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ZZAN 문학상 응모작] 소설 - [재하와 여름]
제 1회 ZZAN 문학상 응모작
[재하와 여름]
아직도 나는 더위가 짙어지면 그날의 여행을, 그때의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한 감정을 떠올리곤 한다.
당시 나의 삶은 바닥도 없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손을 뻗어 잡을만한 무언가도, 뚜렷한 저지선도 없이 내리막으로 쏟아지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모습을 스스로 긍정했다는 것인데, 그때 나는 하는 것도 없이 인생을 낭비하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처럼 떠벌리고 다녔다.
그 무렵 나는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체력 저하도 함께 찾아왔다.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은 우울증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 모든 것을 그간 인생을 너무 착실히 살아온 것에 대한 참혹한 대가라고 여겼다. 해소되지 않은 채로 들끓던 대상 없는 분노와 그와는 반대되는 형태로 나타나던 삶을 향한 의지. 그것이 미약하게나마 그때의 나를 설명하는 말이다.
8월의 뜨거운 여름날, 나는 모두가 잊은 나의 3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점점 숨을 조여오는 퀘퀘한 방의 습기와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포부는 거창했지만 살림은 초라했다. 몇 달째 수입 없이 모아둔 돈으로 겨우 일상을 연명해가던 중이었다. 여행이라곤 했지만, 당장의 교통비마저 부담스러운 실정이었으므로 여행지는 지하철이 닿는 곳으로 한정되었다.
정작 생일날은 움직이지 못했다. 고대하던 디데이가 되자 그 모든 것이 유치하고 우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생일이라니. 그렇다면 나도 외면하겠어. 심술이 나 방 안에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오후쯤 엄마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마음대로 나를 낳아버린, 그러고선 책임도 지지 않는 엄마가 미웠다.
나는 언제까지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사람들의 대화 소리, 청소기 소리, 차 시동 거는 소리, 금속의 파열음과 같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기습적으로 찾아오던 정적과 그럴 때마다 유독 크게 들리던 내 숨소리. 근원을 알 수 없는 온갖 소리가 교대로 때로는 교차하며 어두운 방을 채웠다. 나는 몸에 힘을 뺀 채 소리에 짓눌려 있었다. 도시의 무게가 나를 깔아 뭉개주길, 그래서 더는 아무 존재도 아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며칠 오던 비가 개고 창문 사이로 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미뤘던 여행을 떠날 때였다. 신속하게 몸을 세워 거울을 봤다. 묘한 인간이 서 있었다. 얼마간 나를 바라보다 씻고, 새 옷을 꺼내 입었다. 지갑과 휴대폰만 챙겨 집 밖을 나섰다. 긴 여정이 될 것 같아 차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행선지는 근교에 있는 한 공원이었다. 지하철이 닿으면서도 여행의 느낌이 들만한 장소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열심히 찾을 의욕도 없었다. 자연스레 몇 년 전 같은 이유로 당시 사귀던 남자애와 갔던, 그 공원을 떠올리게 됐다.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두시간 반을 꼬박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오랜만에 탄 지하철은 낯설었다. 평소라면 답답하게 느꼈을 특유의 꿉꿉한 공기도 반가웠다. 열차 안은 한산했다. 책을 읽고, 졸고, 휴대폰을 보고, 환승하고, 사람을 구경하고, 그러다가도 지루해 지하철 칸 사이를 여러 번 오가고서야 노선의 끝인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을 나오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미 날이 맑게 개어있었다. 공기를 여러 번 크게 들이마셨다.
공원은 한산했다. 전에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개발 사업에 선정돼 대규모 공사를 진행했다는 공고가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휑하던 공원은 인위적인 조형물로 채워져 있었다.
조형물을 지날 때마다 그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자연스레 같이 왔던 전 애인이 생각났다. 우리도 사진을 찍었던가?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와는 오래 만났지만, 늘 나만 애쓰는 관계였다. 어느 날 그는 이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며 이별을 고했다. 어차피 사랑한 적도 없지 않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냥 알았다고 했다. 그 짧은 대화로 3년의 연애가 끝났다.
그래도 같이 이곳을 걸었을 때만 해도 손을 잡을 정도의 친밀감이 우리에게 남아있었다. 몇 년 전의 그와 내 모습이 낡은 구조물처럼 공원 곳곳에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갑자기 입안이 비릿해졌다.
공원을 걷다 보니 인적이 드문 곳이 나왔다. 호수가 보이는 풀밭이었다. 해가 환하게 들면서도 곳곳에 나무 그늘이 있었다. 물 가까이엔 울창하게 늘어진 수양버들이 있었다. 그 흔들리는 모양새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깐 쉬고 가기로 했다.
