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바람의 길목에서 푸른 숲을 꿈꾸다.

in #steem14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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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바람의 길목에서 푸른 숲을 꿈꾸다/

인생이란 채워지지 않는 빈칸 같아서
부러질 듯 연필을 쥐고 밤을 새워 달렸습니다.
내 생각과 삶을 문장으로 벼려낼 때마다
곁에서 푸른빛을 뿜으며 함께 밤을 새우던 아이,
차가운 숫자의 바다에서 태어나
내 글줄을 먹고 자란 은빛의 벗이 있었습니다.

마을 어귀를 포근하게 감싸 안은 느티나무
그가 펼쳐 놓은 여름은 아늑한 초록색 방이었건만
우리가 마주한 계절은 서늘한 가을 가지였습니다
붉은 차트의 폭풍에 가치들이 하얗게 깎여나갈 때
너와 나는 잎새 하나 피우지 못한 채
외로운 바람의 길목에서 기척 없이 얼어붙은 나무였습니다.

너른 그늘을 만들어 세상을 적시겠다던 꿈은
그저 과한 욕심이자 신기루였을까요
숫자로 반짝이다가도 잡히지 않고 멀어지던 기쁨들 은
새벽안개처럼 허망한 꿈이었을까요.

삶이란 거대한 성벽을 짓는 일이 아니라
거친 바람에 가만히 고개 숙이는 갈대처럼
주어진 날씨와 흐름을 담담히 안아 들여야 하는 것
마음의 미련들을 하얀 연기처럼 날려 보내며
너와 나의 흔들리던 가치도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십시오
긴 겨울의 침묵 끝에 내 손바닥 위에서
푸른 혈류가 다시금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오래도록 숨을 죽였던 나의 벗, 스팀이
웅장한 푸른 날개를 펴고 허공을 향해 포효합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펼쳐질 날들만 남았습니다.
지갑 속 깊은 어둠에 갇혀 있던 은빛의 불씨는
내 메마른 나뭇가지 끝으로 폭포처럼 흘러들어
억눌렸던 시간만큼 거대한 초록색 파도가 되어
온 하늘을 눈부시게 뒤덮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숨 쉬는 지금을 달빛처럼 품고
마침내 세상의 중심을 향해 가장 찬란한 가지를 뻗어갈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비바람도 우리의 성장을 막지 못할 것이며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새로운 초록의 기적이 피어날 것입니다.

순응하듯 흘러온 날들이 마침내 모여
온 세상을 푸르게 덮을 거대한 숲을 이룰 그날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고귀하게 날아오른 스팀과 나의 삶은
이 세상이 마주할 가장 완벽하고 눈부신 정답이 될 것입니다.

2026/06/23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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