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담

in #kr2 years ago

오타쿠의 특징은 텍스트에 대한 지식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이들에겐 계보와 시리즈 전체를 꿰뚫는 세계관이 중요하다. 상대를 적대시하는 방식, 즉 타자화의 기준도 그것이다. 즉, 내가 아는 것을 저 사람도 알고 있느냐의 여부가 중시된다는 얘기다. 알고 있으면 '우리 그룹'이고 모르고 있으면 '말 상대가 안되는 쪽'이 된다.

아이언맨 이후 10년 천하를 구가했던 마블 시리즈의 인기 덕분에 이른바 MCU 오타쿠들이 많이 생겼다. 마블의 마니아들도 코믹스를 직접 구해 읽은 사람들 앞에서 깨갱이다. 슈퍼 히어로들 사이의 관계도와 MCU의 철학에 대한 통찰을 자랑 삼는 게 당연시 되고 역시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말 상대가 안되는 쪽이 된다.

이런 태도에 대한 논평은 둘째로 하고, 그래서 이건 거대한 시장이라는 얘기다. 할리우드가 끊임 없이 슈퍼 히어로물을 만들어내고 스핀 오프에 뒤늦게 DC까지 합세한 이유는, 바로 이 시장, 충성도 높은 오타쿠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쿠만 슈퍼 히어로를 소비한다면 할리우드의 규모의 경제를 떠받들지 못한다. 안보면 대화에서 따 당할지도 모른다는 암묵적인 강요(집단 심리)를 등에 업고 하루가 멀다하고 슈퍼 히어로물이 양산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슬슬 이탈하기 시작했다. '블랙 아담'은 아마도 그 증후가 될 것이다. 제작비 2억 달러를 들인 초대형 슈퍼 히어로 영화이지만 개봉 첫주 사흘동안 한국에서 20만 명도 모으지 못했다는 것은,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의 표현이다. 한마디로, 지겨운 것이다.

요즘은 엔드 크레딧에 나오는 쿠키가 슈퍼히어로물을 보러 가는 유일한 재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찬일 선배 평론가가 방송에서 쿠키 일부를 발설했다가 스포일러 혐의로 욕을 먹고 있다. 쿠키가 영화를 즐기는 이유의 거대한 비중을 차지한다면, 히어로의 시대는 끝났다는 반증이나 다름 없다.

할리우드는 21세기의 첫 10년을 문학에 빚진 판타지로 버텼다. 다음 10년은 만화에 빚진 히어로물로 버텼다. 이제 뭘로 버틸까?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이 할리우드에 한수 가르치고 있다. 너희 1970년대에도 그런 작품이 쏟아졌었다. 왜 그렇게 쉽게 잊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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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글은 SteemitKorea팀(@jungjunghoon)님께서 저자이신 @madoasis님을 추천하는 글입니다.
소정의 보팅을 해드렸습니다 ^^ 항상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SteemitKorea팀에서는 보다 즐거운 steemit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다음날 다시 한번 포스팅을 통해 소개 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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