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4 석병산]놓쳐 버린다, 미쳐 버린다

in AVLE 일상15 days ago (edited)

석병산은

놓쳐 버린다, 놓아 버린다
구름역에서 이미 기차가 지나갈 때
사랑을, 눈물을, 슬픔을, 아픔을
딛고 멍해지다, 울부짖다, 쓰러지다 돌아선다
찾아간 산모롱에서 이미 꽃들이 지고 있을 때
이별을, 눈물을, 슬픔을, 아픔을
딛고 쳐다본다, 눈물짖다, 웃다가 미쳐버린다

가진 걸 놓쳐 버릴 때
후회할 틈도 없이 다 놓아 버릴 때
산은 더 이상 미칠 수가 없어서
이를 악문다, 걷는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게 된다

밤잠을 설칠 때
날로 수척해질 때
자다가도 한 밤 중 일어나 골짜기 헤메다 쓰러졌을 때
그 사실조차 까마득히 모른 채 쓰러진 자리에서 눈 떴을 때
눈물 자국 마르기도 전에
석병산은 우뚝 서야 했다
바람처럼 떠돌아야 했던, 아파야 했던
가엾은 자들을 대신해서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저 산은

지나온 모든 후회를, 원망을, 눈물을
아무런 변명없이 놓쳐 버린다, 놓아버린다
새벽 산 안개 걷히는 먼 산 마주하며
맑은 공기 햇빛 한 줌에 묻은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에
실려간다, 다 잊어버린다, 미쳐 버린다
깊은 밤, 사나운 밤에도 도망치지 않고
날 밝아오기 전부터 늘 그 자리에 우뚝 선다

2024-05-13, 백두대간 정선 석병산 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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