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라이프] #11 선물을 받았어요 (염장용)

in #zzan4 years ago (edited)

미라로 산다는 건 사실 많은 거절과 사양의 연속입니다.
공병 그리고 헌책
을 통해 집에 오는 손님들께 공지를 할만큼 미리 확실하게 방어를 해두지 않으면, '그래도 빈손으로 어떻게 가냐'하며 뭘 사들고 오기 시작하면 모든게 끝입니다. 다시 제 계획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것들을 누군가에게 주거나 팔거나, 빠른 속도로 소진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그 풍족한 과정은 상당히 달콤한 유혹의 과정이기도 하죠.

또 출발자체가 물건에 대한 욕심에서 반작용으로 시작되었던 저의 경우라… 갖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의 차이를 구분하는게 쉽지가 않습니다. 퇴근 후 혼자 마트에 가서 새로나온 물건들을 구경하는게 큰 일상의 낙이라… 보면서 이건 갖고 싶지만 내게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라고 스스로에게 가르치며 조금씩 욕심을 줄이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확실히 필요한 물건인데, 내 미라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경우예요. 그럼 이 것 보다 더 작고, 더 중고가치가 높아 처분하기 쉽고, 더 좋은 물건이 있을거라고 자신을 설득합니다. 물론 이런 고민이 불필요한 물건 여러개가 아니라 딱 필요한 것 중에서도 더 고퀄의 물건을 선택할 수 있게는 해줍니다. 하지만 꼭 필요해 지는 순간 마다, '그냥 살걸 그랬나', '오늘 가서 살까' 요런 고민을 또 하게 만들죠. 행복한 고민이라고. 그게 나름 사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최근 제가 필요했지만 고민중이었던 물건은 향초와 커피 드리퍼였답니다. 혼자 사는 독거남 방에 홀애비 냄새가 유달리 많이 나서 환기만으로는 부족하고 향긋함이 필요했거든요. 향초가 안전하고 또 운치도 있는 아이템이잖아요.

몇 달 전에 올렸던 제 발명품 포스팅
캔들 모기향 디스펜서
을 보신 분들은 아셨겠지만, 방콕에선 방에 캔들을 쓰면서 만족했습니다만, 사실 향초를 샀는데 저랑 안맞는 향을 사서 한 번 태우고는 어딘가에 쳐박아 두고 말았죠. 그리고 작은 향초를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 향이 너무 좋아서 향초를 살까말까 다시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전시된 상품의 향만 맡아보면서 말이죠. 내가 골라서 실패했던 기억이 있어서 말이죠.

커피는 캡슐커피머신을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특히 주변에서 샤오미 머신을 많이들 구매하셔서 많이 끌리더군요. 하지만 그 사용후의 캡슐처리를 고민하다가 결국은 드립이 답이라는 생각에 결심은 했습니다만, 무필터 드리퍼 하나를 만지작 거리길 두어번 하다가 결국은 고민 진행중인 상태였어요.

마치 제 고민이라도 알듯 한날 한시에 만난 두분의 동갑내기 지인이 세상에, 이런일도 있을까요. 바로 고민중에 빠져있던 향초와 드리퍼를 하나씩 선물해 주셨습니다. 참, 이렇게 희안한 일도 있군요.

미라 때문에 거절과 사양을 미리 공지해야 하는 상황과, 최근에 생각했던 그 필요한 물건 2개 사이에서, 그리고 같은 시간에 그 가능성들 사이를 뚫고 이런 선물을 받을 가능성. 얼마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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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색감과 구도를 잘 못찍었지만, 제 까다로운 취향의 한 중심을 단숨에 파고들 만큼 고퀄을 자랑하네요. 선물은 고르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시험과도 같은거죠. 정말 필요한 물건일지, 또 마음에 들어할 지, 또 실제로 사용은 할지… 등등을 신경써야 하는, 응시료를 내고 쳐야하는 변수가 많은 주관식 시험말이죠. 그리고 두 분은 한날 한시에 100점을 맞는 기염을 토하시며 제게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주셨군요. 길다랗게 생긴 제 집의 안쪽에선 시나몬이 은은한 향초의 향긋함, 바깥쪽에선 지금 막 내린 커피향이 어우러지고 있답니다. 마치 카페라도 온 것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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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의 캡슐처리를 고민하다가 결국은 드립이 답이라는 생각에 결심은 했습니다만

역시 수수님^^ 캡슐처리부터 고민을 하시는군요! 멋지세요~
멋진 선물을 받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ㅎㅎ

저도 요즘에 드리퍼 고민에 빠져있었는데.
여과지는 버리는게 계속 생겨서
금속망 드리퍼를 보고 있습니다.
금색 좋군요.
하나 구입할것입니다.
한국에선 얼마나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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