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in #kr8 years ago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다. 


살기위해서 먹는 사람과

먹기 위해 사는 사람  


이건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루 중에 오늘 뭘 먹을지가 제일 큰 고민이고, 하나의 맛집을 찾기 위해 블로그를 삼십개씩 뒤지고, 맛있는 것을 입에 넣었을 때 세상사는 이유를 느끼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    




  먹사시리즈   1. 밤 아홉시에 퇴근 할 땐    




    '딸깍'    


노트북 화면 오른쪽 위의 엑스표시를 누르자 그냥 꺼져 주지 않고 친절하게도 저장 하실 거냐고 묻는다. 네. 저장해주세요. 예스. 예스.   엑셀, 인터넷, 윈도우, 전원 끄기, 끄기 순서대로 꾹꾹 눌러 컴퓨터를 끈다.  


 최대한 궁둥이 오래 붙이고 앉아서 일하라는 사장의 배려인지 쓸데없이 푹신한 의자에 깊숙이 기대니 이제 조금 숨을 돌리겠다. 하.. 


 진짜 토할 거 같다. 너무 피곤해. 도대체 며칠째 이어지는 야근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이놈의 회사에선 일하는 사람이 나 혼자인건지 이 미친 업무량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놈의 보충해준다는 인원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건지 그리고 그 누군가가 오기 전까지 이 일을 짊어져야 하는 게 왜 나인건지. 이놈의 회사. 정말 너무 싫다. 머리가 띵하다가 곧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난다. 몇 시지. 시계를 힐끗 보니 아홉시.  


 내일 아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를 달달 볶아댈 박부장 얼굴이 앞에서 아른거려 정신없이 오탈자를 뒤집어 대서 그런가. 나의 모든 장기가 기능을 잠시 멈췄던 거 같다. 배고픔을 못 느끼다니. 정말 나한테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인지하고 나니 배고픔이 세 배로 몰려오는 거 같다.  


 책상위에 널브러져 있는 핸드폰이고 볼펜이고 다 가방에 쓸어 넣어 일어섰다. 일 년차가 맨 마지막에 문 잠그고 퇴근하는 게 말이 되니. 당장 뛰어 내려가고 싶지만 항상 보안을 강조하는 박부장 목소리가 귀에 윙윙거려 세콤 장치가 제대로 걸렸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나서야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버튼을 누른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생각보다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한 낮에는 오질라게 덥더니 뭐야 진짜 5월 날씨 왜이래..   출퇴근길 내게 말거는 사람 하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챙겨 입은 톤다운 된 핑크색의 트렌치코트는 이 생뚱맞은 바람에서 날 보호해주지 못한다. 따뜻하지 않을 거면 날 따뜻하게 해줄 남자라도 만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핏되는 사이즈라 더 감싸지지도 않지만 주섬주섬 더 옷을 여며 본다.  



    저녁 뭐먹지. 저녁은 시부럴 밤 아홉시에. 뭘 먹어도 야식이네. 그래도 굶을 수야 없지. 내가 받은 스트레스가 얼만데. 이건 먹을 거 말고 무엇도 풀어줄 수 없다. 굳건히 다짐해 보지만 요리를 하긴 너무 귀찮다.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삼각 김밥에 컵라면이나 먹을까하다가도 너무 억울하다. 내가 오늘 뺑이친게 얼만데! 나를 이렇게 대할 순 없어. 보상이 필요한 날이라고. 소중한 나의 위야. 장아. 이 언니가 곧 맛있는걸 대령하마.  버스 정류장으로 빠르게 걸어가면서 머릿속으론 30년 인생동안 먹어온 모든 데이터베이스를 돌린다. 일할 때보다 머리가 더 빨리 돌아가는 거 같아.   


이렇게 추운  날엔 따뜻한 사케 한잔 먹어서 몸 데워 주는게 딱인데. 사케, 사케라.. 역 앞에 있는 이자카야를 들렸다 갈까. 아니야 거기만 가면 만날 취하잖아 내일 또 아침부터 회의 있는데.. 안 돼. 좀 더 가벼운 거.. 와인이 좋을 것 같은데. 와인 한잔정도면 좋겠다. 거기다 뭐먹지?  


조금 진한 까베르네쇼비뇽이 먹고 싶단 생각까지 미치자 좀 자극적인 안주를 곁들이고 싶어졌다. 적당히 매콤하면서 와인의 맛을 해치지 않는.. 떡볶이? 이거다. 오늘은 와인에 떡볶이다. 좋아 좋아. 전쟁 중에 이동 경로를 결정한 장군처럼 진중히 혼자 주억거리면서 버스를 탄다.    


 야식으로 먹는 떡볶이는 배부르고 질감이 두꺼운 쌀떡보다는 미끈하고 양념이 쏙쏙 베인 밀떡이 낫겠지. 매콤한 맛을 와인이 중화시켜 줄꺼야. 벌써 혀 안으로 매콤함과 포도의 들쩍지근한 알코올이 혀를 감싸는 거 같다. 아 진짜 너무 배고프다. 


  밀떡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생긴 지 두 달도 안 된 집 앞의 떡볶이 집은 젊은 청년 둘이서 하는데 맛이 꽤 괜찮아서 열시에 닫는데도 그 전에 떡볶이가 떨어질 때가 많다. 회사에서 집까지는 버스로 십오 분. 막힐 시간은 아니지만 맘이 초조해 지는걸.   전 정류장부터 서가지고 벨을 누르고 기다린다. 역 바로 앞에 있는 떡볶이집을 목이 빠져라 본다. 여기서 부터 본다고 떡볶이가 남아있는게 보이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어서 오세요.”   


몇 번 왔었다고 알아보는 건지 인사를 하는데 슬쩍 아는 얼굴이시네요 반가워요 하는 표정으로 눈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웃지 마라 누나 괜히 설렌다.   인사를 하면서 먼저 떡볶이 통부터 쓱 봤다. 다행이 밀떡이 남아있다. 


 “밀 떡볶이로 일인분 주세요.” 

 “오늘은 쌀떡 안 섞으세요?” 

 “네? 네”  

 내가 그렇게 자주 왔나? 별걸 다 기억 하네 짜식이.  


사각 철판에 펼쳐진 떡볶이 옆으로 비닐이불을 포근히 덮고 있는 똬리를 튼 순대와 튀김이 날 유혹하지만 와인과 안 어울릴 거 같단 생각이 들자 그다지 당기지 않는다. 패스.  

 “4500원 입니다.”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여기 주문하신 거 나왔어요. 그리고  튀김 좀 넣었어요. 드시라고..” 

 “뭐지? 하나 샀는데 서비스라니. 끝날 무렵이라서 그런가?” 

 “네?” 

 “자주오시라고..” 

 말하면서 수줍게 웃는 떡볶이 청년. 뭐지. 여기서 그린라이트 외치면 나 정말 너무 굶주린 건거니. 하지만 떡볶이청년 수줍어 보이는데. 괜히 더 맑아 보이고. 귀엽다. 내 분홍색코트야. 

제값을 발휘하는 거니. 찌들어서 입술도 다 지워진 주제에 한번 던져 볼까 싶어서 머리를 쓸어 올리는데 

  “자기야!! 설거지 다했어 언른 마무리하구 가자~”  

뒤에서 귀엽게 생긴 여자애가 튀어나와서 팔짱을 낀다.   



그럼 그렇지. 설렘이 십초를 못 넘기네. 오늘도 혼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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