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life story - 공산성 갑옷에 숨은 백제 최후의 날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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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최후의 날@jjy

660년 7월18일은 백제가 신라·당 연합군의 발굽 아래 스러졌던
날이다. 백제 최후의 날이 펼쳐졌던 역사의 현장은 어디였을까.
백제 마지막 도읍인 사비(부여)로 점찍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낙화암에 투신한 삼천궁녀 전설부터 떠올릴 터이니. 하지만 백제
의자왕이 항복한 곳은 두 번째 도읍 웅진(공주)의 공산성이다.

그해 의자왕은 함락된 사비성을 빠져나와 선왕들 거처였던
공산성에서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다 엿새 만에 항복해버린다.

1351년 세월이 흘러간 2011년. 옛 백제인의 저수조 터에서
한자 명문이 줄줄이 적힌 가죽찰갑옷(칠피갑옷) 조각들이
조사단에 의해 발굴된다.

당 태종이 고구려를 원정한 해다. 그해 백제가 당 태종에게
‘금휴개’란 갑옷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2014년 추가
발굴 결과 칠피갑 유물은 말갑옷(마갑)과 큰 칼 위에 정연하게
포개져 놓였고 그 윗부분은 볏짚단으로 덮어 묻은 얼개가
밝혀졌다.

갑옷 조각이 나온 지층 바로 위에는 백제 가옥터가 폐기된
흔적이 드러났다. 멸망 직전 의례성 행위를 하고 갑옷을 묻은
자취가 드러난 것이다.

학계에서는 곧 국적 논란이 벌어졌다. 갑옷의 제작처가 백제냐,
당나라냐는 것이었다.

첫 발굴 당시 칠피 갑옷을 당 태종에게 선물한 백제의 이름난
갑옷의 일종인 ‘명광개’(明光鎧)로 간주했다. 문헌사학계 쪽에선
백제는 중국 연호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당나라 장수
갑옷설을 제기했고, 중국학자들도 당나라 제작설을 지지해왔다.

공산성 갑옷은 7세기 동아시아권의 유일한 실물 갑옷이다.
6세기 이전 갑옷들은 무덤 부장품이라 출토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6세기 이후엔 불교 전래 영향으로 무덤에서 갑옷이
사라진다.

이처럼 공산성 갑옷은 희귀한 가치를 지녔음에도 비교할 만한
다른 실물이 없어 제작처 논란을 명확히 결론짓기 어렵다.

이 갑옷 조각이 왜 공산성에 묻혔는지를 파악하게 된다면,
백제 최후의 날, 어떤 드라마가 있었는지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뉴시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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