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영화 리뷰와 아내

in #bus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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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과함께 인과연
재미난 만화를 한 편 본 느낌. 웹툰이 원작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르다. 영화에서 서사의 밀도는 시간의 제약을 벗기 힘들다. 이야깃거리가 넘쳐서 주워담기 바쁘다 보면 요약 정리해 놓은 노트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원작 웹툰을 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애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중간에 갑자기 스크롤 압박이 생각난 건지도 모른다.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주로 볼거리 오락거리 위주로 선택하기 때문에 그 기준에서 보면 풍성하다. 1편에서는 느닷없이 눈물샘을 자극해 질질 짰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조금 조심스럽긴 했다. 집에서 봤던 1편이야 옆에 아내밖에 없었지만, 낯선 이들이 잔뜩 있고 옆자리엔 첫째와 둘째가 함께 있는데 여기서 수도꼭지를 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긴 아내하고만 있다 해도 좀 그런 것이 항상 내가 먼저... 그래서 슬픈 영화나 드라마는 피하는 편이다. 잘못 걸려들어 슬픈 장면이 나오면 최대한 숨을 죽이고 훌쩍거리지 않기 위해 흐르는 콧물을 손으로 훔친다. 그리고 슬쩍 눈물을 닦는다. 귀신 같은 아내는

울었쪄요?

나는 숨을 돌리고 안정을 찾은 다음 한참 후에야

울기는...

매우 침착하게 얘기하지만 이미 뽀롱난 상태다. 주로 불을 끄고 보는데 이럴 때 불을 켜거나 하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아내의 배려를 느끼기도 한다.
아, 암튼 2편도 볼만하다. 쥬라기 공원을 오마주한 공룡 장면이 쌩뚱맞기는 했지만... 우리도 이 정도는 한다는 걸 보여준 걸까? 인디애나 존스를 오마주한 1편은 볼 만했는데 말야...
한 가족의 역사를 한 꺼풀씩 까고 보니 이미 지옥도의 요직을 모두 선점하고 있었다는 슬픈 얘기지만, 개별 지옥의 대왕들에게는 염라대왕으로의 내부 승진의 길이 원천 봉쇄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개혁 내지는 지옥 해체의 강력한 투쟁이 필요해 보인다... 뭐라고?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믿어주세요.

2 퀵앤데드
TV 채널을 요리조리 돌려보는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TV는 가장 먼저 132번 히스토리 채널을 틀고 좋아하는 프로가 아니면 화살표 버튼을 한 번 눌러서 바로 위 채널 디스커버리 아시아로 돌렸다가(거의 관심 없는 아시아 먹방) 아래로 두 번 눌러 냇지오를 잠깐 본다. 그다음 97번 바둑 채널을 틀었다가 40번대 영화 채널과 50번대 스포츠 채널을 섭렵한다. 이 과정을 2분 안에 끝낼 때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는 얘기다. 영화 채널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첫째 이유는 같은 영화를 무한 반복하는 지루함 때문이고 둘째는 잦은 광고 때문이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진주를 발견하기도 한다. 영화가 알아서 기다려 주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처음부터 시청하는 완벽한 행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략 중간쯤 장면부터 보는데 잠깐 보다가 1, 2부 사이의 긴 중간 광고로 돌입할 때가 많다. 그래도 어떤 영화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도 한다. 가령 샤론 스톤, 러셀 크로우, 진 해크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한 영화에 출연한다면 나는 무조건 기다릴 것이다. 혐오하는 서부극일지라도, 게다가 이병헌이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볼 것이다. 아주 오래된 영화라도 상관없다. 퀵 앤 데드라는 영화가 이런 악조건을 두루 갖추고도 시선을 끄는 이유다.
1995년 개봉작이라니 20년을 훌쩍 넘긴 영화다. 분명 주연은 샤론 스톤과 진 해크만인데 구글에서 찾아보면 레오와 러셀 크로우가 진 해크만 앞에 나온다. 심지어 10대 중반쯤의 철부지 소년으로 출연한 레오가 맨 앞이다. 물론 조연급이라 해도 레오와 러셀 크로우의 비중이 작지는 않지만, 제작 당시의 시대상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사진을 보면 구글의 업데이트가 최근에 후다닥 이루어진 듯하다. 한물가기 시작하는 샤론 스톤과 중년의 진 해크만이 반갑다. 홀쪽하고 팽팽한 청년 러셀 크로우도 반갑다. 그러나 100일만 마늘과 쑥을 먹고 나면 꽃미남으로 탈피할 것 같은 어린 레오를 보는 것이 가장 반가웠다.
무법자가 장악한 한 마을에서 토너먼트 결투를 벌이는 영화다. 배경은 일반적인 서부지만 이야기 장치는 묘하게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한 마을이라는 공간을 폐쇄된 밀실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은 약하다. 99번을 당하다가 1번만 이기면 되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결투라는 장치가 있어서 그런 설정을, 선과 악이 대립하는 관점을 손쉽게 보여준다. 죄다 죽고 결투 토너먼트에는 네 명만이 남았다. 레오와 진 해크만의 결투에서는 진 해크만의 승리. 레오는 그의 아들이지만 진 해크만은 승리와 생명을 양보하지 않는 냉혈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이 영화에서는 유일한 악역이다. 마지막 결투에서 죽는다. 예전에도 느낀 건데 진 해크만의 악역 연기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원래 그런 성정을 타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부부가 오래 함께 사는 게 사랑이나 정 때문인 줄 아니? 의리 때문이야, 의리! 누군가 했던 말인데 그 진위를 파악하긴 힘들다. 물론 동의하는 말이 아닌 데다가 실제로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 아무튼 만약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보는 일이 딱 그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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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들인 포스팅, 보기 좋습니다. 짝짝짝!!

