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쩌다 귀농) 시골에 적응하는 우리만의 방법 : 나의 적응기

in #zzan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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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우리는 경북 상주에 귀농하여 2016년 10월 5일 제주도로 이사오기까지 시골 생활을 했었다.
9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어쩌다 귀농'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귀농이야기를 연재해볼 생각이다.

쥐 때문에 가출(?)한 철없는 새댁으로 시골에 멋지게 신고식을 한 나는 어쨌든 이제는 어떻게든 시골에 적응을 해야 했다.
사실 가출해 본 결과 그게 해결책은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정착한 마을의 이름은 ‘오리실’이라는 곳이다.
옛날에 이 마을 근처에 오리가 무지 많았다고 한다.
시골은 이렇게 마을의 특징을 들어 마을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가마가 있었던 마을은 가마실, 마을이 동네에서 가장 끝에 있는 마을이면 막실 등.ㅋ
‘실’이란 마을을 뜻하는 말이고, 마을에 오리가 많아서 우리 마을은 '오리실'이 된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이사한 오리실은 전주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마을이었다.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척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생김새가 비슷비슷해서 처음에 적응하는데 좀 어려운 점도 있었다.

처음에 우린 이 마을이 집성촌인지도 모르고 이사를 들어갔었다.
도시 사람이 시골에 와서 정착하기가 어려운데, 특히 집성촌에서는 그들만의 세상에 절대로 낄 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
모르면 용감한 법, 우리는 전혀 모르고 이사들어가서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게다가 마을 전체에서 우리 부부가 가장 어렸고, 동네에 아이가 없으니 완전 우리가 동네 막내였고, 그저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철부지 애들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시골은 60대가 청년이고, 70대도 노인정에 심부름하기 싫어서 안가고, 80이 넘어도 집안 농사는 다 하시고, 90은 넘어야 나이 좀 드셨다는 소릴 듣는다.
처음에 내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할머니'라고 불렀다가 야단을 맞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집성촌에서 나이와 관계된 위계까지 잘 파악해야 하는데, 그게 많이 헷갈리고 힘들었다.

아무튼 내가 가출해 돌아와서 시골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수영장 등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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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운동을 해야 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집이 너무 추워서 씻기가 너무 불편했다.
수영장에 다니면 샤워는 따뜻한 데서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다.

상주 시내에는 수영장이 없다.(나중엔 생겼지만.)
하나 있는 수영장도 여름에만 오픈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까운 곳을 알아보니 문경에 있는 시민 체육관에 수영장 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경시라니 꽤 먼거 같지만 우리집에서는 상주 시내에 나가는 시간보다 문경시 점촌에 나가는 것이 더 빨랐다.
특히 나는 점촌이라는 지명도 참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가게 된 수영장이 내가 귀농해 적응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될 지는 정말 몰랐다.
매일 씻으러 간다는 생각으로 가게 된 수영장에서 많은 언니들을 알게 되었고 우리 마을에 아주머니들보다는 말이 잘 통해서 내가 모르는 시골 생활에 대해 많은 걸 묻고 배울 수 있어서 조금씩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음으로 내가 한 일은 직장을 잡는 것이었다.
사실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아직 농부가 될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농사를 도울 생각이 1도 없었으므로 도시에서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일을 구하려고 했다.
시골에서는 농사도 안 지으면서 혼자 집에 있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리집에 와서 “새댁 뭐해?”하며 참견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남편이 농사는 안 도와줘도 된다고 했다고 해도 그럴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찾은 곳은 ‘북상주 지역 여성문화 센터’였다.
거기에 가서 봉사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고 문의를 했다.
다행히 내가 논술과외를 했던 경력을 인정해주신 그곳 선생님이 2학기에 아이들 방과 후 수업 프로그램에서 논술이나 독서 수업을 잡아주시겠다고 했다.
우리가 이사간 때가 3월이어서 1학기 프로그램은 이미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2학기에 수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젊은 사람이 시골에 내려와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 보겠다고 직접 찾아왔으니 오히려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말해두고 며칠 후 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상주시내 논술학원에서 선생님을 구한다고 연결해주어 독서논술학원에 강사로 나가게 됐다.
거의 4년을 다녔으니 그것도 내겐 안정적인 시골 정착을 위해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거기서 알게 된 상주 아이들은 너무 순수하고 착하고 재미있는 아이들이어서 즐겁게 학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시골 할머니들은 학원이란 개념을 잘 몰라서 나보고 자꾸 학교에 다니는 선생님이라고 해서 좀 난감하긴 했다.ㅋ

학원 원장님도 여자분이었는데, 좋은 분이어서 내게 많은 편의를 봐 주셨다.
농사가 바쁜 시기에는 주말 보충 수업은 안 잡아도 되게 편의를 봐주었다.
그리고 내 수업 스타일 대로 시간표도 짜주시고..
별일만 없었으면 계속 다녔을 것을 4년 후,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면서 농사규모를 늘리는 바람에 더 다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시골 적응은 의외로 쉽게 되었다.
거의 일주일만에 시골이 낯설지 않았고, 한달만에 직장을 잡아 일을 했으니, 아무래도 나의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능력이 이때 엄청 상승한 듯하다.

그리고 남편의 적응기는..... 다음 편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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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적응해서 다행이였네요 하이트님의 친화력은 어디에서도 적응할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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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제가 낯도 많이 가리고, 남의 집에서도 잘 못 자고, 낯선 곳을 엄청 싫어하고 그랬는데....
아마도 귀농의 경험이 저를 많이 변화시킨 거 같아요.^^

앞에 보았던 귀농기를 보면 적응하시기 엄청 많이 힘든 길이 놓인거 같았는데 생각밖이에요.. 적응을 금방하셔서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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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많이 놀랬습니다.
모든 게 180도 달라진 경험이었던 귀농 후, 저의 적응 능력은 놀랄만큼 상승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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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가 청년이고, 70대도 노인정에 심부름

😂🤣😊 아침부터 씩 웃고 갑니당~^^

시골은 그렇더라구요.
도시에서는 마흔만 넘어도 직장에서 자기의 위치가 불안불안하다는데, 시골은 워낙 고령화가 심해서 왠만해서는 어른 축에 끼기 힘듭니다.ㅋㅋ

재미있네요. 정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당시에는 참 치열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조금은 미화되는 기억도 많네요.
뭐든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는 것이 맞는 말 같습니다.^^

오리실이 장수촌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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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제가 살았던 곳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시골의 고령화는 정말 심각하거든요...

신의 한 수라고 하지요? 직장 잘 잡으셨네요.
시골 생활이 녹록치 않아요.

도잠님은 현재 시골 생활하시고 계시죠?
원래 시골에 사시는 건가요 아니면 귀농인가요?

서산이 시골이죠. ㅎㅎ
주말에 농사짓고요. 겨울이라 여유가 있네요.

지난번 글(가출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적응하실까 궁금했는데~ 역시 긍정적으로 잘 해결하시면서 적응을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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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에서 성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반농'이라고 하더라구요.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적응하기에 수월하다는 것과 경제적 뒷받침이 된다는 것 때문에 '반농(직장 생활을 하면서 농사짓기, 혹은 남편은 농부 아내는 직장인)'을 권장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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