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일상] 난 왜 이렇게 됐지?

in #zzan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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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저 화분 다시 셌어요. 52개에요. ”

어제 우리집에 놀러온 조카 다애의 말이다. 맞다. 난 자칭 미니멀리스트. 미니멀을 지향한다. 하지만 우리집, 아니 엄마집은 미니멀이 아니다. 내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립해 혼자 살기를 4년, 이제 다시 엄마와 산지는 1년이 되어간다. 나는 음식도 적당히 하지 못하고, 화분도 적당히 사지 못하는 사랑스러운 엄마와 산다.

“ 우리 엄마가 디게 착했는데 왜 이렇게 됐지? ”

이 말은 얼마전 친구의 5살짜리 아들이 한 말이다. 친구가 아침에 유치원에 보낼 아들에게 빨리 바지 입어! 라고 소리치니 아이가 이렇게 말해서 놀랐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내 친구도 좀 변했다. 내 친구, 왜 이렇게 됐지? : )

난 왜 이렇게 됐지? 나는 어쩌다 미니멀을 추구하게 되었나. 생각해보면 이렇다. 오래 사귀어 결혼까지 약속한 남자친구와 함께 쓸 생각으로 독립 후 물건들을 사들였다. 퀸사이즈 침대, 10자 장롱, 양문냉장고 등등. 계확한 바와는 다르게 헤어진 이후엔, 허한 마음 때문일까 혼자서도 잘 살겠다고 리클라이너 3인용 소파, 새 세탁기, 내 생애 첫 자전거(사월이)까지 샀다.

계속 혼자 살지, 아니면 본가로 돌아가 엄마와 살지를 고민하던 시기에 난 내가 가진 물건들이 짐처럼 느껴졌다. 이 물건들을 가지고 본가로 돌아가기엔 본가는 20평 남짓한 넓지 않은 집이다. 결국엔 혼자 살기로 결심하고 그 이후로도 2년 넘게 혼자 잘 살았다. 그때 난 그가 사준 많은 옷들을 버렸다. 비싼 옷은 아니었지만 소중히 생각하고 못버렸던 옷들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정리된 듯했다. 그가 써준 편지도 꽤 많았지만 마음 먹고 버리니 그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물건들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 게 아마 2번째 전환점.

첫번째 전환점은 2010년 초쯤. 한때 열심히 사 모았지만 계속 보관만 하던 비디오테이프를 버리는 게 시작이었다. (아 옛날사람...) 오래된 영화잡지, 영화 관련 책, 많지는 않지만 갖고만 있던 책과 CD 등등. 버릴 건 버리고, 팔 수 있는 건 알라딘 중고서점을 이용해 대부분 처리했다. 수중에 생긴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사먹는 게 더 가치있는 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첫번째, 두번째 전환점을 계기로 조금씩 변화한 나. 예전에 난 프링글스 과자통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통이 뭔가 예뻐보이기도 하고 그걸 모아두면 나중에 재활용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거다. 그것들도 아마 비디오테이프 버리던 시기 즈음 버렸던 것 같다.

퇴근길. 어서 집에 가서 그걸 버려야지, 하는 마음에 설레여서 집으로 향한 적도 있었다. 버리면서 느끼는 쾌감과 버린 후에도 아무런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는 걸 깨달으면 스스로 참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혼자 사는 집엔 정말 좋아하는 것, 소중한 것들만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그 공간이 더 좋아졌다. 버리고 나서 비워진, 텅 빈 공간의 여유도 참 좋았다. 아, 이런 게 미니멀리즘인가 싶었다.

그리고 다시 현재. 아까 말했듯, 나는 엄마와 다시 산다. 엄마도 미니멀하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는 물건을 쟁여놓는 걸 좋아하시고, 화분도 자꾸만 사들인다. 조금?은 스트레스를 받지만 어쩌겠는가. 내방만이라도 미니멀하고 싶어서 오늘도 조금 비워냈다.

최근 잘한 일 중 하나는, 퀸사이즈 침대를 중고로 팔고 얻은 넓어진 공간이다. 나는 지금 우리 조카들이 썼던, 우리 언니가 준 알집매트를 깔고 거기에 엎드려 이 글을 쓰고 있다. 3개월 정도 써보니 알집매트도 괜찮다. 접어놓으면 소파처럼 앉을 수도 있다. 다만 아쉬운 건 알록달록 색깔. 이 매트가 더 낡아지면 그때는 내 마음에 드는 색깔의 매트 혹은 매트리스 역할을 하는 물건을 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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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다큐에서 봤다.

사람은 사랑하고 물건은 사용해요. 그 반대는 소용없으니까요.

심히 공감된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래서 또 잘한 일 하나는, 소중히 모아둔 차마 버리지 못했던 영화음악 테이프를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했다는 것. 다행히도 기쁘게 받아줘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래서 나는 위나잇 처돌이.

결국 또 이렇게 마무리되는 일기라니. 어쩔 수 없는 위아더나잇 거북이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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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도 왜 이렇게 됐을까요.
항상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삶을 즐길 줄 알았는데
요즘은 미움이 가득해요. 미움은 나를 갉아먹으니까
어여 어여 미움을 처분하고 빈 방에 좋아하는 것들을
들여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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