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in #zzing4 years ago

잠들기 전, '새벽 4시에 일어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잠든 지 꼬박 3일 만에 처음으로 내 몸이 알아서 깼다. 항상 잠들기 전 일기를 썼더니 엉망진창이라, 자고 나서 일기를 쓰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밤에 꿨던 꿈은 잠들기 전 잠시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만큼 신선한 충격의 내용들이었다. 아마도 지금 잠깐 이야기를 써보자면 쓸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의 나의 이미지와 실제 사회적 위치를 고려할 때 썩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글이 아니기에.

1년 전쯤에 실험적으로 내가 고등학교 때 한참 기괴하고 신기한 이야기에 빠져 있던 당시에 썼던 싸이월드 일기 중에 한 부분을 긁어서 포스팅한 적이 있었다. 역시나 좋은 반응을 불러오지 못했고, 나의 세컨드 아이디로 적었던 일종의 오싹한 체험 이야기도 내 글을 자주 봐주던 두 이웃분들의 반응으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일상적인데도 그 속에 뭔가 조미료처럼 뿌려진 철학적인 글을 상당히 선호하고, 매일 같이 먹어대는 동물의 몸의 일부분이 내게 오는 과정은 관심 없지만, 같은 생물인 인간의 몸에 관해서라면 기겁을 하며, 총과 칼의 힘으로도 없앨 수 없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라면 일단은 긴장부터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쓰면 나는 인간이 느끼는 모든 걸 초월한 듯한 느낌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보다도 심령적인 것을 무서워하고, 피만 봐도 질겁하며, 소소한 글 속에 있는 뜻깊은 철학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내가 느끼고 체험한 바에 대해서 글을 쓸 때 우악스럽게 눈을 돌리고 싶은 그 부분만 열심히 묘사한 덕분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최대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 글을 썼는데 <페스트>라는 책은 나의 생각을 뒤바꿔놓았다. 충분히 소름 끼치고 끔찍한 책이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힌 가운데 이 책을 읽는 나는 독자가 되어 질병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의 심정을 낱알만큼이라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많은 소설들은 나보다 더 했으면 했지 덜 하지 않은데. 이야기에 사람들이 빠져들게 하는 그 부분이 부족했던 것 같다. 산도 아래에서부터 위로 걸어 올라가야 내 노력에 무릎을 탁 치면서 희열을 느끼며 정상을 보는 법. 그런 점에서 작가 알베르 카뮈는 참으로 신사적인 안내자 같다.

어쩌다 보니 잠들기 전 휴대폰으로 읽는 e-book이라 100쪽씩 읽는 것이 한계다. 그 이상 읽으려 해봤지만 그 시간쯤 되면 알아서 눈이 감겨 어쩔 수 없다. 사나흘은 더 읽어야 완독할 것 같다. 다 읽고 나서 힘이 난다면 리뷰도 써보고 싶다. 오늘도 내가 꿨던 꿈 이야기는 표현능력의 부족으로 잊혀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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