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스티미언: 쓰레기] 내 인생의 예쁜 쓰레기 이야기-시계와 블랙베리

in #busy6 years ago (edited)

예쁜 쓰레기 하나: 블랙베리 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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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나는 휴대폰으로 호작질 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가 내게 취미를 물어보면 '폰 사고팔기'라고 답할 때도 있었다. 몇 년 전 단통법이 통과된 후 모든 국민이 모든 폰을 비싸게 사게 된 시점에서 그 취미는 끊었지만, 한 때는 아무 의미없이 새 휴대폰을 사서 필름도 떼지 않은 채로 집에서만 두어달 갖고 놀다가 다시 팔아치우는 그런 취미가 있었다.


그 취미를 즐기던 어느 시기, 아이폰은 항상 비싼 폰이었으니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고 지금은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져버린 KT Tech, HTC, 팬텍 등에서 만든 폰과 삼성과 엘지의 보급형 폰들만 만지작 거렸다. 갤럭시 그랜드나 엘지 옵티머스 LTE 시리즈 같은 폰. 그러면서도 블랙베리 폰에는 눈독들이고 있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쿼티자판이 달린 폰은 어떨까에 대한 궁금증.


모델명도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 버스폰(버스 탑승 요금만 내면 살 수 있는 폰)으로 풀린 모델들을 검색해보니 아마도 9700이 아닐까 싶다. 상자를 개봉하고 손에 쥐었을 때 착 감기는 그립감에 매우 만족했다, 전원을 켜기 전까진... 쿼티 키보드를 누를 때의 쫀득쫀득한 느낌에도 매우 만족했다, 쓸만한 어플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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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블랙베리 볼드 9700과 9780



피처폰은 아닌데 스마트폰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한, 블랙베리를 제대로 쓰려면 기본요금에 더해서 BIS라는 부가 서비스를 이용해야했다. 아마 이용료가 월 5천원 가량 했던 것 같다. 폰에서 수신되는 모든 데이터(웹서핑이든 채팅이든 그게 뭐든간에)는 압축되고 암호화되어 캐나다의 블랙베리 서버에 들어갔다가 나와야하고 발신되는 데이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BIS 요금제는 일종의 암호화 서버 이용요금이었다.


폰 가운데의 네모난 트랙패드를 손가락으로 살살 굴려 마우스로 클릭하듯 꾹 누르면 어플이 실행되었다. 아마 화면 터치로는 작동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상자를 뜯을 때 외에는 한 순간도 만족하며 쓰지 못한 폰인데도 차마 키보드 누를 때의 부드러운 느낌에 중독되어 4, 5개월이나 썼다.


카카오톡이 블랙베리에 대한 업데이트를 중단한다고 선언한 후, 지도 어플도 없고, 터치액정도 아니고, 휴대폰의 절반밖에 안되는 액정으로 웹서핑을 해야 했던 블랙베리는 중고나라에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나갔다. 글을 쓰다가 기사를 몇 개 찾아보니 그로부터 얼마 후 블랙베리는 자체 OS를 버리고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하기 시작했고 결국 중국회사에 브랜드 이용, 제품 생산, 판매에 대한 권리를 넘기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다고 한다. 똑같은 과일폰인 사과는 아직 잘 나가는데, 불쌍한 흑딸기...



예쁜 쓰레기 둘: 세이코 프리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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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해외직구를 처음 시작하면서 재미들인 물건은 손목시계였다. 국내 정상가격 10~40만원짜리 시계를 5~15만원에 구매해서 주변에 선물로도 좀 뿌리고 나도 손목시계 서너개를 돌아가면서 손목에 올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집사람이 볼 땐, 싸구려 시계만 자꾸 사는걸로 보였나보다. 신혼여행을 앞두고 '당신도 비싼 시계 좀 사세요'라면서 내가 평소에 예쁘다고 했던 세이코 문페이즈를 인터넷 면세점에서 결제했다나 뭐라나.