고맙습니다. 화답의 박수 짝짝짝..

마션 임파서블보고 조금 실망스러워서 당분간 영화안보려고했는데
신과함께 인과연 보러가야겠어요.

1편이 더 재밌기는 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은 안 봤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눈물 많으신 따뜻한 분이셨군요.ㅎㅎ

따뜻하진 않은데 이상한 지점에서 눈물이 줄줄...

영화 한편 제대로 봤네요.
장면 장면이 눈에 선하네요 ㅋㅋ

직접 보셔야 더 재미나겠죠..ㅎㅎ

샤론 스톤 오랜만에 듣는 이름입니다.

스포츠, 뉴스 돌리다가 우연히 영화 하나 걸리면 밤 새는 거죠 ^^

엊그제도 하나 걸려서 3시에나 잘 수 있었어요.
요즘 몇천원 더 주고 영화채널을 더 열어놨더니 볼게 많네요.

피쉬님은 영화리뷰도 다르군요^^

일부러 그런게 아니구요. 나름 열심히 썼는데 나중에 보니 심하게 이상해 보였다는...ㅎㅎ

ㅋㅋㅋㅋㅋ
영화를 배우를 보시는군요 ^^*

의리 때문이에요 의리..
대단한 친구분입니다 ^^*

의리라는 말에 동감하시는 것 같은데요??ㅋㅋ

얼마 전에 미션임파서블을 극장가서 봤는데 신과 함께는 볼 생각을 못했네요.
더운 날 시원한 영화관에서 좋아하는 영화 보는 것도 일종의 호사같아요~
우리집은 남편이 리모컨 장악하고 '나자연' 을 줄기차게 보고 있어서 덩달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러다 산 속으로 들어가자고 하진 않을까 은근 걱정이예요~^^ ㅎㅎㅎ

나자연 저도 좋아하는 프로에요. 그렇게 살고 싶기는 한데 엄두가 나지는 않죠..ㅎㅎ
단지 정신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지라는 것이 볼 때마다 짠해요..

맞아요~
나자연에 나오는 사람 대부분이 마음이 아프던지, 몸이 아프던지 해서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더라구요~
짠하긴 한데 본인들은 무척 만족하고 사는 거 보면 인생사 별 거 없는 것 같아요.

글쵸.. 인생 뭐 별거 있나요.. 시간이 갈수록 더 그러네요..

신과함께 아직도 못 보고 있네요 ㅠ
리뷰도 재미있게 쓰셨네요 ㅎ
역시 의리!

1편보다는 못하지만 저는 그럭저럭 재밌게 봤어요..
의리에 동감하시는 분, 한분 추가합니다..

그러게요^^;

토탈리 동감인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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