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시] 추모의 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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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 앉아
장작 하나를 불에 먹인다

튀는 불똥들이 춤을 춘다
벌레의 노래에 춤을 춘다
그림자는 모두 둥글게 손을 맞잡고 있다

하얀 불에는 길이 있다
사라진 얼굴들이 찾아오는 길
잊힌 이름들이 찾아오는 길

사라지고 잊힌
그들은 유성처럼 빛나는 몸으로
불가에 둥글게 차례로 앉는다

나는 그들 안에서
나의 사랑했던 이들
차에 치였던 그 사람
병으로 앓았던 그 사람
술에 죽었던 그 사람
그리운 얼굴들을 찾아본다

그러나 하얀 그들의 얼굴을
나는 어느 하나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나를 보며 그들은 웃음을 띤다

나는 먹먹해진다
나도 이미 잊었구나
내게도 이미 사라져 있었구나

사라지고 잊힌
그들도 이미 잊어버린 듯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들의 원 안에 나를 채운다

유성처럼 빛나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잊어가기에 사라져 가기에
사랑은 추모가 된다
흔적을 간직하는 추모가 된다

나는 그들을 위해
불에 장작 하나를 더 먹인다

하얀 그들은 천천히
그리고 다정하게
내 등을 쓸어내려준다

잊는 일도 사라지는 일도
나쁜 것이 아닌
다만 살아가는 일
죽음에 가까운 것이 아닌
삶에 가까운 일

그들의 손길은 다정해서
그들의 목소리는 다정해서
나는 이 밤이 잠시만 영원에 있기를 바라본다
불똥의 춤과 벌레의 노래가
이 밤 그들의 위로가
잠시만 영원에 있기를 소원해본다


저 또한 겪었던
사랑하는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낸,
또한 사랑하는 이들을 잊어가는 일에
아프고 아픈 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부족한 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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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살아가는 일..
차분히 시 감상해보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 되시길 바랄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ip2yo님도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최근에 부모님께서 편찮으시면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이별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 아닐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추억이 있기에 이별도 슬픈 것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좋은 시 감사합니다.

사랑했던 만큼 이별은 더 크고 아프게 다가온다는게 늘 마음 아픕니다..
그래도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하겠죠
@edumaster님의 부모님이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이 밤 제 부족한 시가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부족한 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에 있는 그들만은 영원이길.

오래된 이름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밤이네요
부족한 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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