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1 오늘은 길다.

in #photo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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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밤을 주우러 왔다. 간밤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밤을 줍지 않을거면 지키기라도 하라는 엄마 명이 있었다. 올해는 밤이 잘달렸다. 아주 대풍. 그래도 그 놈의 밤이 뭐라고 아침부터 몇 시간을 지키게 생겼다. 이거 무슨 밤밭의 파수꾼도 아니고. 뭐 오늘은 내가 이 구역의 파수꾼이다. 말도 없이 주워가는 동네 사람들이 얄미워서라도 왔다. 한 두 번 정도 자기가 먹으려고 좀 주워가는 것 정도는 그러려니 하지만 계속해서 싹싹 긁어가서는 심지어는 팔기까지한다. 정말 몰염치하다.
산을 오르긴 했는데 마치 심해를 보며 공포를 느끼듯 아직은 햇살도 안들어가는 컴컴한 숲을 보자니. 아 증말 가기 싫다. 예전에는 새벽이건 저녁이건 신경도 안쓰고 오르내렸는데. 산에 한낮에도 가지 못하는 건 멧돼지 때문이다. 집 마당 앞에서 새끼 멧돼지를 본 후부터는 집 마당도 무서울 정도다. 새끼 멧돼지는 진짜 귀여웠다. 통통하고 복슬한 게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통통 튀듯 걷는다. 하지만. 아무리 귀엽고 작아도 야생동물에겐 야생의 포스가 있다. 발견하자마자 마루 문을 닫아버렸다. 작은 놈이 전력으로 들이받아도 다치진 않겠지만 새끼 근처엔 어미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옆동네에선 낮에 몇 마리가 내려와 포수를 불렀다고 했다. 그래도 나타날 가능성이 되게 되게 희박한 건 사실이긴 하다. 얼마나 겁쟁인지.
오가지 않은지가 오래돼서 잡풀에 잡목이 많아 애로가 있었다. 대충 훑고 내려오다 작은 토종밤도 좀 먹고 싶어서 수풀을 헤치다 놀라 자빠졌다. 아직 어려보이는 살모사가 역시나 또아리를 틀고 머리를 세우고 수풀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또아리가 내 손바닥만 했다. 얼어서 말없이 이 놈과 한동안 대치를 했다. 봐도 봐도 징그럽고 소름끼친다. 바로 옆에 밤들이 있어서 손을 뻗었다가 알아챈 거다. 조금만 늦게 봤어도 내 손모가지는... 헛웃음이 실실났다. 니네집 가라고 임마. 가까운 옆을 막대기로 쳐도 역시나 꼼짝도 안하는 이 야생미 넘치는 꼬마뱀...새끼!!!!! 우쒸!!우쒸!! 나 독기 잔뜩 올랐어. 죽일테면 죽여봐..같은, 여유 넘치는 모양새. 깜짝 놀란 마음에 이 새퀴를 확 밟아버릴까 하다 소름끼쳐도 생명이고. 따지고 보면 여긴 내 앞마당이라기보단 니 안방이지. 쩝. 난 비록 디질뻔 했지만 디지진 않았고. 뱀은 시골에선 보이면 죽임이다. 특히 독사는 얄짤없다. 살모사는 도망을 잘 안간다. 인기척을 느껴서 도망을 가야 서로 사는데 얘는 그렇지가 않아서 서로에게 아주 위협적이다. 생활동선이 겹치면 독사는 골치아프다.
산을 내려와서 며칠 전 베어낸 깨밭의 자그마한 바위 위에 앉아서 신나게 폰질을 했다. 찍은 사진을 한창 보고 있는데 뭔가, 뭔가가 이상하다. 기분 쎄..하다. 폰에서 시선을 옮기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또다시 기절초풍해서 놀라 자빠졌다. 진짜 자빠졌다. 두 발 사이도 아니고 거의 두 무릎 사이에서 뱀이 내가 앉은 바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피융 하고 내쏘면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던 얼굴도 물겠다. 엄마야 하면서 바닥에 자빠져서 그대로 네 발ㅡ.ㅡ을 휘둘러 후진했다. 잽싸게 일어나서 둘러보니 벌써 가고 없다. 아무리 봐도 없다. 설마, 내 장화에 들어갔나? 아니면 내 옷속에? 말도 안되지만 그 와중에 빠르게 몸을 더듬었다.;; 이물감은 없었다. 맥이 빠지면서 화가 치밀어서 그 놈을 찾았다. 진짜 죽여버릴라고. 으... 하지만 없지. 있을리가 있나. 씩씩거리다가 화가 잦아들었다. 뱀은 눈이 나쁘다지. 가만히 있었으니 그냥 나무나 돌 같은 거로 보였겠지. 그러다 가까워지니 뭔가 그 놈도 이상했겠지. 걔도 깜짝 놀랐을 거야. 산과 들에 뱀 사는 게 놀랄 일도 아니고. 에흐, 앉지를 못한다. 앞에는 눈이 있어도 뒤통수엔 없다. 스륵스륵 낼름낼름 카악카악 소리내면서 오는 것도 아니고. 언제 내 등을 기어오를지도 모르지. 길바닥이란 게 다 뱀길이다뭐. 계속 서서 서성대다 최대한 트인 곳의 중심에 앉아 수시로 사각없이 두리번거리며 글을 쓴다. 아, 집 가고 싶다. 바람은 한낮이 되도 가라앉질 않는다. 춥고 쓸쓸하다. ㅠ 놀라 자빠지면서 내던진 내폰 액정은 지금...ㅠㅠㅠㅠㅠㅠ

