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못쓴] 살인자를 보았다
살인자의 얼굴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김학봉(당시 61세)은 2016년 5월 29일 오전 5시 30분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서 60대 여성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그는 사건 당일 오후 6시 30분쯤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나흘 뒤 김을 데리고 현장검증 했다. 나는 그때 거기 있었다. 거기서 김의 맨얼굴을 봤다. 경찰은 전날 김의 실명을 공개하고 김의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겼다.
김은 쌍꺼풀이 짙었다. 눈동자 색이 옅어 눈빛이 흐렸다. 눈과 눈 사이가 멀었다. 치열이 제멋대로였다. 윗니와 아랫니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키는 170cm 언저리였다. 체중이 90kg은 돼 보였다. 몸통이 두툼했고 어깨가 벌어졌다.
얼굴에 살인자라고 쓰여있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김의 얼굴은 길거리에서 무심코 지나칠 만한 얼굴이었다.
김은 오전 9시 수락산에 도착했다. 경찰 50여 명이 김을 사방으로 에워쌌다. 경찰과 김은 살해 장면을 재현하려고 산을 올랐다.
산 중턱 쯤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남성이 대열을 가로막았다. 그가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가 내 와이프를 죽였다. 사형시켜라.”
그는 자신이 피해자의 남편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같은 말을 5분쯤 반복하다가 길이 1.5m쯤 되는 굵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김에게 달려들었다. 경찰 십수명이 남편을 막았다. 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김은 9시 45분쯤 범행을 저질렀던 지점에 도착했다. 나는 대열에 바짝 따라붙었다. 피해자의 남편과 딸, 친지는 경찰통제선 밖에서 소리내어 울었다.
경찰은 살인을 재현하는 장면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터덜터덜 걸어서 하산했다. 경찰은 김이 담담하게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급히 200자 원고지 4장짜리 현장검증 기사를 송고했다. 이날 오후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했다. 기사가 3장으로 쪼그라들었다. 기사를 줄여 다시 보냈다. 지면에 여유가 없었다. 기사가 빠졌다.
야근하고 집에 가니 오후 11시 30분이었다. 아들은 우리 부부가 쓰는 큰 침대를 독차지한 채 자고 있었다. 아들 옆에 5분쯤 가만히 누워 있었다. 아내가 들어왔다. 아들의 볼에 뽀뽀하고 거실로 나가 혼자 맥주를 마셨다.
[차못쓴]은 차마 쓰지 못한 이야기, 차마 기사화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Cheer Up!
I gave you some lovin How bout you give me some too?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찹찹하셨겠네요. ㅠ
예...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었습니다.
이런 일이 참 많습니다. 마음에 묻어둘 수도 없고, 글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무겁습니다. 옛날 이글루스에서, 지금은 딴지에서 글을 쓰시던 산하님이 문득 생각나는군요.
예 흉흉한 일이 참 많습니다... 산하님을 알지 못하는데 한번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http://nasanha.egloos.com/m/ 입니다
감사합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풍선을 타고 날아가기전에 꿈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합니다.
지면에 여유가 없었다.. 더이상 할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같은 마음 이셨겠죠? 마음이 무겁습니다.
일선에서 느끼는 것과 위에서 보는 것에는 조금 차이가 있더라고요. 늘 어느쪽이 옳고 어느쪽이 그른 것은 아니어서 더 어렵습니다:
(차마 쓰지 못한)기사의 이면의 이면을 본 것 같네요...
냉정하게 보려고 노력하지만, 사람인지라 잘 안 되더라고요.
신문에 이렇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제 퇴직 전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소설한편 보는줄 알았습니다.
사실적이네요.
살인자의 얼굴 또한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들 하던데...
충격이 크셨겠어요 ㅠㅠ
맞습니다. 그게 가장 소름끼치는 부분이었어요.
하 ..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가 .. 기사에서는 사라질 수도 있는 .. ㅠㅠ
예. 사건기자를 하다보면 누군가의 죽음에 둔감해지게 됩니다.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일인데 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별로 좋은 직업이 아닌 거 같아요.
하드보일드하네요. 초반 인물 묘사 여덟 문장은 베껴가서 두고두고 공부하겠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치열이 제멋대로였다."에 저도 모르게 지렸습니다.
형용사를 쓰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아직 갈길이 멉니다. 좋게 말씀해주시니 황송하고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