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라이프] #12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에서 삼송역까지의 순환열차

in #zzan4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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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에서 지하철로 서울까지 출퇴근 하며 길러진 능력은 어떤 자리가 가장 편한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내가 이용하는 구간 정발산-을지로3가 구간 역시 출퇴근시간이면 북새통이다. 가끔은 엊그제 본 듯한 사람이 같은 옷을 입고 앉아있거나 서 있는 걸 본다. 어쩌면 그 사람들도 나를 봤겠지. 앞으로 1년, 10년을 더 본다 하더라도 이유없이 서로 아는체 하는 일은 없겠지만서도.

오늘 저녁 퇴근길엔 순환열차를 기다리다 포기하고 그냥 다시 붐비는 열차를 탔다.

순환열차는 대화-삼송까지 운행하는데 어느날 아침 출근길에 발견한 것이었다. 전세나 마찬가지다. 그 혼잡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텅 비어있다. 정말 아예 텅 비어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10구간 남짓한 그 구간을 편하게 가기 위해 2-3배를 더 가야하는 기차에서 좀 더 편한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게 사람들은 싫은가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순환열차를 거의 타지 않는다. 물론 나는 계산기를 두드려 본 결과, 어차피 아주 편한 자리가 아니라면 차라리 짧은 구간이라도 전세기차를 타고, 나머지 구간을 고생하는게 낫다고 생각해서, 사람들과는 반대로 나는 순환기차를 기다리는 편이다.

그런데 퇴근길에 우연히 너무 붐벼서 다음기차를 타려고 잠깐 내렸는데 그 반가운 텅빈 전세기차가 왔다. "아. 이 기차가 퇴근길에도 있구나." 나는 조금 기다리더라도 그 여유가 좋아서 삼송역에 내린다. 하지만, 오늘 무려 다섯 대의 기차가 지나갔는데도 왠일인지 그 순환기차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붐비는 열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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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렇게 텅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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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차의 맨 앞칸을 선호하게 되었다. 뭐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그런 정서를 갖고 있겠지만 낯설고 어색한 부분이 양쪽인 것 보단 한쪽인게 나아서다. 방콕의 짧은량의 열차에 익숙해져버려서 처음엔 너무 긴 열차의 끝과 끝이 멀어보였다. 어쨌든 나는 맨앞을 그리고 맨뒤를 왕래하다 맨 앞으로 결정했다. 문제는 아마도 나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뿐만이 아닌탓이다. 많은 사람들이 앞에 탄다. 별 사람 다 있다. 가끔 혼잡한 열차에서 자전거 칸 위에 올라 앉거나 바닥에 퍼질러 앉아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출퇴근 길 대부분 한시간 넘는 시간 흔들리는 지하철에 서있는게 결코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순환열차의 맨 앞칸에 타게 되면 생각지도 않은 걸 발견하게 된다. 바로 기장님(?)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수백명을 싣고 달리는 지하철. 그 지하철의 기장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물론 비행기도 그렇긴 하다. 하지만 가끔 멋진 제복을 입고 손목에 줄이 노란색 줄이 그어진 제복으로 빛나는 기장. 그리고 우리는 그런 기장님들을 동경하거나 멋있어 한다.

시민의 발인 택시, 버스 기사님들은 가끔 폭행도 당하고 엉뚱한 일에 놓이며 고생하는거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지하철은 좀 더 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아예 얼굴조차 볼 수가 없다. 순환기차의 맨 앞에 타다 보니 잠깐 기차를 갈아타는 사이 내리는 지하철 기장님을 본다. 아. 수백명을 싣고 달리는 열차의 기장님이 이렇게 초라하다니. 심지어 멈춰 선 기차에서 불이 꺼지고 새로운 기장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기도 한다. 그래서 내리는 기장님은 갑자기 플랫폼 창고같은 문을 열고 백팩을 메고 벌컥 나타난다. 하지만, 아무도 그 분이 기장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한데서 나오니까. 그냥 선로를 수리하는 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개 무관심하거나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리고 그 분은 그냥 백팩을 메고 걸어간다.

나는 살짝, 아주 살짝 고개를 숙여본다. 그 분이 이 기차의 기장님인 걸 알게 되었으니 왠지 좀 그 초라함 사이에서 멋져보이기도 하고, 인사를, 혹은 아는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없는 가운데 나혼자 준비가 안된 그분에게 표시나게 "안녕하세요" 혹은 "수고하셨습니다"란 그 한마디를 하는게 그렇게 힘이 든다. 그래서 인사를 받는 기장님은 물론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나 혼자 알아챌 수 있는 인사를 한다.

간혹 그렇게 나오기 전에는 지하철 문을 닫고, 혹시나 중간에 내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객차를 돌아다니 체크를 하기도 한다. 그 때 그분들의 등에 붙인 작은 글귀를 보았다.

"우리는 감시받으며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 이렇게 수많은 우리의 발이 되어주는 기장님들에게 멋진 제복과 자부심을 안겨드리지는 못할 망정, 뭔가가 저분들을 힘들고 어렵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괜히 기분이 울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분들을 알려고도 멋지다고도 생각하지 못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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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정겹고 다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네요.
인사 잘하기부터 시작~^^

정발산에서 출발하시는 군요.
전 구파발에서 출발해요 ㅎ

엇 호돌박님 대박. 우리가 아침 저녁 언젠간 지하철에서 만나겠군요^^ 기대됩니다.

이제 한국에 들어오신건가요? 출퇴근 이야기를...

독겨님 저 완전 들어왔어용. 계속 한국들어온 포스팅만 하고 있었는데 쳇~~~

우와~ 완전히 귀국하신건가요? 전 또 몇달 들어오신줄... ㅎㅎ
죄송합니다!

엇! 오또가 다녀가셨군요 ㅠㅠ 감사해요 흑흑

공감가는 스토리입니다.
한 노선을 오래 사용하다보면 거의 지박령 수준이 되지요.
은근 지정칸이 되어버리는 착각을 느끼기도 합니다.
기장님들껜 "수고하셨습니다!!!" 한마디 해주는 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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