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인생은 잘못이 없어

in #kr2 years ago

우리로 치면 '에로 영화'로 분류되는 일본 핑크 영화에는 '333 법칙'이란 게 있다. 3천만 원의 제작비로 3일 안에 찍으며 3번 이상의 섹스신이 등장한다. 이 법칙만 지키면 감독은 그 어떤 이야기를 찍어도 된다.

핑크 영화의 (룰을 전제한) 자율성은 적지 않은 명감독을 배출했다. '쉘 위 댄스'의 스오 마사유키의 데뷔작은 핑크 영화 '변태가족, 형의 새색시'이다. 히로키 류이치도 '성학대! 그 여자를 폭로한다'로 데뷔한 핑크 영화 출신 명감독이다. 핑크 영화적 전통을 계승한 '바이브레이터'로 호평을 들었다.

그의 최근작 '그녀의 인생은 잘못이 없어'도 핑크 영화의 흔적이 있다. 주인공은 콜걸이다. 전라 노출신이 나오며 세 번의 베드신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는 동일본 대지진이 불러온 가족의 붕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가끔씩 접하는 일본 영화에 별로 나오지 않아, 나는 그들이 이 거대한 상흔을 빨리 잊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지었다. 그러나 최근 OTT로 찾아본 많은 일본 영화들이 후쿠시마의 상처에 대해 말하고 있었으니, 내가 미처 못본 것이었다. 영화는 그들의 할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은 잘못이 없어'의 여주인공도 쓰나미로 엄마를 잃은 젊은 여성이다. 나라에서 제공한 임시 가옥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지만 아버지는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올 기색이 없다. 생활비 떄문에 도쿄까지 버스를 타고 가 '출장 접대'로 돈을 번다. 만약 그녀의 인생이 망가진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누구 때문인가. 당연하게도 천재지변 때문이다. 그러니 제목처럼 그녀의 인생에는 잘못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남자들의 성욕을 풀어주는 대가로 돈을 버는 그녀를 비난할 수 없다. 그 자신만이 자신을 비난할 뿐이다. 이 작품은, 그렇다면 누가 그녀를 위로할 것인가에 대한 영화다.

이런 영화에는 도저히 '에로'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다. 이것은 리얼리즘이다. 핑크 영화 역시 성욕의 충족과 타협하는 척 하면서 일본 사회의 밑바닥을 들여다 본 리얼리즘 장르에 속한다. 그러니 명감독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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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SteemitKorea팀(@jungjunghoon)님께서 저자이신 @madoasis님을 추천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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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음날 다시 한번 포스팅을 통해 소개 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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