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AN] 외할아버지 이야기

in zzan •  last month  (edited)

연어입니다. 한일 갈등이 심화된 가운데 맞이하는 광복절입니다. 여느 때보다 감회가 남달리 느껴지는 것은 비단 저만이 아니겠지요.


어릴 때부터 양가 부모님 집안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희 집안에는 딱히 독립 운동에 헌신한 분도, 그렇다고 친일을 한 분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어느 쪽이든 제가 전해듣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나마 들었던 것은 어릴적 돌아가셨던 외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이 이야기는 저희 어머니께서도 자세히는 모르시던 얘기더군요. 저도 외할아버지께서 가장 아끼셨던 셋째 외삼촌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니 아마도 집안의 남자들(?) 사이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저의 외가는 대대로 한의학에 종사하던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100세까지(자식들 보다 더 오래) 사셨던 외증조 할아버지를 기억하는데, 철저한 음식절제에 방안에 앉아 홀로 책만 읽으셨던 분이었으니 몸을 튼튼히 하고 병이 생기지 않게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하는 섭생[攝生]의 진리를 몸소 실천하신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외할아버지 이야기로 돌아와서, 힘이 장사고 어릴적부터 당수와 권투를 익혔던 외할아버지에게 큰 일이 하나 생겨버립니다. 의사셨던 첫째 형님처럼 양의(洋醫)를 배우겠다며 일본으로 떠난 둘째 형님이 느닷없이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것도 한국에서 결혼을 마친 후 일주일만에 유학길에 오른 것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소식이 끊겨버린 것입니다.

신혼을 마다하고 공부차 떠난 일본에서 무슨 변고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셋째였던 외할아버지께서 일본으로 건너가십니다. 급한대로 수소문을 해보지만 도통 행방을 알 수가 없던터라 장기간 머물 것을 감안하고 학의학 역시 다시 일본에서 배운다 생각해 학교를 다니며 백방으로 형님을 찾아다니셨다 하네요. 그러나 몇 년을 찾고 찾아도 끝내 행방을 알 수 없어 반 포기하는 심정으로 전공을 간호학으로 바꿔 학업을 계속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일이 터진 것이, 한 번은 한 일본인과 시비가 붙은 끝에 상대를 흠씬(or 죽어라) 두들겨 패놓고는 그날로 밀항을 해 일본을 빠져나오셨다고 합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학대가 심했던 일제 시절이니 오죽이나 했겠습니까. 일본 헌병에게 잡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잡아탄 배가 홍콩인가 대만인가로 가는 배였나 봅니다. 외할아버지의 동아시아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일찌기 한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한문에도 밝아 홍콩, 대만, 상해, 그리고 만주까지 거침없이 활보하고 다니며 젊은 시절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호학을 배운 덕에 일자리도 얻고 생계를 꾸리며 사셨다고 하네요. 외삼촌 얘기로는 외할아버지께서 '일본놈'들을 하도 싫어하셔서 툭하면 싸움에 휘말리셨다고 합니다. 외삼촌들도 어려서부터 당수, 태권도, 유도, 검도 등등 온갖 무술을 익히고 '일본'이라면 눈을 부라리는 분들인데 아마도 외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그러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기질이셨으면 독립운동에 가담했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데, 그저 풍운아처럼 홀로 세상을 돌아다니시려는 성격이라 그런 애국까지는 하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해방된 한국으로 돌아와 잠시 부산에 머물던 외할아버지를 눈여겨 본 분이 계셨는데, 젊은 나이로 동아시아를 누비던 경험을 높이 사셨나 봅니다. 그분은 자신의 사업체와 큰 딸을 흔쾌히 이 젊은이에게 맡기셨으니 그 기반으로 고향이던 여수로 돌아와 다시 정착을 하신거였죠. 저희 어머니도 그렇게 해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처음 대만 땅을 밟았을 때, 당시의 저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조국조차 일제에 빼았긴 젊은이로서 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비행기에서 타이베이시를 내려다보며

  • 아, 이곳이 젊은 시절의 외할아버지가 딛고 사셨던 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찬가지로 상해에 갈 때마다, 홍콩에 들를 때마다 늘 외할아버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여권 파워'라는 것이 있지요. 한국이 1~2위 권을 놓치지 않는 파워입니다. 그냥 국민 편의에 해당하는 수치 정도로 여길지 모르지만 외할아버지와 달리 저는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당당히 전 세계를 다닐 수 있는 조국이 있습니다.

  •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여러분의 여권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대한민국 외교부장관 직인이 붙은 글입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가정을 두신 이후 외국에 나가지 않으셨지만 만약 나가실 일이 있으셨다면 이렇게 적힌 여권을 보고 감개무량하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이상, 광복을 기념하는 광복절에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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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다시 대한민국으로~!

국가가 국민을 위해
국민이 함께 국가를 위해
모두 함께 다시 더욱 더 힘낼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발자욱 한발자욱 함께 디디어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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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광복절 댓글로는 최고네요. ㅎ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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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이 독립투사일수는 없겠지요.
자신에 삶에 충실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선을 행하는 것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 하며 자기가 속한 사회에 이바지 하는 것도 훌륭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복을 위한 밑거름으로 충분한 역할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정말 개개인 한명 한명이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 그것으로도 애국이 아닐까 합니다. 튼튼한 벽돌 한 장씩 쌓는 것이니까요.

글솜씨부럽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지금 이렇게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은
선조들의 희생 덕분이지요.
100여년전 우리는 약소국 중에서도 최하 수준의 국가였지만
지금은 10위권 언저리의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ㅎ

우리나라의 독립에 애쓰신 분들이 하늘에서 보신다면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실 것 같네요. ^^

맞는 말씀입니다. 아직 부족한게 많지만 그래도 이만큼 성장해온 점은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