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중독 12. 보수와 진보

in #kr6 years ago

1.jpg

대선 뿐 아니라 명절때도 흔히 볼 수 있는 '보수와 진보의 싸움'. 이는 마치 럭비 경기를 방불케 한다.


대선 때도 그렇고, 보수니 진보니 편 가르기 하는 일을 종종 보곤 했는데 사실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 국민의 상당수가 보수주의자다. 스스로 진보라고 여기고 있던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보수주의자인줄 모르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볼 땐 같은 보수주의자이면서 당적이 다르단 이유로 그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조금 안쓰럽다. 보수와 진보는 지지고 볶고 싸우는 개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jpg

헌신적인 간호, 그것이 보수의 참모습 아닐까.


진짜 보수의 의미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흔히 사람들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안전망의 확충, 사회복지, 그리고 기타 각종 자국민을 위한 복지정책 모두가 실은 보수적 정책이다. 이 정책들은 오직 우리 국민만을 위한 것이며, 타국과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 벽이기 때문이다. 워낙 보수정책이 실천되지 않다보니 진보적으로 보일 뿐이다. 보수는 ‘우리나라’라는 시스템을 보존하고 보완하는 집단이다. 난민문제로 몸살을 앓는 유럽 국가들처럼 많은 선진 국가들의 내부에선 보수적인 측면이 강화된다. 어떤 나라건 보수는 기본 이념이다. 기본적인 국경에서부터 관세나 범죄인 인도절차와 같은 일들이 모두 그러하다.

지키려는 속성 때문에 보수 집단은 자국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며 전통과 문화를 계승한다. 만일 상해 임시정부의 정신과 5.18 광주항쟁의 민주정신을 기린다면 그 사람은 보수주의자다. 물론 당시에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진보적인 활동이었겠지만, 이제 그것을 지킨다고 하면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체성을 계승하고, 발전을 꾀하는 사람이라면 보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자기 역사를 부정하는 집단은 절대 보수가 아니다)

진정한 보수는 약자와 강자를 가리지 않고 보듬는다. 보수가 오직 기준 삼는 것은 우리의 것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문제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보수는 패러다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수라는 슬로건을 정치판에 빌려오고 싶으면, 스스로 이 사회의 간호사가 되었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한다. 수술한 환자를 보살피는 것이 보수가 끊임없이 하는 일이다.

때로 이런 성향 때문에 보수는 ‘우리의 것’을 위해 ‘타인의 것’을 희생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먹는 공산품의 많은 부분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처럼, 혹은 정부적 차원에서의 역사공격 내지는 자원전쟁과 같이, 이런 일은 꽤나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종래엔 모두 파멸하고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는 불지옥이 된다. 이때야말로 진보적인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3.jpg

이념을 떠나 사람을 지향하는 것, 그것이 진보의 참모습 아닐까.


그렇다면 진보는 어떤 사람을 칭하는 것일까? 진보는 시야를 넓혀 인간과 인류에 집중한다.

확정적인 패러다임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바로 진보주의자다. 이들 또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헌신한다는 측면에서 보수와 같지만, 그들이 미래를 추구하는 방식은 보수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자국에 굶주리고 비천한 사람이 널려있어도, 해외의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나가 봉사활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조금은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국의 전통과 민족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인류의 일원으로 먼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진보주의자는 자국과 타국이 아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른다. 그리고 우리의 것과 타인의 것이 아닌 훌륭한 것과 덜 훌륭한 것을 판단한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범죄자가 있고, 타국에도 많은 범죄자가 있다. 같은 사건이라면, 미국의 살인범이나 우리나라의 살인범이나 죄의 무게는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범죄자라고 해서 형량을 줄이는 일은 진보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보주의자가 할 일이다.

우리의 것 중에도 좋지 않은 것이 있으며, 타인의 것 중에 좋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좋은 것은 적극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우리의 것일지라도 과감히 버리는 것이 진보주의자의 기본 원칙이자 원리다. 보수가 간호사라면 진보는 의사다. 진단하고 수술하며 예후를 관찰하여 처방을 내린다.

