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낭비가 낭만’, 그리고 ‘낭만이 낭비’ 그 사이
낭비가 낭만
낯선 거리를 걷다가 작은 카페로 들어간다. 창가에 앉아 대지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지켜본다.
비를 피해 가까운 서점으로 들어간다. 서점의 의자에서 생소한 작가의 책을 뒤적거리며 오후 시간을 꼬박 보낸다.
갑자기 짠 내가 코끝을 맴돌아 가까운 바다로 무작정 차를 몰아간다. 마침 번지기 시작한 바닷가 석양 아래서 파도의 포말을 바라본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스탠드의 불을 켜고 노트를 펼친다.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던 이야기를 적어 나간다. 밤에 시작한 일이 새벽에 끝나기도 한다.
넓은 침대에 누워 창밖의 어둠과 여전히 빛을 간직한 곳의 옅은 풍경을 바라본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감사하며 잠이 든다.
이제는, 내 일상에서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이다.
나의 시간을 서정적인 배경 앞에 세워 두고 맘대로 낭비하는 자유는 서산 너머로 진 태양빛 같이 붉은 잔상만 남았을 뿐이다. 어둠이 깔린 산길을 더듬더듬 내려오며, “어라 언제 해가 졌지?” 하는 탐험가처럼, 난 시간을 맘대로 꺼내 쓰던 금고의 문이 봉인되어 버렸다는 걸 갑작스레 깨닫게 되었다.
일생일대의 변화는, 아이와 함께 찾아 왔다. 아이가 엄마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뚫고 내지른 울음소리가 바로, 내 시간의 금고가 철컹, 하며 닫히는 소리였던 것이다.
낭만이 낭비
시간을 낭비할 수 있었던 자유가 곧 낭만이었던 시절이 지나가고, 바야흐로 낭만을 뒤쫓는 것이 낭비인 시절이 도래했다.
이른 아침부터 두 살 아가가 집안을 배회한다. 내가 움직이는 기척이라도 내면 바로 달려들어 냉장고로 내 손을 잡아끈다. 움직이면 달려드는 좀비나, 숨 쉬면 달려들던 강시, 그것보다 몇 배는 더 스릴 있는 아침의 게임. 그걸로 달콤한 잠은 종료.
소확행을 위해 찾은 서점. 한 권이라도 건지기 위해 미리 살 책을 검색해 가는 안전장치를 하지 않으면 흥분한 아이의 고함 소리와 함께 바로 소환. 얼마만의 서점 방문인데, 빈손으로 귀가하는 슬픔이란.
아이를 재우면 맞이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 이것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에너지를 고갈시켜야 한다! 8시를 목표로 오후, 저녁 시간 아이와 함께 엄청난 활동을 전개한다. 결과는, 아이를 재우다 먼저 잠듦. 아이의 에너지 고갈을 위한 활동은, 내 피지컬도 깎아먹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오래.
여행을 계획할 때, 환상적인 낙조와 감성을 일깨울 그 지역의 문화를 찾아보는 대신, 놀이방을 갖춘 시설과 동물 먹이 주는 체험을 먼저 찾아본다. 고려 대상이 바뀐 지 오래. 아빠는 가족 4명 중 고려 순위 4등.
안겨 있기 좋아하는 우리 첫째, 또래보다 작아도 몸무게 14kg 육박함. 4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안았더니, 몸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러다 알통 치킨 사업 시작해도 되겠다.
‘낭비가 낭만’이었던 시절과 ‘낭만이 낭비’인 현재는, 봄꽃과 가을꽃의 차이일 뿐이다. 둘 다 향기 나는 꽃이다. 두 꽃 모두 사랑한다. 가끔 계절이 지난 꽃향기를 맡고 싶을 때가 있어서 문제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격하게 공감합니다 솔메님 ㅎㄹ
자유시간의 야욕때문에 무리한 날은,, 정신을 못차리겠더라구요.ㅋㅋㅋ
저도 애들 재우면서 같이 잠들어서
본의아니게 다른분과의 약속을 깬적이 있어요 ㅠㅠ
ㅋㅋㅋ 사회생활에도 지장을 줬다는 슬픈 사연이네요ㅎ
기본인거죠 ㅎㅎㅎㅎ 저는 책읽어주다가 제가 졸아요 ㅎㅎㅎㅎ
ㅋㅋ보통의 일상이죠ㅋ
금고가 닫히고 새로운 문이 열리는 시간~
모든 꽃은 아름답죠~
화이팅~!!
금고 대신 열린 문이 보석보관소라는ㅎㅎ
감사합니다^^
재우다 잠듬 2222
잦은 일상이신듯 하네요ㅎㅎ
흩어지고 쓸리는 물결의 사이는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 사이가 흩어지고 쓸리는 사이를 기억할 뿐, 그 사이에 누가 주워 담느냐 그 차이이겠죠. 먼저 살아 갔다고 그 시간을 다 아는 것이 아닌 것 처럼. 제 독백입니다.
반복되는 물결 사이~~
걍 풍덩 뛰어들어 수영하는 건 어떨지.
조금 안다고 자만할 것도, 잘 모른다고 실망할 것도 없지요
독백은 독백으로 응수!^^
분명 닫힌 시간의 금고가 열리는 날도 오겠지요??
그 때되면 체력이 안될려나 ㅠㅠ
아하! 그래서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 거죠~~ㅋㅋ
한참동안 생각하게 하네요. 낭만과 낭비.
선후가 바뀌었을 뿐인데 의미 차이가 나더라구요. ^^
봄꽃, 가을꽃... 그 마음이 좋아요.
어떤 시간에서도 긍정을 잃지 않고
낭만에 깃들 수 있는 소울메이트님이야말로 진정한 로맨티스트! 멋쟁이!^^
역시 긍정적인 마담님은 좋게 봐주시네요.^^ 로맨티스트라는 말은 마담님한테 더 어울리는 말이예요.ㅎㅎ
낭만이든 낭비든 그 상황에 만족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이지요.
솔메님 이렇게 낭만적인 글을...
ㅎㅎㅎ
제 2장을 읽으면서는 칼오베라는 작가가 떠올랐어요. 책 속에서 아이가 태어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던 아빠로서의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 인상적이었는데 소울메이트님 또한 작가이기 이전에 아이들의 아빠로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그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흐흐
:-)
ㅎㅎ 언제나 생활인이자, 아빠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아내야죠. '칼 오베'라는 작가를 찾아보니 '나의 투쟁'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썼군요.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려는 저의 노력도 어쩌면 '나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ㅋ 낭만을 느껴주셔서 감사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