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심사하는 결정론자의 일기
결정론자에게 타인을 평가하는 일은 어렵다. 결정론자에게 "당신은 능력이 부족해."라는 말은 "당신은 능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았어."와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국소적인 능력에 대한 평가조차도 타인의 삶 전반에 대한 평가에 속한다. 개인의 삶에는 개인만 속하지 않는다. 부모, 국가, 사회, 친구, 스승 등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 모든 것이 속한다. 그 모든 것을 평가하는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평가는 당하는 사람 뿐 아니라 하는 사람에게도 불유쾌하다. 나는 결정론자이며 평등주의자이기에 더욱 어렵다. 평등해야 할 인간들이 평등하지 않다. 평등하지 않은 육체를 갖고, 평등하지 않은 삶을 살았기에 평등하지 않다. 따라서 결정론자이며 평등주의자인 사상가로서의 나는 일체의 평가를 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연약해서일까, 아니면 세상이 냉혹한 것일까, 우리는 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곤 한다. 그럴 때 나는 탈을 쓴다. 객관 혹은 주관의 탈.
객관은 주로 자본주의의 논리를 빌린다. 차등을 두고 싶지 않지만 둘 수 밖에 없다며 자신을 위로한다. 우열을 가리는게 아니라 효율성을 따질 뿐이라며 스스로를 끊임 없이 달래야 한다. 다음으로 주관은 내 개인적 평안을 위해 존재한다. 내 사상에 따르면 사람 사이에는 차등을 두지 않아야 하지만, 내 개인적인 삶을 평안하게 가꾸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 사이에 차등을 두지 않는건 내 이상이지만, 나에게는 내 이상만큼 나 자신의 평안도 소중하다. 이렇듯 충돌하는 두가지 생각 사이를 파고들 인지부조화를 피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한 변명이 필요하다. 인간사회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 했다거나, 내가 아직 초인이 아닌 유약한 인간이라고. 사실 충분히 노력하고는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해를 끼쳤더라도. 내가 주관적으로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으로 차등을 두었더라도, 그 사람의 바람직 하지 않은 모습들은 교정 해야 할 모습이지, 비난 받아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이게 내 한계다.
나는 지금 일기를 평가해야 하는 입장이다. 객관의 탈을 써야 하는 순간이다.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평가를 해야하는 입장이라면 철저하게 해야한다. 그 누구도 납득할 수 밖에 없는 객관적인, 공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기의 요소를 나누고 바람직하지 않은 평가기준을 분석하고 배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평가기준을 지우다 보니 끝이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바람직한 평가기준을 찾기로 했다. 이를 위해 최상의 일기를 가정해 보았다. 최상의 일기란 평범한 일상에서도 사유하며, 자신을 깊게 관찰하여 그 사유를 후에 자신이 읽거나, 더 나아가 같은 경험이 없는 타인이 읽어도 그 경험에서 사유가 나오는 흐름을 모조리 파악할 수 있는 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유의 수준이 높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사유의 수준은 개인에 따라 다르며, 이를 평가하는 것도 개인의 삶을 평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평범한 일상에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평가도, 자신을 깊게 관찰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평가도, 그렇게 관찰한 내용을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평가기준들을 척도로 삼는다면 불평등하다. 개인의 능력은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에는 우열이 없지만, 능력에는 우열이 있다. 그리고 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능력 없음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평등하다. 하지만 이 세상이 이 모양인걸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인류를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가?
주관의 탈을 쓰고 숨었다면 편했을 것이다. 내 마음에 드는 글이 내 기준에 좋은 글이라고, 그냥 그렇게 넘어갔으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만이다. 나는 아프지만 객관의 탈을 쓰고 여러분들의 글을 해체할 수 밖에 없다. 미안하다. 하지만 여러분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음을, 그저 여러분들의 글을 평가해야 하는 자리에 있을 뿐임을 이해하시길 바랄 뿐이다. 불평등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결과물을 심사하는 것에 있어서 공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 최선이다. 공평하진 않겠지만 공정할 것이다. 내가 드릴 수 있는 약속은 이것 뿐이다.
누가 이런 큰 짐을 떠안겼나요. 다운봇으로 응징하겠습니다.
혹시 @clayop 님 아닐까요? ㅋㅋ
나 증인한테 죽었다. 제발 살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셀프 보팅 때문에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셀프 다운보팅은 이슈가 될까요? ㅋㅋㅋㅋㅋㅋㅋ
전 그래서 참여를 안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고참님, 그런 깊은 뜻이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다음에는 참가하시는걸로 ㅋㅋㅋ
저는 땡이군요. 객관적인 일기는 자고로 초딩 일기같아야하는 줄 알고 하루일과를 ㅋㅋㅋㅋㅋ 쓰고보니 세상에 객관적인 일기가 어디있나 싶네요. 그래도 참잘했어요 도장은 찍어주세요.
여과 없이 진솔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초딩 일기는 진솔하죠.
남을 평가한다는 것이 참 어렵지요
내 주관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서..
편하고 즐거운 마음이시겠지만 고뇌스런 부분도 있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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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공모전과 관련해 고민이 깊으셨던 것 같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분명 모든 분들이 이해할 거고요. 그리고 평가에 대한 고민 또한 재미있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 무거워지는게 직업병인지 뭔지...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ㅠ
깊은 고민이 느껴지네요^^ 사람이 하는 평가가 얼마나 완벽할 수 있겠어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편안하게 임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변태 같은 면이 있습니다.
결국 심사위원님의 일기를 훔쳐보게 되었군요 ㅋㅋㅋ 출품작이 많아서 수고로움이 더할듯 합니다. 공정하고 멋진 심사 기대할게요! 화이팅! (사유기준이라면 전 탈락입니다. 개그욕심을 버리지 못하여...ㅋ)
꼭 진지할 필요는 없지요. 유머도 좋습니다.
아직 일기들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평가하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즐겁게 하셨으면 합니다.
비가 오는 하루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