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눈의 운명
눈의 운명 @jjy
밤새 눈이 내린 날 아침에 보이는 풍경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욕심껏 눈을 지고
어깨가 축 늘어진 소나무로 가득한 산은 일 년 내내 입는 검푸른 옷을 버리고 모처럼 하얀 옷으로 갈아입는다. 좁다란 들길에 강아지풀이나 쑥부쟁이 같은 이미 말라 죽은 잡초의 초라한 몰골에까지 눈꽃이 핀다. 선인들도 눈을 아름다운 꽃이라 여겨 육출화(六出花)라고 불렀고 한다.
예전에 숫눈을 밟고 걸을 때마다 뽀드득 거리는 소리가 신기해서 몇 번을 멈춰 서서 유심히 보기도 하고 일부러 발에 힘을 주고 꼭 눌러 밟기도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손가락 끝으로 바둑이 발자국을 만들고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도 하고 두 주먹을 쥐고 소발자국을 만들면 소처럼 네 발로 걸어 다니는 소처럼 걷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도 싫증이 나면 발꿈치를 꼭 붙이고 깡충깡충 뛰면 파란 바탕에 흰색으로 그린 유엔 깃발에서 본적이 있는 월계수 잎이 생겨나기도 하고 한 쪽 발로 동그랗게 발자국을 새기면 국화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워 몸의 윤곽이 새겨지면 눈사진 찍었다고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눈싸움을 하다가 신발이고 옷이고 눈 투성이가 되어 뭉친 눈을 한 덩이씩 먹으면 왜 그렇게 시원했는지 요즘의 아이스크림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맛이 숨어 있었다. 이 십 대에 들어서는 눈이 오면 벌써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추운 줄도 모르고 눈길을 걸었다. 그러다 손이 시리면 잡은 손을 그대로 코트 주머니에 넣고 걷다가 둘이 한꺼번에 넘어지기도 하고 그럴라치면 아픈 건 젖혀두고 누가 볼까봐 재빠르게 사방을 둘러보고 일어나 웃으며 또 걸었다. 그렇게 한 참을 쏘다니다 늦은 시간에 들어가면 여지없이 아버지의 걱정 어린 발자국이 대문 앞에 가득했다. 지금보다 교통이 나쁘고 따뜻한 옷이나 신발이 없어도 눈이 있어 행복했다.
눈이 오면 그냥 철부지들만 좋은 게 아니라 생활에도 유익했다. 요즘은 성능 좋은 스팀다리미가 있지만 예전에는 다림질을 하려면 일일이 물을 뿌려야 했는데 눈 오는 날은 잠시 밖에 걸어두면 저절로 다림질하기 좋은 상태가 된다. 그리고 본 일은 아니지만 동짓달 납일에 내린 눈을 받아 녹은 물로 차를 달이거나 약을 달이는데 쓰면 효험이 있다고 했으니 정성과 자원 활용 면에서도 높이 살만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요즘은 미세먼지를 비롯해 그 밖에 유해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그것도 영영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몇 해 전인가 내린 눈에 오렌지 주스 보다 산도가 높은 산성 눈이 내렸다고 눈을 맞는 일을 삼가라는 보도가 있었다. 하물며 눈을 먹는 일은 상상도 못할 위험한 일이 되어 눈이 내리기 무섭게 눈을 치운다. 설경을 바라본 사이도 없이 제설차들은 치사량의 염화칼슘을 뿌리고 길은 자연사가 아닌 살해 된 눈이 변한 지저분한 물로 질척거린다. 이제 눈은 꽃도 아니요 동화 속 나라도 아니고 빨리 치워야할 장애물로 전락한지 오래다.
설경을 보고 싶은 사람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도심을 벗어나 조금이라도 한적한 곳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쯤 누군가는 눈을 공중에서 잠시 보여주고 곧바로 증발 시키는 기술이 연구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숫눈.
눈이 와서 쌓인 상태 그대로의 깨끗한 눈.
(네이버)
육출화(六出花)
‘눈’을 달리 이르는 말.
눈송이가 여섯 모의 결정을 이루는 데서 유래한다.
육화(六花)라고도 한다. (네이버)
납일.
음력 12월, 섣달은 납월臘月이라고도 하는데
여기 납臘은 수렵(狩獵, 사냥)과 무관하지 않다.
동지 후 세 번째 미일未日을 납일이라 하여
나라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납향제臘享祭라는
큰 제사를 지냈다.
이때에는 멧돼지와 산토끼를 썼으니
이는 포수가 사냥하여 바친 것이다.
납향에 쓰는 산짐승고기를 납육臘肉이라고 한다.
(네이버)
눈도 자연사가 좋군요~^^
그럼요.
눈도 기왕 먼길을 왔으니
장수는 그만두고 명대로는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예쁜 아기 꼬까신 신은 발자국도 내고
오....
정말 예전이랑 지금이랑은 비교도 못하겠어요
같은 하얀 눈이라도 지금눈은 어마무시하게 산성도가 있다니 ㅜㅜ 정말 @jjy님 말씀대로 누군가는 바로 증발시키는 걸 연구하고있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모든게 사람들의 욕심이 부른 재앙이지요.
하얀 눈까지 오염을 시킬 정도로
눈-보고 만지고 먹던 날에서 이젠
볼 수만있는 관상용이 되었군요.
언젠가 죽어도 별 억울할게 없는 날이 오면
눈을 펑펑 집어먹고 죽어보는 것도 생각해볼랍니다.
신문에 나오겠어요.
'모처에 사는 아무개님
눈 집어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고
그런데 왜 소설 리진에서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는지요?
양잿물을 바른 책장을 뜯어먹으며 숨을 거둔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