매일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만 두들기는 일이 아니라서 시계에 흠집이 많이 나는 게 겁나서 그냥 10만원짜리 시계 계속 차고 다닐테니 그거 취소하라고 했더니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내 손목에 올라온 100만원짜리 시계는 내 상전 노릇을 톡톡히 한다. 쿼츠와 오토매틱의 장점을 모아서 배터리로 움직이긴 하지만 손목에 차고 움직이면 운동에너지가 시계에 전달되면서 충전도 된다고 한다. 사고 나서야 알았다, 둘의 장점을 모았다는 건 둘의 단점을 모았다는 말과 같다는 뜻이라는 걸.


오토매틱도 아닌 주제에 며칠간 관심을 주지 않으면 혼자 멈춰있다. 구매하고 몇년쯤 지나고 나니 배터리 효율이 떨어졌는지 낮에 실컷 걸어다녀도 다음날 아침에 확인해보면 시계가 멈춰있기도 했다. 이 물건을 예쁜 쓰레기 명단에 넣은 이유는 아래의 이유에서다.


'내가 왜 시계에게 시간을 알려주고 있지?'
일하다가 시계를 보려고 손목을 돌렸을 때 시계가 멈춰 있는 경우 다시 시간을 맞추며 떠오르는 의문.

'출근이 바빠 아침밥도 안 먹으면서 시계밥은 꼬박꼬박 주고 있는 내 신세...'
아침에 일어나서 본 시계가 멈춰있어 시계의 용두를 돌리며 시계를 충전할 때의 그 느낌.

'아 오늘도 이거 껴야지'
너댓개의 손목시계 중에서 뭘 착용할까 고민아닌 고민을 하다가 오늘도 이 놈을 차고 가지 않으면 내일 툴툴거리며 시계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시계를 끼면서 드는, 왠지 시계의 하인이 된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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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블랙베리 볼드 오랜만에 보내요
저도 한때 블랙베리 매니아...ㅎㅎ 블랙베리만의 매력은
사용해 본사람만이 알지 않을까요~ 물론 불편한점 또한 ㅎㅎ

저는 매니아까지는 되지 못했지만 타이핑할 때 참 좋았습니다. 생활앱이나 은행앱이 기본만 되었다면 욕하면서 계속 썼을지도 모르겠네요ㅎㅎㅎㅎ가끔 블랙베리 신제품이 나왔다고 하면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곤 합니다.

안녕하세요..

취향이 저랑 비슷하시네요 ㅋㅋㅋㅋ

예쁜쓰레기..저도 정말 좋아하는편입니다..

블랙베리 너무 쓰고싶지만..
현실적인 어플때문에 사용하지못하지만..
언젠가는 꼭 쓰고싶은 폰중에 하나에요..ㅋ

좋은하루 보내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이제는 안드로이드OS로 넘어왔다길래 다시 써볼까 생각했는데 성능에 비해 높은 가격에 좀 주저하게 되네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휴대폰 저도 초반에 나올때 얼마 안쓰고 바꾼 기록이 새록새록 나네요

당시에는 공짜폰 사서 서너달 쓴 다음에 중고로 판매하면 오히려 돈이 생기는 거짓말 같은 일이 자주 있었죠. 단통법이 아니었다면 베가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선물해주신 집사람분의 사랑이 부럽지만, 선물이란 것은 위험성이 너무 높은 투자 아니겠습니까, 시계에 대해 잘 모르셔서 비싼 쓰레기를 선물하시고 말았군요.

ㅋㅋㅋㅋ그 선물과 그 선물은 서로 다른 선물 아닌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블랙베리는 정말 예쁜쓰레기죠 ㅋㅋㅋㅋ

배터리가 오래 가는 것도 아니고, 어플이 다양한 것도 아니고.. 예쁜 것 외에는 모든 게 단점이었던 것 같습니다ㅎㅎ

단통법 시행되기 전에는 휴대폰 관련 빠삭한 친구 따라
버스도 타고 그랬던것 같은데 이제 옛날 이야기네요..

다시 오지 않을 옛이야기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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