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마법사의 백마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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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가 왔다



그해 교토에서 처음 혼자 여행을 하게 되고. 교토역에 내려 어디로 갈까 두리번거리던 중 자전거 렌탈샵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만의 자전거인가. 어릴 적 타고 잊고 있던 그것. 그 탈것을 빌려서 교토를 달리기 시작했다. 혼자 하는 첫 여행, 자전거와 동행한 교토의 거리. 그리고 아, 나는 마법사구나. 그해 나는 마법사로서의 신분을 받아들였다.



자전거는 혼자 타는 거라고. 자전거는 혼자서 자기 발로 밀고 달려가는 탈것이라고. 그 안장 위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가 온전히 자신에게 달렸다. 그리고 멈추면 쓰러진다. 계속 페달을 구르는 일. 두 다리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는 일. 삶의 진리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자전거 타기는 중력을 거스르는 대가로 시원한 바람을 맞게 해 준다. 오르막 안간힘을 대가로 시원한 내리막 질주를 선사해준다. 노력과 보상의 하모니. 게다가 체중감량은 보너스. 이토록 공정한 레이스.



그날 교토에서의 자전거 맛을 잊지 못해 바로 짐을 싸고 교토 살이를 시작했다. '유라쿠소有樂所'라는 게하에 짐을 풀고 게하에서 제공해주는 내. 자.전.거.를 타고 교토 구석구석 여기저기를 얼마나 헤매었던가. 그리고 체중이 한 달 사이 10kg쯤 빠져나갔다. 그저 자전거를 탔을 뿐인데. 뉴스에서는 스트레스가 비만의 원인이라고. 케케묵은 진실을 또 한 꼭지 할애해서 콕 집어주고.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어내 준 건 자전거라고. 깨달음에 안도하며 염려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될거라고. 그러다 죽는다고.



그때부터 여행은, 즐거운 여행은, 신나는 여행은 자전거 타는 여행. 기억에 남는 도시는 자전거를 탈 수 있던 도시. 그게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자전거를, 이곳 서울에서도 타고 싶어 몇 번인가 사려다 말다, 이런저런 사정에 마음만 들었다 놨다 하다 벼르고 별러 산 자전거마저 괴생물체의 습격으로 떠나보내고. 왜인지 알 수 없는 인연에 늘 그리워만 그리워만.



어느 해 겨울은 무중력 상태에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던 그 시간을 안간힘을 써 구입한 다.시. 내. 자.전.거.로, 꽁꽁 싸매고 강변을 달리는 것으로 버텨내기도 했다. 한 겨울 라이딩의 맛은 알싸하고 뺨을 때리는 날 선 바람은 구슬프고. 그러나 달리고 있으니 나는 살아있는 거라고 그렇게 다짐하고 앙다물고.



마법사에게, 구름 타고 빗자루 타고 양탄자 타고 날아다니는 마법사가 아닌 두 발로 걷는 마법사의 백마는 무엇인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회색의 마법사가 아닌 백색의 마법사에게, 스팀시티의 마법사에게, 백마는 어떻게 주어지는가. 백마가 없어 달리지 못하는가. 백마가 없어 날지 못하는가. 백마가 없어 스팀시티에 가닿지 못하는가.



5월에



마법사가 태어난 달 5월은 우울하거나 괴롭거나 힘들거나. 그리고 사람들은 자주 잊었다. 900번의 생일이 있었을 테니 굳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없는데 잊고도 아무렇지 않은 건 그들에게 돌아오더라. 잊으면 당황해할 관계에 있는 이들이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면 그 관계는 꼭 끝이 나더라. 그건 마법도 아니고 저주도 아니고 뭘까? 인연의 매듭인가? 그런 거 그냥, 괜찮아 하고 지나가도 될 법할 만큼 5월이 그리 반갑지 않은데. 하나뿐인 군대 동기는 훈련 중이라 챙기지 못할 수도 있는 마법사의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고 고참에게 혼이 나고서는 미안하다 뻘쭘하게 사과를 하기도 했어. 그런 일은 왜 일어날까? 그게 혼날 일인가? 나는 그날 행군하며 스스로를 축하해주기는 했다만. 태어난 건 나의 일이지. 찬란한 생을 경험하는 건 나의 복이지, 너의 의무는 아닐 텐데.



그리고 21세기하고 22번째 해의 5월, 누군가 내게 물었다. 원하는 것이 있냐고. 얼마 만인가. 뜻하지 못한 선물. 5월의 생일선물. 고민해보겠다 하고, 뭐 필요한 게 있나 생각하고, 뭘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되는데 생각하고, 뜬금없다 생각하다가, 원하는 것, 원하는 것, 원하는 것. 그의 질문이 필요한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에 백마를 달라고. 마법사에게 백마를 보내달라고. 직관처럼 떠오른 그것은 백마였다. 브리튼의 백마.



그는 생일선물치고는 무진장 과한 금액의 그것에 놀라고서는 '아니 이런 걸 매년 달라고?' 했다. 매년이라고, 매년이라고. 그 말이 달콤했다. 그는 이것이 매년의 시작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싶다. 그의 부富가 마구 자라나 아무리 과한 무엇이어도 '그깟 것', '원한다면 그깟 것'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부터라고,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이 아니어도 좋다고 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선생의 부가 백마쯤 껌값 되는 때가 올 텐데."

"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루나와 코인들이 폭포수처럼 부를 토해내던 날, 백마는 대륙을 가로질러 마법사에게 왔다.



이 선물은 과하다. 생일선물로서도, 선물로서도 과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과한 선물을 주고받을 만큼 부한가? 가까운가? 소중한가? 마법사 멀린은 그의 책 <개새끼소년>에서 사랑은 돈 주는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에게 돈을 준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거래를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주고, 그것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법사도 주고 싶다. 그것을.



5월은 마법사가 태어난 달이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고 외로워도 5월에는 마법사가 태어났다. 그리고 21세기의 여기 이곳에서 그대들과 함께 살고 있다. 마법사는 백마를 타고 그대들을 가라앉은 마법의 도시 [스팀시티]로 안내하고 있다. 그 길에는 노란 동전이 깔려 있고 용맹한 사자와 사랑 넘치는 로봇, 지혜가 충만한 허수아비 친구가 그대들의 레이스를 기다리고 있다. 함께 떠날 마음과 변하지 않는 뜻, 진실된 정성의 레이스, <위즈덤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 레이스의 끝에는 가짜 마법사가 다스리는 에메랄드 Fiat City가 아니고 지혜롭고 용맹한 총수들이 이끄는 마법의 도시 [스팀시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5월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대들의 용기를 시험해야 하니 얼마나 잔혹하고 고통스러운가. 그러나 자전거가 가져다주는 보상을 잊지 말도록. 내리막길의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맞아줄 테니.



백마가 왔다. 브리튼에서, 5월에, 마법사에게, 피해 가고 싶은 5월에 잊지 못할, 기억에 남을 선물이 도착했다. 이것은 백마가 맞다. 마법사가 원하는 그것이 맞다. 그리고 레이스가 남아있다. 남은 레이스는 원하는 그것들을 맞이하는 레이스가 될 것이다. 백마를 타고 달리는 백색의 마법사에게 두려울 것이 무얼까, 거칠 것이 무얼까. 백마를 타고 한 손에 검을 들고 함께 방패를 이룰 그대들과 조우할 남은 나날들이 기대되지 않겠는가?



기억하길
기념하길
기대하길
5월이다.

그러니 오늘은
백마 타고

휘리릭~







[위즈덤 레이스 + City100] 058. 교토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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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며칠인진 모르겠지만,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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