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 1월 19일

in zzan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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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5(고려 인종13)년 묘청 서경에서 대위국(大爲國) 세우고 반란
묘청은 1135년(인종 13년) 정월 어서경의 분사시랑 조광(趙匡) 및 병부상서 유참 등과 반기를 들고 개경의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부류현(副留縣) 수령 이하 관리들과 서경에 와 있던 사람을 모조리 잡아 가두었다.

인종은 사신을 보내 반란을 멈출 것을 권유했으나, 서경으로 천도하면 다시 충성할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조정에서는 김부식을 평서원수로 하는 진압군을 파견하였다. 김부식은 출정에 앞서 개경에 남아 있던 묘청 일파인 정지상·백수한·김안(金安) 등을 참수하였다.

김부식은 좌·중·우 3군을 지휘하여 서북면으로 진격하였다. 거기서 토적(討賊)의 격문을 발하여 여러 성에 보내어 서경 주위의 여러 성(城)을 산하에 끌어들여서 이들을 달래었다. 진압군은 서경을 먼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을 제압하여 서경을 고립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윽고 서경 주변 지역에 대한 제압이 끝나자 그제야 진압군은 서경을 포위하였다.

승산이 없음을 안 조광 등이 묘청과 유참, 유참의 아들 유호(柳浩)의 목을 베어 분사대부 윤첨(尹瞻)을 고려 조정에 보내 항복의 뜻을 표시하고 죄를 용서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1136년(인종 14) 2월 진압군은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미 식량도 사기도 떨어진 반란군은 수장인 조광 등이 스스로 몸을 불태워 목숨을 끊자정부군에 항복함으로써 반란은 끝났다.

1908년 이용직등 기호흥학회 설립
민족자강을 위한 교육계몽운동을 목적으로 발기인 정영택(鄭永澤)을 비롯, 기호인사 105명이 서울 신문로의 보성소학교(普成小學校)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초대회장에 이용직(李容稙)을 선출하였다.

회칙에서 “본회는 경기도 및 충청남북도에 흥학하기로 목적함(제2조). 전조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학업을 권장하며 회보를 간행하여 일반인사에게 지식을 주입하며, 경기도 및 충청남북도 각 군에 교육을 발전하게 함(제3조).”이라고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교육진흥을 강조했지만, 근본 목적은 물론 독립·애국사상의 고취에 있었다.

흥학운동은 유지들의 협력으로 비교적 활발해 학교 설립을 속속 추진하였다. 그러나 교사의 부족으로 1908년 6월서울 소격동에 교사 양성을 겸한 기호학교를 설립했다. 3년 과정의 본과와 1년 반 과정의 특별과를 두었다.

회보로 『기호흥학회월보』를 발간하였다. 발행인은 김규동(金奎東), 편집인은 이해조(李海朝)이다. 1909년 7월까지 월간·국판으로 통권 12호를 발간했으나, 내용이 국권 회복에 관계된다 하여 제6·9·10·11호 등이 여러 번 압수되기도 하였다. 창간호에는 의친왕의 ‘咸與維新(함여유신)’이라는 친필을 실었다. 1910년 9월 강제 해산되었다.

1967년 해군 56함 동해에서 어로작업 보호중 북한포격으로 침몰 전사39명
1967년 1월 19일 오후 2시 34분 동해어로저지선 근방에서 명태잡이 어선을 보호 중이던 해군 56함(PCE 56함) 당포호가 북한해안포의 집중포격을 받고 격침됐다.

해군56함은 이날 명태잡이 어선 60~70 척이 고성군 수원단 남쪽에서 어로저지선을 넘어 북상하는 것을 남쪽으로 돌아오도록 운항 지도중, 수원단 동쪽 6마일 지점에서 나타난 북한 패트롤선 2척에게 포격을 받았다.

56함의 함장인 김승배 중령은 즉각 응사명령을 내렸으나, 교전 끝에 적의 포탄에 기관실을 포함한 선체 일부가 명중했다. 인근의 우리 해군 71함, 53함, 63함이 출동했지만 이미 56함의 선체는 정지된 상태였고, 2시 34분에 결국 침몰했다. 이 56함에 타고있던 78명 중 28명이 실종되고 51명이 구조됐으나 이중 11명이 전사해 결국 총 39명의 아까운 젊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2년 김보은사건 김보은과 애인 김진관 구속
13년동안 의붓딸을 성폭행해온 가해자 김영오를 피해자 김보은의 남자친구인 김진관이 살해한 사건이 충북 충주에서 일어났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주중에나마 아버지와 떠러져 기숙사에 머물게 되었고, 학교 친구인 김진관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김진관은 보은이를 도우려는 마음에 "이제 보은이를 놓아주라" 고 간청했지만 당시 충주검찰청에 총무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영오가 오히려 "다 잡아넣겠다. 죽여버리겠다"거 당당하게 나오는 데에 격분하여 가해자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김진관의 아버지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의뢰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곧이어 전국에서 <김보은, 김진관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구명활동을 시작했다. 항소심을 준비하면서 공대위는 전국 56개로 확대되었고, 22명의 무료공동변호인단도 구성하였다.

그동안 금기시되어왔던 근친성폭력의 엄청난 실상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고, 안식처로 여겨지던 가정내에서 일어난 성폭행, 그래서 방치될 수밖에 없었고 또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근친성폭행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또한 전국규모의 <김보은.김진관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의 세심하고 조직적인 활동은 성폭력피해자 보호와 성폭력추방운동의 장을 새롭게 마련한 점이 큰 의의가 있다. 그리고 1993년에 제정된 폭력특별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2014년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에 안중근의사기념관 공식개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의거 현장인 중국 하얼빈 기차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공식 개관했다. 안 의사 기념관은 의거 현장 바로 앞에 있던 귀빈용 대합실 일부를 개조해 200㎡ 규모로 건립됐으며, 중국 정부 관리 하에 무료로 개방된다. 참관자들은 유리창 너머로 의거 현장인 플랫폼을 살펴보는 한편, 안중근 의사의 생애 및 의거사진과 설명자료 등을 열람할 수 있다.

중국은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 천장에 '안 의사, 이등박문 격살 사건 발생지'라는 문구도 붙였다. 또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 외부 벽면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간에 맞춰 오전 9시 30분에 고정된 대형 벽시계가 걸렸다.

중국 정부는 이번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을 비밀리에 진행해온 끝에 19일 첫 공개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식에는 쑨야오 흑룡강성 부성장과 송시빈 하얼빈시 시장 등 중국 측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의 후속조치 차원으로 개관된 것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하얼빈역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도록 협조해달라"라고 요청한 바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사설을 통해 '안중근 기념관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라고 강조했다.

1899(대한제국 광무3)년 경의선 철도부지 측량 시작
1900(광무4)년 우리나라 처음으로 미국에 우편물 보냄
1914년 한국 최초의 유치원 이화유치원 개원
1962년 KBS-TV 최초의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원작 유치진 연출 이기하) 방송
1978년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 장군의 에베레스트 등정기록 발견
2003년 동계유니버시아드 스키점프 강칠구 2관왕
2020년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미국영화배우조합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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