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으로부터의 구원자 별세

in #zzan5 years ago

1915년 8월 20일 매독으로부터의 구원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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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롬부스, 에이브러햄 링컨, 빈센트 반 고호, 폴 고갱, 모파상, 슈베르트, 니체..... 위인전에서나 세계 문학전집에서 즐겨 보았을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 공통점은 그다지 저 위인들의 이름에 걸맞게 우아하지만은 않다. 그들은 매독 환자들이었다. 매독이라는 병은 온갖 병균을 신대륙에 쏟아부었던 유럽인들에 대한 신대륙의 유일한 복수였다는 설도 있고 매독 역시 구대륙의 소산이라는 설도 있는데 어쨌건 매독은 콜롬부스의 항해 이후 이탈리아에서 대유행했고 이후 수백년간 수천만 명을 죽인 1급 살인자로서 그 악명을 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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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 동안 이 질병은 사실 뚜렷한 치료법이 없었다. 항균 효과가 있는 수은을 바르고 먹기도 했지만 수은은 세균 뿐 아니라 인간도 충분히 죽일 힘을 지닌 물질이었다. 매독 환자는 매독으로도 죽었지만 수은 중독으로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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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매독은 참으로 근절하기 어려운 병이었다. 대단한 호색한이었고 기회가 오면 결코 놓치지 않고 하루에 스무 번이 넘도록 섹스를 했다는 정력가 모파상의 절규는 매독의 참혹함을 여실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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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뇌는 지금 점점 물렁물렁해지고 있습니다.....밤이면 뇌가 끈적끈적한 액체 상태로 변해서 제 입과 코를 통해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제 말은,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미쳐 가고 있습니다! 제 머릿속은 뒤죽박죽 혼란스레 뒤엉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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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뇌는 매독균에 의해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는 착란 속에 총을 난사하거나 칼로 자기 목을 자르려는 등 광란의 말년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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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몽골인들을 멸종시키기 위해 매독균에 오염된 담요를 뿌렸다는 설이 있을만큼 동서고금의 인류에게 사악한 공격자였던 매독은 20세기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인류의 추격에 뒷덜미를 잡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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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폐에도 등장하는 의학자이며, 일본만화 <닥터 노구찌>의 모델인 노구치 히데요가 매독균을 발견했다. 노구치 히데요는 전신마비로 고생하는 환자의 뇌에서 매독을 일으키는 병원체인 '트레포네마 팔리둠'을 처음으로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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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매독 연구가들에게는 또 다른 적이 있었다. 매독 치료법 개발 자체에 반대하는 이들도 존재했던 것이다. 그들은 매독은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신의 징벌이며, 이를 치료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불경이라고 우겼다. 여기에 대해 요쿠르트 이름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메치니코프가 반박한 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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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독의 확산을 막는 것이 부도덕한 주장이 있지만 모든 도덕적인 방법을 동원해도 매독의 창궐을 막지 못했으며 결백한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도 했다.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부도덕한 일이다.”

파울 에를리히도 매독 치료법에 도전한 의사 중의 하나였다. 어렸을 적 문학 교사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냈을 때 "인생은 산화(酸化)작용이다. 꿈이란 뇌의 활동이고 뇌의 활동이란 단지 산화작용이다."라고 써서 내는 바람에 문학 교사로 하여금 거품을 물고 분노하게 했던 괴짜였던 그는 의과대학에 가서도 의대생이면 당연히 외워야 할 의학 용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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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면 또 한 번 당연히 익숙해져야 할 환자들의 비명, 신음 등등의 풍경을 보는 것도 질색을 하는 기이한 의대생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탄저병균을 발견한 코흐의 연구에 흠뻑 빠졌고 코흐의 제자가 되어 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 사냥에 인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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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그가 연구에 몰두했는가 하면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축하 파티를 까먹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초대장을 발송할 정도였다. 뭐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옷에든 커튼에든 벽에든 닥치는대로 그림을 그리고 단상을 끄적였다.

어느 날 그는 동물에게 염료를 주사하면 특정 부위만 색깔이 변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에를리히는 이에 착안해 '동물의 몸을 가운데 특정 부위만 염색하는 염료가 있다면 사람의 조직에 있는 세균만을 가려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즉 정상세포는 죽이지 않고 사람을 괴롭히는 미생물만 죽이는 화학적 약물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에 붙여진 표현대로라면 ‘마법의 탄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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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그는 비소 화합물로 이루어진 606호 약물을 생산해 냈다. 토끼에 매독균을 주사한 뒤 실험을 했더니 성공이었다. 이윽고 매독에 걸려 더 이상 손 쓸 수 없이 죽어가던 사람 역시 한 번의 주사로 일어났다. 페니실린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가장 효율적인 매독 치료제였던 ‘실바르산’ 606이 역사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 공으로 그는 1908년 노벨상을 수상했고 독일 의학 대회에서 이 사실을 보고한 순간 연설을 이을 수 없을 정도의 환호와 박수를 받는다. 금전적 보상에 관심이 없던 그는 임상 실험의 부족과 부작용 우려를 이유로 약의 빠른 공개를 거절했지만 사업가들은 이를 냉큼 세계에 배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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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가장 혹독한 비난을 받아야 했고 법정 투쟁까지 벌여야 했던 것은 다름아닌 에를리히였다. 어쨌든, 500년간 천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던 인류 최고 최대의 적수 가운데 하나는 괴짜에 연구벌레이자 돈 같은 건 모르는 우직하지만 격정적이었던 과학자에게 무릎을 꿇었고, 에를리히는 그 영광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난다. 1915년 8월 20일이었고 영국의 타임즈는 “전 세계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기사로 그의 죽음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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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발명한 매독 치료제 이름 ‘실바르산 606’은 언제 들어도 사람의 기를 질리게 만든다. 606이란 605번의 실패 끝에 만들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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