때문에 진보는 늘 바르고 옳은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상적인 측면이 많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때가 많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도 막상 실제 수술에 들어가면 예기치 못한 변수로 환자를 떠나보내기도 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진보는 수술 계획이 틀어질까봐 병을 키우는 환자를 방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패가 누적되면 결국 모든 것이 망가진다. 그럴 때 보수의 신중함도 필요한 것이다.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 논어에서 공자가 자로를 질타한 것이 이와 같다. 잃음이 분명한데 달려드는 것은 무모한 것이다. 어떤 실패가 있을 지 확실히 직시하고 달려가는 것과, 그걸 모르고 달려가는 것의 차이는 크다. 진보가 미처 생각지 못한 현실의 벽을 보수(진짜 보수라면)는 잘 제언할 수 있다.

결국 진보와 보수는 어떤 이념의 대립기준이라기 보단 상호보완적 존재로서 한 사회를 온전히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진보니, 보수니 입씨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보다 지금 보수나 진보라 칭하는 사람들이 ‘진짜 보수인가?’ ‘진짜 진보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차라리 유익해 보인다. 만일 그들이 참된 보수와 진보라면 혼란을 야기하기보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여있는 자들로서 그들의 건설적인 미래를 준비할 테니까.

그러니 이제 보수도 진보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집단에게 우리의 소중한 미래를 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아닌지.


Sort:  

자칭 진보적인 사람들이 나에게 항상 급진적이라고 얘기합니다. 터무니 없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내가 진정 급진적인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가다듬어 현실적인 아이디어로 만드려는 노력 없이, 단순히 급진적이고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로 가두어 놓는 그들이 어떻게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아마 자신이 '보수주의자인지 모르고 진보주의자로 착각해버린'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보수주의자라면, 진보주의자의 방향을 꺾으려하기보다는, 그 방향으로 향하는 속력을 조절하는데 힘을 보탤 것입니다.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발전하는 사회는 불확실한 아이디어를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 나가면서 이뤄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진보는 제안하고, 보수는 가다듬을 것입니다. 진짜 진보주의자였다면 애초에 공상을 무시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진짜 보수주의자였다면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저 역시 상상을 현실에 적용해보려는 시도조차 포기해버린 '이도 저도 아닌' 이들을 무엇으로 칭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정치 지형을 구분할 때 "전근대 봉건세력" 분류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말씀하신 바 같은 근대적 보수 이념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집단이 보수의 이름을 농단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민주당이 보수의 수권정당으로 자리메김 해야 하는 시대죠.

저는 종종 주변인들에게 '우리나라엔 딱히 진보적인 정당이 없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말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곤 합니다. 20대 청년이 당을 일으키는 유럽의 사례만큼은 아니어도, 앞으로 보수와 진보가 상호 교류하며 발전적인 정책들을 입안하는 국회를 볼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의견주셔서 감사합니다 :)

생각하기 싫어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까지 생각하기는 더 싫습니다.
중요한것은 단지 앞에있는 열매입니다.
돈 앞에서 모든 가치들이 다시 이름표를 달게 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맹자가 양혜왕에게 말하길 '백성들은 먹고 살길이 막히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게 됩니다'라고 말한 구절이 있습니다. 올바른 정치를 펼치기 전에 국민들의 살림을 돌보는 일 또한 중요하며, 이는 지도자가 마땅히 살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열매의 달콤함에 지나치게 취하는 것은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열매가 된다고 해서 소녀의 심장까지 꺼내 시장에 내다팔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

아주 공감가는 글이네요! (그런데 저도 사실 몇해 전까지만해도 보수건 진보건 남의나라 이야기였다는.... ㅎㅎ)

저도 사실 정치는 잘 모릅니다. 다만 이상의 영역을 생각할 따름입니다. :)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3
JST 0.029
BTC 65688.41
ETH 3444.44
USDT 1.00
SBD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