그대로 풀밭에 누워 잠깐 잠이 들었던 내 시선에 한 남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태연한 얼굴로 “밥 같이 먹을래요?”라고 물었다. 몸을 일으켜 세우니 그의 손에 들린 도시락 통과 그 뒤로 풀밭에 깔린 노란색 돗자리가 보였다. 놀란 마음과는 다르게, 입에서는 태연한 대답이 나왔다.
“응. 배고파.”
그 남자의 이름은 재하였다. 재하는 나보다 두 살 어렸다. 직업은 인터넷 설치 기사. 평소에도 월차를 내고 종종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같이 먹기로 한 친구가 늦게 오기로 해 음식이 남아 내게 말을 걸었다고 했다.
알록달록한 도시락에는 평범한 반찬이 들어있었다. 계란말이, 소시지, 시금치, 흰밥, 불고기.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싱거운 간이 좋았다. 적당히 식은 밥에선 단맛이 났다. 일순 혼자의 외로운 여행이 소풍이 되었다.
밥을 먹고 함께 누워 음악을 들었다. 재하의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기타 반주에 맞춰 나른하게 노래를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재하는 익숙한 듯 멜로디를 가볍게 흥얼거렸다. 나는 노래도 모르면서 같이 작게 흥얼거렸다.
재하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계속 말을 걸었다. 아주 시시한 질문들을 했다. 계란말이는 언제 한 건지, 친구는 언제 오는지, 인터넷 기사면 컴퓨터도 잘하는지, 휴일에 다른 곳을 갈 때도 있는지. 질문을 멈추면 우리 사이엔 바람 소리가 스쳤다.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편안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이곳을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 재하는 귀를 비우기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다시 사람들의 말을 채울 준비가 된다고 했다. 재하는 평소에 어떤 이들의 말로 자신을 채워가고 있는 걸까. 문득 옆에 누워있는 재하가 멀게 느껴졌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질문을 멈추고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재하는 얼마간 더 누워있다 주변을 걸어 다녔다. 내 시야엔 재하가 없었지만 재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반 정도 읽었을 때쯤 재하가 돌아왔다. 옆에는 어린 남자애가 함께 있었다. 이름은 윤거호. 내가 먹은 도시락의 원래 주인이었다. 거호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거호의 부모님은 이 근처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었다. 가게가 심심해 나와서 놀다가 재하를 알게 됐다고 했다. 기묘했다. 어른과 아이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거호에게도 재하가 먼저 말을 걸었을까?
어린아이와 직접 이야기해보는 게 처음이었다. 나를 이모라고 소개해야 할지 어떤 말로 대화를 이끌어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어린 생명체와 한 공간에 있는 게 불편했다. 재하와의 시간을 방해받는다 여겼지만, 따지고 보면 둘 사이에 끼어든 것은 나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 모를 서글픔과 함께 자리를 일어나려는 찰나 거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누나도 편의점 갈래?”
“거긴 왜 가는데?”
“그냥 놀러. 형이랑 가기로 했는데 형이 누나한테도 물어보자고 했어.”
“둘이서 다녀와.”
“누나는 편의점 싫어해?”
“응. 난 여기 있을게.”
대답을 마치고 고개를 드니 재하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투명한 눈동자에 내 모습이 보일 것 같았다. 부끄러웠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녀올게요.”
재하와 거호가 떠난 자리엔 바람이 불어왔다.
호수는 고요했다. 이 순간을 담고 싶었다. 책을 덮고 수첩을 꺼냈다. 펜이 없어 엄마가 준 만년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풍경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그린 그림과 눈 앞의 풍경은 너무 달랐다. 수첩을 덮고 사진처럼 찍어두기로 했다. 나는 삼각대에 고정된 카메라처럼 지치지도 않고 오래 호수를 바라보았다.
주변이 서서히 주황빛으로 물들어갈 때쯤 멀리서 재하와 거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양손에 비닐봉지를 쥔 거호가 보였다. 둘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쉴 새 없이 크게 웃었다. 점점 둘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졌다. 나와 눈이 마주친 거호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나도 같이 손을 흔들었다.
거호는 돗자리 위에 과자를 꺼내며 하나하나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네모난 과자에 화려한 동물이 그려져 있는 과자를 가리키며 새로 나왔는데 구하기가 힘들어 먼 편의점까지 다녀왔다고 말했다.
“형. 이거 사길 잘했다. 엄청 맛있어.”
“근데 2,000원은 좀 비싸지 않아?”
“맞아. 차라리 빵 사는 게 낫긴 해.”
“다음엔 그것도 사보자.”
둘 사이에는 격의가 없었다. 나이 차이라는 것도 없이 서로에게 제일 가까운 친구로 보였다. 돗자리 위에 펼쳐진 과자들을 보니 식욕이 들었다.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과자를 종류별로 먹었다. 어느새 나도 그들과 함께 얘기하고,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 장난을 쳤다. 우리는 웃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한참을 웃었다.
