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의 인문학 강의[013]: 제1장 역사 || 사회와 개인 1
제1장 역사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 사회와 개인 1 : 객관적일 수 없는 역사의 객관성
객관적일 수 없는 역사의 객관성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에서 다룬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실이든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굴절되기 때문에 기록의 내용은 있었던 그대로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기록했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 사실(기록)을 잘 해석하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 사실이 발생했던 시공간을 상상하며 앞뒤 맥락을 파악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다고 하더라도 역사가 역시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당대의 언어적 · 감각적 제약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역사를 쓰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런 역사철학을 가졌던 콜링우드Robin George Collingwood, 1889~1943는 그런 허무함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카는 그의 말을 인용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 기독교도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았고, 티유몽은 17세기 프랑스인의 관점으로, 기번은 18세기 영국인의 관점으로, 몸젠은 19세기 독일인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았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 관점인가를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각각의 관점은 그것을 선택한 사람에게 유일하게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1]
언뜻 생각하면 여기까지 논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난다면 역사는 ‘어떤 역사가’가 보기에 그렇고 그런 것일 뿐인 이야기가 됩니다. 당연히 카는 그렇다면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냐고 반문합니다. 어떤 산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해서 그 산에 대해 어떤 모습이라고 해도 다 옳은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어떤 하나가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의 객관성이라는 것은 있으리라는 것입니다(들어가는 말에서 다룬 세번째 유령이로군요).

이미지 15 : 자크-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의 맹세>(1784)
그림의 내용은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Libius Severus가 쓴 『로마 건국사』 제1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기원전 7세기경, 로마 제국과 알바Albe 제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두 국가는 군대를 동원하는 전면전 대신 각각 3명의 전사를 뽑아 결투하기로 약속한다. 로마 제국에서는 호라티우스 형제들이, 알바 제국에서는 큐라티우스 형제들이 나서기로 했다. 비극은 이 두 집안이 사돈지간이라는 점이었다.
이 장면은 출전하기 전 호라티우스 형제가 아버지 앞에서 맹세하는 모습이다. 애국적인 남자들의 강인한 모습에 비하면 여자들은 고통과 슬픔에 젖어 있다.
이 그림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몇 년 전에 그려져서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의 애국적인 정열에 깊이 자극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는 당대의 필요에 따른 관심을 통해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에서의 객관성이란 어떤 것일까요? 카는 바로 그 이야기로 들어가지 않고 뒤에서 꼭 다룰 것이라고 하면서 힌트만 남기고 넘어갑니다. 어떤 지식이든 목적을 가진다는 거예요. 역사도 지식의 한 종류라면 객관성도 그 목적과 관련시켜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겠지요. 저도 역사에서 객관성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카의 생각’을 빨리 털어놓고 싶지만 저자인 카의 생각대로 좀 미뤄두기로 합니다.
카가 생각하는 위의 세 가지 진리에서 오류는 관찰하는 주체와 관찰되는 객체가 ‘분리된 이분법적인 상태’를 전제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은 주체와 객체가 서로 피드백하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마치 제각각 따로 존재한다고 설명한다는 것이지요.
앞에서 예로 든 정조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볼까요? 저는 정조가 그다지 개혁적이지 않았다는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서 읽었습니다. 자료를 섭렵할 때는 그저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과정일 뿐 사실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문체반정에 대해 조사하다가 박지원이 썼다는 『과농소초』 시작 부분에서 설득력 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정조가 죽기 한 해 전에도 여전히 농민들은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기 어려우니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적어도 백성들 입장에서는 전혀 개혁된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왕조실록에서 정조가 즉위하면서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정조 실록에 적혀 있던 ‘사실’이 맥락 속에서 생명을 얻어 살아난 겁니다.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여기까지가 제1장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내용이었지요.
그랬으니 이어지는 질문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역사가(개인)와 그의 사실들의 상호작용 과정이라면 그 개인은 어떤 존재인가를 짚어 보아야 하는 거지요. 카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사회와 개인’이라는 두번째 장의 제목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인은 어떤 경우라도 사회로부터 떨어진 외딴 섬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역사가 역시 그가 속한 사회의 반영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저 말뜻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개인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역사가가 속한 현재의 사회와 과거 사회의 대화가 됩니다. 그 대화의 내용은 현재가 과거에서 주목할 만한 어떤 것이겠지요(지식은 늘 목적성을 가진다는 카의 말을 떠올린다면). 그 역사는 과거의 결과인 현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현재에 비추어진 과거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고 나면 현재를 좀 더 잘 통제할 수 있는 힘도 가질 수 있겠지요. 그것이 역사라는 지식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야기인 「사회와 개인」의 논리는 이렇게 간단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꽤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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