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photo] 바다, 속초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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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Sokcho), South Korea, Apr. 2018, Nexus 5x


바다에 왔다. 오랜만이다. 속초는 얼마 만에 온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평일 저녁 비수기의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다. 복작복작한 사람들도, 잘 정돈된 파라솔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들 상상하는 바다는 여름의 바다라서, 여름이 아닌 계절에 방문하게 되면 놀랄 것이다. 특히 대도시나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면.

서울에서 2시간 반을 달려 이 곳에 왔다. 강릉에 비하면 속초는 작은 도시다. 나는 이 조그마한 도시가 마음에 든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조그마한 모든 도시가 마음에 든다. 사실 오늘은 글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다. 글로 무언가를 토해내기엔 오늘은 상당히 피곤한 상태다. 이런 날은 시야에 들어온 장면들이 그냥 마음속에 콕 박히는 날이다. 그래서 크고 광활한 도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흩어지고 모아지는 도시는, 가끔씩 큰 세기의 신호들이 너무 많이 응집되어 나에게 전달 되듯이 느껴져서, 버티기 힘들 때가 있다. 이런 날에는 일상으로부터 흡수하는 신호의 진폭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바다를 걷는 것은 참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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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Sokcho), South Korea, Apr. 2018, Nexus 5x


나는 이 발자국들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형성될지 짐작하기 어렵다. 발자국은 나름의 방향성을 가지며 퍼져있는 듯 보이면서도, 파도의 경계를 따라 이어진다. 나도 오늘 발자국을 하나 남겼다. 내가 남긴 발자국은 언제까지 형체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남아있게 될까. 또 다른 누군가는 여기 발자국을 보며, 이 발자국들이 언제 생성된 것인지에 대한 고고학적인 고찰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역시, 보는 것, 시선, 장면, 사진, 그리고 다시 사진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오늘 담고자 하는 메시지는 오로지 사진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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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Sokcho), South Korea, Apr. 2018, Nexus 5x


나는 종종 거대한 질감이 드러나는 하늘빛이 좋다. 그 것의 색깔이 어떠하든, 부유하는 느낌의 하늘은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모호하게 만든다. 형체를 말해주는 - 저녁의 질감은 하늘이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님을 말해주기도 하는 것 같다.


무작정 바다에 왔다. 파도에 파란 마음들이 이리저리 쓸려왔다가 떠났다. 언제나 반복이었다. 잔상 같은 눈물이 반짝하고 굳어졌고 모래가 되어 남았다. 발자국 하나에 마음의 웅덩이 하나. 발자국 둘에 웅덩이 둘. 웅덩이는 모여 결국 길을 이룰 것이었다. 파도와 바람을 따라 길이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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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을 그 근처에서 했죠. 외박나와 바다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되려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어울리지 않은 곳에 온 기분, 마치 겨울바다를 찾은 쓸쓸함이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로 외박이나 외출, 휴가의 기회가 와도 나오지 않고 군생활을 했습니다. 속초 바다를 생각하면 군대 시절이 떠오르네요. 아... 이 무슨 아재같은... 하하...

외박이나 외출, 휴가의 기회가 와도 나오지 않고

이부분에서 @zaedol 님이 느끼셨을 외로움을 감히 짐작해봅니다. 속초 바다의 기억이 차츰차츰 외로움에서 세계의 여백으로, 고요함 속의 힘으로, 상념을 위한 도화지로 자라날 수 있도록, 응원드려봅니다.

qrwerq님이 느끼셨을 정취가 그대로 전해져오네요.
덕분에 바다산책을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의 세계로 넘어가려고요..
지금 어디 계신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속초이실 거 같은데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세요!

정취가 잘 닿았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성수기를 벗어난, 평일의 속초 (혹은 굳이 속초가 아니더라도 바다가 있는 작은 도시) 기회되시면 한번 꼭 가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바다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바다를 매일 보는 것은 어떠한 기분일지 사실 짐작이 잘 되지 않지만, 바다와 좀 먼 곳에 사는 사람에 있어서 일상에 좀 지쳤을 때 가끔 한번씩 산책하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

속초나 강릉이나 겨울에만 가본 것 같은데 속초의 겨울바다는 참으로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저도 겨울바다 참 좋아합니다. 다른 계절의 바다와 다르게, 고요함 가운데 바람과 파도에 힘이 넘친다고 해야하나, 차갑고 강한 촉감이 흡사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더군요.

봄바다의 정취라고ㅜ해야할까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 오네요 ^^ 멋집니다

잘 닿아서 다행입니다. 실제로 걷다 보면 정말로 분위기에 녹아듭니다. 광활한 여백에 녹아드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합니다.

사진들이 하나같이 너무 좋네요..

좋게 봐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사진을 통한 이야기가 잘 닿았기를 빌어봅니다 :)

저도 작은 바다, 조그마한 도시들이 좋아요.

오늘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약간은 쓸쓸한 느낌 마저도요...

지금 시기의 작은 바다는 쓸쓸한 느낌이 있습니다. 오히려 겨울이나 여름의 바다보다,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워서 사람들도 잘 찾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나 바다는 그 자리에 있고 기다려주는 것 같습니다.

통영과 함께 참 사랑스러운 곳입니다...
저도 오늘을 버리고 훌쩍 떠나고 싶어요

동감합니다. 저도 사실 급작스럽게 바다에 온 셈입니다. 이렇게 훌쩍 떠나는 게 가끔씩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일상 생활의 환기 측면에서도, 가끔 글 대신 세계의 광활한 공간 자체를 느끼는 일이 종종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angelmin 님께도 꼭, 훌쩍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는 나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오랫만에 바다를 보니 마음이 시원하네요
경치가 무척 아름다워요 ^^

저도 상당히 오랜만에 바다에 간 것이다보니, 정말로 좋았습니다. 동해바다는 다른 곳의 바다와도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발자국 하나에 마음의 웅덩이 하나... 둘... 시를 쓰시는 qwerq님의 여행기도 색다르네요^^
ㅜㅜㅜㅜ 들어왔다가 실수로 차단키 누르고 순간 차단되셨어요 바로 해제하고 팔로우 눌렀는데 나중에라도 발견하시고 오해말기요~~!

저도 종종 팔로우 언팔로우 실수합니다. 특히 스팀잇이 이상할 때에는, 버튼을 막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이상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해합니다ㅎㅎ

가끔씩 상념이 산문 보다는 좀 더 운문에 가깝게 머릿속을 떠돌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념들이 사라지지 않게, 재빨리 붙잡아두다보면 이러한 문장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좀 더 길게 적고 싶은데, 그게 요즘에는 잘 안되서 스스로 아쉬운 요즘이네요 :)

Qrwerq 님의 글을 읽으면 저도 마치 그 곳에 있는 듯해요. 덕분에 저도 속초에 잠시 다녀온 기분입니다. 마지막 단락은 시인가요...? 감동이...
@홍보해

그렇게 느끼셨다면 다행입니다. 이 공간감을 저만 느끼기가 좀 아쉬웠거든요. 마지막 단락은 시 비스무레한 하나의 단락 입니다. 시를 적는 기분으로 썼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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