그때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문득 울고 싶어졌다. 나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 순간의 풍경과 빛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 애썼다.
“누나. 다음엔 누나도 같이 가.”
“응. 그러자.”
나는 바람에 찰랑거리는 거호의 머리칼을 손으로 헝클어뜨렸다.
거호는 7시 까지 돌아가야 했다. 우리는 거호를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가게 앞까지 바래다줬다. 거호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헤어지기 싫어 미적거렸다. 몇 번이나 다음에 만나서 놀 것에 대해 얘기하고서야 겨우 아쉬운 듯 발걸음을 뗐다. 거호의 손에는 아까 남은 과자 몇 개가 들려있었다.
거호를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동안 주변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거호가 떠나고 둘 사이에 처음으로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재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멀리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은한 여름의 풀냄새가 나는 듯했다.
얼마쯤 길을 걷다 내게 입을 뗐다.
“아빠가 많이 아파. 아픈지는 꽤 됐어. 왜 아픈지 이해할 수가 없어. 맘대로 아파 버리니 화가 나.”
재하는 말이 없었다.
“엄마는 아빠만 보며 살았어. 엄마는 아빠 걱정뿐이야, 아빠는 자기 걱정뿐이고. 늘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그 뒤처리는 항상 엄마가 해왔어. 늙어가면서 이제야 좀 변하나 했더니 갑자기 얼마 못 산대. 나는 엄마가 먼저 죽기를 바랐어. 엄마 없는 아빠 모습이 보고 싶었거든. 꼴 좋다. 엄마가 얼마나 당신에게 잘했는지 알겠죠? 라고 묻고 싶었어. 그런데 끝까지 이기적이야. 맨날 병원에 누워있으면서도 병원비가 얼마인지 관심도 없을걸. 집에 가고 싶다고만 난리지. 난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 엄마처럼 사는 건 더 싫고.”
말을 하다보니 내 안에 있는 응어리가 느껴졌다. 감정이 주체되지 않았다. 말을 멈추고 보폭을 키워 걸었다. 재하는 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렇게 우리는 풀밭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주위는 캄캄해져 있었다. 소풍은 끝났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너는 집에 어떻게 가?”
“차가 있어요.”
차가 있구나. 정적이 흘렀다.
“데려다줄까요?”
“아냐. 너도 피곤할 텐데.”
재하와 나는 돗자리를 챙겨 공원 정문으로 걸었다. 문을 나서자 바로 역이 나왔다. 재하는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이 나오질 않았다. 8월의 달빛 아래 우리는 그대로 멈춰있었다.
역으로 발을 떼는 순간 재하가 나를 안았다. 나도 머뭇거리며 재하를 안았다. 재하의 품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잠시나마 몸의 긴장이 풀렸다. 소리 내 울고 싶어졌다. 재하는 나를 더 힘주어 안았다. 나도 어색하게 두던 두 팔로 재하를 더 꽉 안았다. 그것을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집으로 향하는 전철이 출발하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재하를 사랑했다는 걸. 당장이라도 재하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재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만약 재하에게 번호를 물어봤다면 재하는 바로 말해주었을 것이다. 아무 때나, 늦은 시간에 제멋대로 전화를 걸어도 재하는 언제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묻지 않았다.
어쩌면, 거호를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거호를 찾아가 재하형이 언제 오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소식을 거호에게 남기고 올 수도 있고, 그럼 어쩌면 다시 거호와 재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거호와 함께 놀며 그날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날의 기억은 내게 완벽했으므로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짧은 삶 동안 가질 수 있던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하루도 빠짐없이 재하를 떠올렸다. 처음 마주쳤던 때의 얼굴, 하얗고 가늘던 손가락과 둥그런 곡선을 가진 눈매, 그렇게 하나하나 재하를 떠올리다 보면 그 끝은 언제나 해 질 무렵 과자와 함께 부서지던 우리 셋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날 내가 느낀 감정의 홍수는 무엇이었을까. 그때 우리에게 와닿은 빛은 무엇이었을까. 일순 마음에 비친 노을과 그 위로 쏟아지던 날 것의 언어들. 서툰 감정의 범람.
그날을 생각한다. 그날의 나를 생각한다. 재하를 생각한다. 거호를 생각한다. 그날 우리를 감쌌던 여름날의 빛을 나는 언제까지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ab7b13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지금 당장 가서 연락해!!! 그리고 지지고 볶고 그렇게 사랑해!!"하고 싶어요...
오오.... 정말 멋진 작품 읽었어요.
글쓰기에 내공이 느껴집니다. 엄지척!!
짧은 시간 인생에 가장 행복한 감정이었겠어요.
마지막이 아쉽고...애잔하고...ㅠㅠ
그러나 추억이 있기에 또 힘내서 하루를 보냈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