅋㅋ
음식과 너무 공감하시면 다이어트에 방해되요..ㅋㅋ
사실 사진은 찍어논게 없다는....
유니콘님 5일장의 정겨움을 이렇게 유니크하게 표현하시면...
너무나 재미있잖아요!!
위장에 점 하나라는 표현에 딱 꽂혔어요
넘 멋져요 생각지도 못한~^-^
저도 장터가 정겨운 걸 보면,,,, 나이가,, 쿨럭..
좀 긴거 같았는데 지루하지 않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당...^^
유니콘님 저 갑자기 장터가 너무 안 정겨운 것 같아요
저 아직 너무 어려서...그런거 같죠?
ㅠㅠ;;;
하하
어떻게 해도 장터 넘 좋아서 안 되겠어요 아주 그냥ㅎㅎ
하하하 젊은 사람들은 장터를 안 좋아해야 합니다..
뜰뜰님처럼요..^^
어느새..
재래시장의 풍경이 보고싶을때가 있어요..ㅋ
교외로 나들이 갈 때 잠깜 들러보면 재미나죠..ㅎㅎ
영화를 보는 듯 하네요. 장면 묘사가 탁월하심.
엇 고맙습니다.. 넘 과분하심다..ㅎㅎ
제가 이상주의자라
칭찬에는 강하고 비난에는 인색하다는 ㅎ
근데 정말 글이 섬세하셔요.
마치 소설책에 프롤로그를 보는듯한 느낌입니다 ㅎㅎ
묘사나 표현이 너무 정감있고 좋네요
제가 좋아하는 곳이라 얘기하기가 편했던 거 같아요..ㅎㅎ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당..
오우..다읽으니 하루종일 재래시장에서 놀고온 기분이내요... 저도 어렸을때 장날은 닭꼬치와 호떡, 핫도그 기다리는맛에 살았는데 추억돋내요. 밤에 상인들이 하나 둘 철수하는 모습은 얼마나 허전한지..ㅎㅎㅎ
맛난 거 사드릴 수는 없고,, 잘 노셨다니 다행입니다..ㅎㅎ
장날은 주전부리 없으면 앙꼬없는 찐빵이죠..
땡긴다... 군것질
엉엉 아직 5일장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군요, 장은 역시 먹을거 아니겠습니까?!!
이 이야기는 안 끝난것처럼 끝낼려구요.ㅎㅎ
중간에 확 끝나버린 영화처럼...
전편에선 사진이 있었음 좋겠다 싶었는데..
이번 글을 보고 나니 사진 없이 묘사만으로도 충분한거 같네요^^
슬픈산(!?)님도 좋은 하루되셔요!
사진은 찍어논게 없어서요..
걍 조그만 장터라 찍어도 별것 아니너요..ㅎㅎ
씬님도 하루 잘 마무리 하십시오
전편 보고 오겠습니당
국물은 헝겁을 우려낸 맛이요?! 유피님 표현력의 절정은 이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_^)b 킥!
요상한 어묵국물은 정말 저 맛이 나요..
아우,,, 웩이죠 큭
이부분은 뭔가 인간관계에도 시사하는바가 있는것 같아요.
관계에 집중하시는 바로님다우시네요..
이타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이런것도 훈련이 필요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