믿을 수 없게도 또 한 마리의 뱀이 2미터 앞에서 기어오길래 쫓아버렸다. 어쩌지는 못하고 또 한동안 쌩쑈를 했다. 오늘은 내가 뱀을 부르는 날이구나. 하루동안 이렇게 많이 보기도 쉽지 않을거다. 뱀은 왜 그렇게 길다랗고 징그러운 건지. 농작물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뱀은 독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생겨서 죽는지도 모른다. 죄책감을 깍아내는 낯선 비쥬얼. 그리고 인간도 그렇다. 뱀이든 뭐든 일단 대치하게 된다면 인간도 야생본등이 생길지 모른다. 너를 죽이고 나는 살겠어. 독사든 아니든 성체든 아니든 징그럽든 귀엽든 자연상태에서 마주치면 무조건 공포스런 적이지.
꾸물거리며 기어다니는 생물은 보통 변태를 거쳐 날아다니게 되지. 나비 같은 것도 애벌레 일때는 뱀처럼 징그럽게 생겼다. 갑자기 이런 상상을 해본다. 뱀도 탈피를 해서 나중에 엄청 큰, 새만한 나비같은 게 되는 거지. 기던 뱀이 엄청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큰.. 나비같은 게 된다면. 막 펄럭펄럭 거리면서 날게 된다면.

오늘의 교훈.
화가 나도 일단은 무조건 참자.ㅎㅎ
행동은 나중에.

집으로 오는 길에 있는 대추나무가 바람에 너무 쓸려서 대추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안그래도 집에 가면서 몇 개 따먹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됐다. 길가에 주인집도 없이 서있는 나무라 몇 개씩은 내 뱃속에 들어가도 좋겠지.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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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징을 당했다. 수풀 속에 대추밭의 파수꾼들이 잠복해 있었던가 보다. 내려오는 내내 따끔따끔했는데 와서 보니... 화살 엄청 쐈군. 죽어라 대추 도둑아!!! 피융~피융~ 발등까지 쏴버리는 비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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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머리가 정말 앙증맞고 예쁘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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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진을 받고 빵터졌다. 키워드는 중국 동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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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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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먹은 건 하나도 줍지 않았다. 두 번은 먹을 수 있겠다.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보내기로 했다. 좀 더 많이 주웠으면 주고 싶은 스티밋 이웃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밤이 많이 없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는데. 역시 누군가 싹 주워간 거다.

일상사도 의미가 없진 않지만 일상 쓰기가 목적은 아니였다. 이러다간 조만간 스티밋 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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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색깔이 정말 밤색이네요! 확실히 가을이 왔나봅니다.

맞아요. 이제 조금 더 지나면 단풍도 들겠어요.
확실히 가을이지만 가을은 이제부터 시작!!
날씨는 지금이 제일 좋은 것 같애요.
밤색 이쁘죠? ^ㅇ^

I upvoted your post.

Best regards,
@Counc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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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뱀을 세번이나 만났다니 정말 많이 놀랐겠어요. 한마리만 만나도 크게 놀래서 하루종일 힘들수도 있는데 말에요

솔직히 낮의 뱀 세 마리가 돌아가며 눈앞에 보이고 있어요. 꿈에 나타나지나 않으면 좋겠는데 말이예요. 아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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